소설방/강안남자

550. 유혹(12)

오늘의 쉼터 2014. 9. 20. 19:53

 

 

550. 유혹(12)

 

 

(1688) 유혹-23

간호사가 나가자 박은희는 다시 눈을 감았다.
 
동네 병원이지만 입원실이 30개가 되는데다 5층 빌딩 전체를 병원으로 사용하는
 
축소판 종합병원이었다.
 
1인실이어서 방안에는 정적이 덮여졌다.
 
길게 숨을 뱉은 박은희는 문득 탁자 옆에 놓은 손가방 안에 현금과 수표가 245만원이
 
남아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것이 총재산이다.
 
연립주택 월세 보증금 500은 이미 다 까먹었고 귀금속을 모두 합해봐야
 
100만원 가치도 안나간다.

오늘 아침 병원으로 실려올 때 트렁크에다 옷가지와 신발까지 필요한 건 다 챙겼으므로
 
이제 여기서 떠나면 그만이다.
 
저절로 이가 악물려졌으므로 박은희는 눈을 떴다.
 
그러자 바로 앞쪽 벽에 걸린 시계가 보였다.
 
오후 3시10분이다.
 
최석재는 119가 도착하기 전에 도망쳤지만 이미 경찰에 신고한 것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놈은 앞으로 두 번 다시 눈 앞에 나타나지 않겠지만 이쪽도 마찬가지다.
 
다신 안본다.
 
어깨를 조금 움직였더니 전신이 쑤셔왔으므로 박은희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터져나왔다.
 
최석재는 어젯밤 제가 경찰 검문에 걸린 것이 이쪽 때문이나 되는 것처럼 화를 내었다가
 
결국 구타를 했다.

조루 주제에 질투심은 많아서 눈에다 불을 켜고 대드는 꼴이 가관이었다.
 
다시 박은희는 길게 숨을 뱉었다.
 
그러자 아랫도리에 화끈한 느낌이 오면서 온몸이 나른해졌다.
 
조철봉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젯밤 그대로 죽을 것 같았던 쾌락의 순간들이 연거푸 눈앞에 펼쳐졌으므로
 
박은희의 숨결이 더워졌다.
 
그러나 조철봉하고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작업은 그날로 끝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 들통이 나기 때문이다.
 
만일 조철봉이 마음먹고 조사를 해본다면 박은희는 이름만 같을 뿐이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쉽게 드러난다.

박은희는 또 다시 긴 숨을 뱉었다.
 
그러고는 문득 어젯밤 최석재가 경찰 검문을 받아 끌려 나간 것이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랬기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꿈만 같은 절정을 셀 수도 없이 맛보았고
 
그것을 죽을 때까지 간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돈으로 따질 수가 없을 만큼 값진 기억이었다.
 
박은희는 일부러 하반신을 들썩여 보았다.
 
그러자 어젯밤의 열기가 골짜기 안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발가락 끝이 바깥쪽으로 구부러졌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언니가 들어섰다.
 
언니는 119와 함께 집에 와서 지금까지 병원에 있다.

“얘, 손님이 오셨다.”

언니가 말했으므로 박은희는 머리를 들고 문쪽을 보았다.
 
그러고는 눈과 입을 딱 벌렸다.

“아아.”

박은희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저절로 터졌고 다음 순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굴은 눈과 입부분만 빼놓고 온통 붕대로 감겨져 있었는데도 그런다.
 
언니 뒤에 서있는 사내는 조철봉이었던 것이다.
 
조철봉은 차분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태연했다.
 
여러번 다녀간 사람 같았다.

“여기 앉으세요.”

하고 언니가 의자를 권하자 목례를 한 조철봉이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언니가 잠자코 방을 나갔으므로 방안에는 둘만 남았다.

“언니한테는 네 연락을 받고 온 회사 사람이라고 했어.”

조철봉이 낮게 말하더니 박은희의 눈을 내려다 보았다.

“엄청 맞은 모양이구나.”

“어떻게 알았어?”

하고 박은희가 겨우 물었을 때 조철봉은 풀썩 웃었다.

“우유상종이야.”

조철봉도 가끔 유유상종을 우유상종이라고 한다.
 
 
 

 

(1689) 유혹-24

 

 

 

박은희는 잠자코 시선만 주었는데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회사에다 연락했더니 네가 퇴사했다고 해서 수소문을 했지.”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박은희는 가만 있었다.
 
오직 시선만 보내고 있다.

“네 주민등록번호를 회사에서 받아다가 알아보았어.”

박은희가 가늘게 긴 숨을 뱉었다.
 
본색이 완전히 탄로났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저절로 나온 한숨이다.
 
회사에다 알아보았다면 박은희는 사장이 아니라 퇴직한 경리사원인 것이 밝혀졌을 것이고,
 
주민등록번호를 받았으니 손만 조금 썼다면 전과 기록까지 주르르 알게 됐을 것이다.
 
거기에다 결혼관계, 남편 최석재의 전력까지 다 알 수가 있다.
 
그때 처음으로 박은희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래서?”

그렇게 박은희가 묻자 조철봉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내가 왜 여기 찾아왔겠니?
 
손을 써서 어렵게 널 찾아냈는데 남편한테 맞아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 가만 있을 수가 없더구먼.”

“왜?”

“그냥 너한테 끌리는 거야.”

조철봉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네 거짓말이 밉지가 않았어.
 
물론 내가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

“너하고 남편 전과가 꽤 있던데, 같이 작업하다가 그런 거지?”

그때 박은희가 물었다.

“언제부터 안 건데?”

“오늘 오후에, 안 지 얼마 안 돼.”

“거짓말.”

했지만 박은희의 말투는 강하지 않았다.
 
박은희가 조철봉을 빤히 보았다.

“어제 알았지?”

박은희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어젯밤에, 와이프 전화 왔다고 했을 때, 또, 나갔다 왔을 때, 그때 조사한 거지?”

“그럴 리가.”

“그 자식이 호텔 복도에서 기다리다가 경찰 불심검문에 걸린 것도 이상했어.
 
그것도 오빠가 작업해 놓은 거지?”

“아니, 그게 무슨.”

“그래서 그 자식을 잡아가게 해놓고 맘 놓고 논 거야. 그렇지?”

“쇼를 해라. 쇼를.”

“오빠.”

그러는데 붕대 사이로 보이는 박은희의 두 눈에 물기가 가득 고였다.

“그래, 나, 사기꾼이야. 남자 등쳐 먹고 돈 벌었어. 여러 번. 그러다가 교도소에도 갔다 왔고.”

얼굴에 붕대가 감겨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박은희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오빠 같은 남자 첨이야. 이건 믿어줘.
 
어젯밤에 계획대로 작업이 안 되었지만 난 오히려 그것을 다행으로 생각해.”

“…….”

“정말 좋았거든.”

“그건 나도.”

“그럼 돌아가줘.“

눈을 깜빡여 물기를 아래쪽으로 보낸 박은희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날 만나서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다 맞아, 오빠가 알아본 것이 정확해.”

“내가 여기 온 것은.”

“그만 가.”

박은희가 눈을 감더니 한마디 한마디를 분명하게 말했다.

“주머니에다 봉투 하나 넣고 온 거 알아. 우리, 그렇게 끝내지 말자고,
 
오빠. 좋은 추억만 갖고 살도록 해. 그러니까 그냥 가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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