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 동반자(5)
(1649) 동반자-9
다음날 오전 10시 정각이 되었을 때 프놈펜의 국제호텔로 러시아 통상차관 몰로토프가 들어섰다.
로비에서 몰로토프를 맞은 인사는 어제 저녁에 급거 입국한 한국의 경제기획원 차관 홍규식이다.
홍규식은 국정원측의 연락을 받고 몰로토프의 상대역으로 도착한 것이다.
수행원들을 거느린 양국의 고위 관리는 미리 잡아놓은 12층의 회의실로 들어섰는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홍규식과 몰로토프는 초면인데도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었으며 테이블에 앉기 전에 악수를 할 때는
포옹까지 했다.
물론 분위기를 주도한 것은 몰로토프다.
러시아가 남북한 컨소시엄에 합류했다는 보도가 아침 8시 뉴스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프린스 호텔에는
그야말로 언론사 기자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었다.
양국의 회담이 끝난 즉시 남북한 러시아 3국 컨소시엄의 대표 자격으로 홍규식은 캄보디아 부총리
보쿠동을 만나 수정 조건을 제시할 예정이었다.
기자들을 내보내고 한·러 관계자들만 방에 남았을 때 몰로토프가 서류를 홍규식에게 건넸다.
“러시아가 캄보디아에 제공할 조건입니다. 캄보디아 해군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겁니다.”
통역의 말을 들으면서 홍규식이 서류를 펼쳤다.
방 안은 조용해졌고 서류를 들여다 본 홍규식의 얼굴이 굳어졌다.
놀란 표정이었다.
다 훑어보고난 홍규식이 옆에서 눈만 껌벅이고 있는 실무 국장에게 서류를 넘겨주더니
몰로토프를 보았다.
어느덧 얼굴이 상기되었고 눈에도 열기가 띄워졌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홍규식의 목소리도 떨렸다.
러시아가 캄보디아에 제공해줄 해군 장비는 엄청났다.
물론 쓰던 장비였지만 구축함 3척, 대형 경비함 3척, 고속함 12척, 연안 경비정 24척, 수송선 2척,
거기에다 해군용 헬리콥터 8대까지 추가되었다.
러시아측 계산으로는 35억달러 가치의 무기였지만 그 효과는 몇십배가 될 것이었다.
중국은 캄보디아의 해군력을 증강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캄보디아는 이 장비만으로도 시암만은 물론이고 동중국해에서도 강력한 해군력을 과시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러시아는 캄보디아를 업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마음이 급해진 홍규식이 자리에서 일어났으므로 몰로토프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잘 되기를 바랍니다.”
몰로토프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캄보디아가 동중국해의 재해권을 장악할 호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밖으로 나온 홍규식은 구름처럼 몰려든 기자단을 헤치고 차에 올랐다.
그 장면은 생중계로 세계 각국에 보도되었는데 홍규식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잘 되면 조 사장님이 일등 공신이 되는 겁니다.”
그 장면을 한식당 안에서 TV로 보면서 강성욱이 조철봉에게 말했다.
“제7유정 공급원 문제가 강대국간의 경쟁으로 비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충격은….”
강성욱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남북한 연합이죠. 난 북한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줄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조철봉도 머리를 끄덕였다.
강성욱이 열성적으로 뛰었지만 북한측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김정산이 들어섰다.
만나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자, 이제 대표가 우리측 조건을 갖고 갔으니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습니다.”
김정산이 빈잔을 집어 한국산 소주를 자작으로 따르면서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러시아를 앞세울 줄은 몰랐겠지요.”
(1650) 동반자-10
이틀 후에 캄보디아 정부는 제7공구 유정 공급권을 한국의 태우개발에 이양한다는 발표를 했다.
부총리 보쿠동이 직접 발표를 했고 TV를 통해 그 장면은 전세계로 방영되었다.
조철봉은 호텔방 안에서 그 장면을 보았는데 주위에는 태우개발 관계자와 최갑중이 둘러앉았다.
강성욱과 김정산 등 남북한측 요원들과 고위급 관리, 경제단체장들은 따로 모여 방송을 듣고 있을
것이었다.
“드디어 해냈군요.”
발표가 끝났을 때 최갑중이 조철봉에게 말했다.
웃음은 띠고 있었지만 태우개발측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게 모두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하고 태우개발 현장소장인 백준학 전무가 소리치듯 말했으므로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닙니다. 북한측이 도와준 덕분이고.”
조용해진 방안에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거기에다 러시아측 이해와 맞은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를 끌어들인 계기는 조사장님이 만드셨죠.”
하고 백준학이 말을 받았다. 몰로토프의 부인 마들렌에게 뇌물을 먹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프놈펜 일은 끝난 것 같군요.”
조철봉이 말하더니 끝쪽에 앉아있는 안길수에게 말했다.
“마들렌한테 전화를 해서 딱 한마디만 해주도록, 고맙다고. 그럼 알 거야.”
그러고는 머리를 돌려 갑중을 보았다.
“마들렌 계좌로 3백만불 입금시켜. 약속은 지켜야지.”
“알았습니다.”
갑중과 안길수가 제각기 전화기를 쥐었을 때 조철봉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이건 뇌물이 아냐, 인사야. 이런 돈은 위법이 아니라고.”
위법인지 적법인지 따질 경황도 없는 태우개발 인사들은 웃기만 했다.
가만있을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모두 방을 나갔고 조철봉 주위에는 통역인 안길수와 송기태만 남았다.
안길수는 북한측이 보내준 러시아어 통역이었고 송기태는 캄보디아 출생의 한국인 2세로 크메르어
통역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안길수를 보았다.
“지난번에 내가 용돈으로 쓰라고 준 5천불 말인데.”
긴장한 안길수가 침을 삼켰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그 돈, 상부에다 보고하고 바쳤지?”
“예.”
안길수가 당연한 일 아니냐는 표정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저는 그런 돈 못받습니다.”
“받을 때 기분 나쁘던가?”
조철봉이 불쑥 묻자 안길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더니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좀 당황은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래, 먹어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야.”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안길수를 지그시 보았다.
“내가 그 돈을 준 이유가 뭐겠어? 자네를 매수하려는 의도였겠나?”
“아닙니다. 그건.”
“앞으로 먹는 버릇을 좀 기르도록 해.”
그러면서 조철봉이 주머니에 든 봉투를 꺼내 안길수 앞에 놓았다.
“만불이야. 일 잘 끝나서 성공 사례비로 주는 거야. 이 돈은 제발 안길수씨 혼자 먹으라고.”
당황한 안길수가 시선을 내렸을 때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갖다 바치기만 하면 능률 떨어진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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