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47. 유혹(9)

오늘의 쉼터 2014. 9. 20. 19:47

547. 유혹(9)

 

 

(1682) 유혹-17

 
벨을 눌렀을 때 조철봉의 심정은 착잡했고 한편으로는 개운했다.
 
마약을 끊지 못하고 주사기를 향해 다가간 중독자처럼 느껴졌다가
 
뒤탈 다 없애고 볼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들뜬 것이다.
 
그러나 잠깐 머리를 돌려 뒤쪽을 바라본 순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상구쪽 문에서 어른거리는 사람의 기척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머리를 돌린 순간에 몸을 피했지만 사내의 옷자락 끝이 분명히 보였다.
 
박은희의 남편일 것이다.
 
벨을 다시 누르려는 순간 문 안에서 박은희가 물었다.

“누구세요?”

“나야.”

그러자 문이 열리더니 박은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맞았다.

“어디 갔다 왔어?”

“이거 사왔어.”

나갔다 온 핑계를 만드느라고 가게에서 양주 한 병과 마른안주를 사온 것이다.

“또 술?”

술병을 본 은희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은희는 가운 차림이었는데 아직 몸의 물기도 다 닦지 않았다.
 
욕실에서 금방 나온 것 같았다.

“난 오빠가 안 보여서 황당했어.”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 말리면서 은희가 말했다.

“욕실에서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나와 봤더니 없더라고.”

“그래서?”

“아무 생각이 안 났어.”

조철봉이 저고리를 벗어 던지고는 곧 셔츠와 바지까지 벗었다.
 
그러자 은희가 벗은 옷을 옷걸이에 걸었다.
 
곧 팬티 차림이 된 조철봉이 욕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내일 출근 걱정할 것 없으니까 오늘밤 실컷 즐겨보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샤워기의 물줄기를 맞으면서 조철봉의 뇌는 분주하게 활동했다.
 
지금쯤 박은희는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 남편놈한테 연락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자기야, 조금만 기다려. 그놈이 지금 샤워하고 있거든.”

그러면 그놈이 대답할 것이다.

“나도 그놈 들어가는 거 봤어.”

“술 사갖고 온 거야. 난 도망간 줄 알고.”

“봉투를 들고 들어가더구먼.”

“내가 지금 문 열어놓을 테니까 휴대전화가 울리면 바로 들어와.”

“알았어.”

연락 방법은 아마 휴대전화를 열고 단축 다이얼을 누르는 것이 가장 간단할 것이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니까.
 
그러나 조철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통화를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남편놈은 갑중이 보낸 해결사들한테 잡혀갈 것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 은희는 탁자 위에 술과 안주를 펴 놓았는데 표정이 밝았다.

“오빠, 술 많이 마셔도 돼?”

잔에 술을 따르면서 은희가 물었으므로 조철봉이 머리를 들었다.

“괜찮아.”

“몸 컨디션 말이야. 주량 말고.”

웃음띤 얼굴로 말한 은희가 눈으로 조철봉의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조철봉도 가운 차림이다.

“그거 술 많이 마셔도 지장 없어?”

“지장 없어.”

조철봉이 한모금 양주를 삼켰다.
 
1분30초라고 한 말도 거짓말이겠지.
 
두달 만에 별거했다는 말도.
 
지금쯤 끌려갔을지도 모를 그 남편놈은 15분이 최장 기록일지도 모른다.
 
조철봉은 더운 숨을 길게 뱉었다.
 
속이고 속이고 또 속이다 보면 나중에는 뭘 속였는지도 모르게 된다.
 
 
 

(1683) 유혹-18

 

 

술잔을 내려놓은 조철봉은 입안에 배인 술기운을 길게 뱉어 내었다.
 
그러고는 가운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알몸이 드러나면서 힘차게 솟아오른 철봉이 건들거렸다.

“어머.”

철봉에 시선을 박은 채 박은희가 그랬다.
 
탄성보다도 신음소리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너무 커.”

이런 발언은 그동안 수없이 들었지만 전혀 지겹지가 않다.
 
예의상이건 과장했건 간에 이런 상황에서 남자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소리가
 
이 따위 단어였고 여자가 가장 간단하게 점수를 딸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때 은희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물었다.

“오빠, 지금 하게?”

이미 홀랑 벗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대답이 필요하겠는가?
 
은희가 곧 머리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나, 잠깐 화장실에 갔다올게.”

탁자 위에 놓인 손가방을 집으면서 은희가 상기된 얼굴로 덧붙였다.

“피임약 넣으려고, 잠깐이면 돼.”

그러고는 은희가 욕실로 들어섰으므로 조철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손가방 안에는 핸드폰이 들어있을 것이고 은희는 제 남편한테 연락을 할 것이었다.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난 조철봉이 옷장으로 다가가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을 꺼내었다.
 
그러고는 벌거벗은 채로 베란다로 나가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두번 떨어지고 나서 갑중이 전화를 받는다.

“예, 형님.”

갑중이 대뜸 대답하더니 이쪽 말은 듣지도 않고 말했다.

“그놈 잡아다가 승합차 안에 쑤셔박아 놓았습니다. 형님, 지금 괜찮으세요?”

그러자 베란다에서 힐끗 욕실쪽에 시선을 준 조철봉이 대답했다.

“괜찮아. 말해봐.”

“그놈 손가방에 별 게 다 들어있더군요.
 
카메라에다 녹음기, 빈 종이에다 펜, 아마 각서를 받으려고 준비한 거겠죠.
 
거기에다 테이프에 칼까지 있더라니까요.”

“알았다.”

핸드폰을 끈 조철봉이 다시 방으로 들어가 옷장 안의 저고리에다 핸드폰을 넣고
 
침대위로 올라가 누울 때까지 은희는 욕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미 승합차에 처박혀 있는 남편의 핸드폰은 갑중 부하들의 수중에 있을 것이었다.
 
은희가 밖으로 나온 것은 그로부터 5분쯤 후였다.
 
은희는 아직도 가운 차림이었는데 표정이 어두웠다.
 
욕실로 들어가기 전의 열기는 씻은 듯이 사라졌고 이마에 주름살까지 드러났다.

“이리와.”

하고 조철봉이 불렀지만 은희는 소파에 앉았다.
 
그러더니 드러난 다리를 감추려는 듯이 가운 자락까지 여미었다.

“뭐해? 기다리고 있지 않아?”

모른 척하고 조철봉이 들뜬 목소리로 다시 불렀을 때 은희가 시선을 들었다.

“오빠, 조금만 기다려.”

“왜?”

“약을 넣었더니 배가 좀 아파서 그래.”

“그거 넣으면 배가 아픈 거야?”

“아니, 가끔 생리통이 와서.”

“이봐, 다 식는다.”

조철봉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두 다리를 길게 뻗었다.
 
하지만 성욕은 사라진 지 오래여서 철봉은 늘어져 있다.
 
천장을 바라보고 누운 조철봉은 저도 모르게 풀썩 웃었다.
 
물고 물리는 게임이다.
 
누가 먼저 선수를 치느냐,
 
누가 먼저 정보를 갖느냐는 생존경쟁의 싸움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은희를 보았다.
 
자, 저 요물은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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