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43. 유혹(5)

오늘의 쉼터 2014. 9. 20. 19:40

543. 유혹(5)

 

 

(1674) 유혹-9

 
“연락 주시면 검토해 보지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조철봉은 박은희의 사업체를 인수할 생각은 없었다.
 
설령 조건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세상에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도 많아서 길 가다가 돈가방을 줍는 경우도 있겠지만
 
조철봉에게 사업은 결코 우연히 줍고 얻는 것이 아니었다.
 
사업은 적어도 사전 검토에서부터 열성을 바치는 자세를 갖춰야만 하는 것이다.
 
비행기 옆좌석에 우연히 앉은 미녀의 몸이라면 모를까 사업체를 양도하겠다는 제의가
 
조철봉에게는 탐탁지 않았다.

“저기요.”

하고 박은희가 다시 말을 걸었을 때 조철봉의 열정은 반쯤 식어 있었다.
 
육욕이 식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저는 돈 받고 양도하겠다는 게 아녜요.
 
결산하면 얼마쯤은 남을 테니까 그냥 경영권을 넘겨 드리겠다는 건데.”

“그래요?”

했지만 조철봉은 더 당기지 않았다.

사업가라면 결산해서 단돈 10원이라도 남으면 챙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업가로서의 본분이며 종업원에 대한 예의다.
 
대충대충 하다가 사업체를 훌떡 넘기는 사업가를 보면 그동안 근무했던 종업원은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아마 배신감을 느낄 것이었다.
 
박은희는 조철봉의 분위기를 눈치챈 듯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제 조철봉의 열기는 다 식었다.
 
여자라면 무조건 불끈거렸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어젯밤 유지선을 돌려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만큼 밝혔던 것에 비례해서 유혹에 대한 면역성이 강화되었는지도 모른다.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박은희를 보았다.
 
좌석이 여유가 있었으므로 몸만 조금 젖히면 옆자리에 앉은 박은희의 몸이
 
시야에 다 들어오는 것이다.
 
아름답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봐도 유지선보다 낫다.
 
몸매, 용모, 그리고 젊음까지.
 
맨 나중에 말했지만 젊음은 가장 값진 자산이다.

“박 사장은 결혼했습니까.”

불쑥 조철봉이 묻자 박은희가 먼저 쓴웃음부터 지었다.

“했었죠.”

그러고는 곧 말을 이었다.

“반년 만에 이혼했지만요.”

“저런.”

“조 사장님은요?”

“난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아, 네.”

“나도 이혼했다 재혼했지요.”

그러자 박은희가 호기심이 밴 얼굴로 물었다.

“성격 차이로 이혼하신 건가요?”

“아니, 내가 바람을 피워서.”

박은희는 눈만 크게 떴고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이혼을 당한 거죠.”

그 반대였지만 조철봉은 대개 이런 식으로 말한다.
 
요즘도 세상 사람들은 마누라가 바람을 피웠다면 오죽 사내가 못났으면
 
그랬겠느냐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박은희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얼핏 보면 호의 같다.

“저하고 비슷하네요.”

하고 박은희가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긴장했다. 이건 또 무슨 우연이란 말인가?

그때 박은희가 말을 이었다.

“미국 박사였죠. 하지만 좀 보수적인지 고지식한 건지 모르지만
 
만나서 넉달 후에 결혼할 때까지 같이 자지 않았거든요?”

승무원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박은희는 계속했다.

“그런데 결혼 첫날밤에 기대했던 섹스가 엉망이 되더라고요.
 
그 남자는 조루였죠. 길어야 1분30초. 제가 시간까지 재어 봤다니까요.”

 

 

(1675) 유혹-10

 

 

다시 반전.

 
조철봉은 박은희를 똑바로 보았다.
 
지금 박은희는 다시 상담을 시작한 것이나 같다.
 
제의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제의는 호감이 갔다.
 
다소 속이 뻔히 들여다보여서 긴장감은 떨어졌지만 박은희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자극적인 품목을 매물로 내놓았다.
 
바로 성(性).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박은희가 말을 이었다.

“견디기 힘들었어요.
 
성 클리닉에 다니게 하라는 친구들의 조언을 들을 때마다 지독한 수치심을 느꼈으니까요.
 
그래서 두 달 만에 별거를 했고 반 년 만에 이혼을 했죠.”

“성생활이 중요하긴 하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기본이죠.”

자르듯 말한 박은희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더니 풀썩 웃었다.

“제가 별 이야기를 다 하죠?”

“아니.”

조철봉이 박은희의 옆얼굴을 보았다.

얼굴의 선이 그린 것처럼 부드러웠다.
 
그러나 당장 열기가 오르지는 않는다.
 
목구멍도 그대로 있다.

“박은희씨.”

이름을 부르자 박은희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긴장한 것 같았다.

“인천공항에 내리면 바로 어디로 갑니까?”

그러자 두어 번 눈을 깜박이고 난 박은희가 대답했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요.”

앞쪽 스크린에 인천 도착시간이 한국시간으로 5시55분이라고 찍혀 있었다.
 
다시 바뀐 화면에 비행기가 황해 한가운데를 날고 있는 것이 나타났다.
 
스크린에서 시선을 뗀 조철봉이 박은희를 보았다.

“나도 내일 귀국하기로 되어 있는데, 그럼 나하고 내일까지 같이 있을까?”

그러자 박은희가 3초쯤 조철봉을 마주 보더니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조건은?”

“조건이라뇨?”

되물었던 박은희가 쓴웃음을 지었다.

“뭔가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조건 같은 건 없어요.”

“아니.”

정색한 조철봉이 머리를 저었다.

“이젠 내가 이해를 못 하겠는데.”

“뭘요?”

“내 제의를 선뜻 받아들인 이유.”

“그런 때도 있는 거죠 머.”

“난 내 자신을 잘 아는 편이야.”

“어떻게요?”

“내가 몇 마디 말로 상대편 여자의 마음을 당길 언변도 없고 외모도 그래.”

“멋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래.”

“처음이라 의심이 간다는 건가요?”

정색한 박은희가 조철봉을 보았다.

“다 이유나 조건을 갖다 붙여야 이해가 되는가 보죠?
 
한 번도 이유 없는 일은 저질러 보지 못했나요?”

말문이 막힌 조철봉이 눈만 껌벅이다가 이윽고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지금 박은희씨를 유혹한 거야.”

“난 내가 분위기를 잡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더니 박은희가 풀썩 웃었다.

“그렇지. 그게 이유가 되겠네. 내가 분위기를 만든 거.”

박은희가 손을 뻗쳐 조철봉의 팔 위에 올려놓았다.

“1분30초, 조루 등의 단어가 조 사장님을 자극했고, 그죠?”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그렇다.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 같았다.
 
그때 박은희의 손이 팔을 꽉 쥐었으므로 조철봉의 생각이 끊겼다.
 
오늘은 생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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