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 동반자(2)
(1643) 동반자-3
다음날 한국의 경제사절단이 발표한 경제협력 방안은 왕자성의 예측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은 차관 30억달러에다 경제부문 투자에 22억달러, 그리고 북한측이 제공할 무기 무상 원조액은
25억달러였던 것이다.
중·일 양국의 규모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오후 3시경이 되었을 때 발표장인 프레스센터에서 돌아온 강성욱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조철봉에게 말했다.
“외신 기자들도 남북한측 조건이 중·일측에 비교하면 턱도 없다고 하더군요.
이미 공급권은 중·일 컨소시엄측으로 넘어갔다고 단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시내 한식당의 밀실 안이다. 방 안에는 김정산과 배동식, 송기태와 안길수까지 다 모여 있었는데
얼굴이 모두 어두웠다.
가늘게 숨을 뱉은 강성욱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우린 남북한이 연합해서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국내 언론도 이번 상황을 호의적으로 보도하고 있거든요.”
그때 탁자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울렸으므로 송기태가 먼저 휴대전화를 집더니 귀에 붙였다.
응답을 했던 송기태가 당황한 표정으로 조철봉을 보고 나서 휴대전화를 안길수에게 내밀었다.
“러시아 사람인데요.”
모두 긴장했고 안길수가 통화를 끝낼 때까지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았다.
이윽고 전화기를 내려놓은 안길수가 조철봉에게 말했다.
“몰로토프씨인데 내일 아침까지 러시아측 조건을 알려 주겠답니다.”
“음. 몰로토프가 움직였군.”
맨먼저 김정산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뇌물이 먹힌 것일까요?”
하고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지만 대답을 기대한 것 같지는 않았다.
바로 머리를 돌려 강성욱을 보았으니까.
“러시아가 남북한 연합에 동참한다면 내놓는 조건으로 지분을 요구할 텐데요.”
그러자 안길수가 대답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합의서를 작성하자는데요.”
“아니, 무엇을 얼마나 내놓을까를 알려주고 나서 합의서를 만들어야지.”
김정산이 안길수가 몰로토프나 되는 것처럼 눈을 치켜뜨고 말하자 강성욱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만나야지요. 대충은 작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숨통이 좀 트이는군.”
금방 마음을 돌린 김정산도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긴장을 풀자 김정산은 희로애락을 바로바로 나타내는 성품이 되었다.
김정산이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어쨌든 러시아를 상대로 한 로비는 성공한 것 같군요. 조 사장님.”
김정산은 조철봉이 어떻게 했는지를 안길수를 통해 다 보고 받았을 것이었다.
“아직 모릅니다.”
조철봉이 정색한 채 말하자 김정산은 다시 강성욱에게 말했다.
“러시아가 해군 1개 전단만 제공해 준다면 남중국해에서 캄보디아 해군 전력이 엄청나게 증가됩니다.
캄보디아 해군이 시암만에서 남중국해까지 진출하게 되면 중국은 베트남과 캄보디아 해군력에
동중국해까지 위협 받게 될 테니까요.”
김정산이 번들거리는 두눈을 좁혀 뜨고 웃었다.
“러시아는 캄보디아를 통해 아시아쪽 해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테니까 일석삼조지요.
우리가 원유 공급권을 갖게 되는 일까지 말입니다.”
몰로토프의 전화 한통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물론 그 원인은 조철봉이 제공했다.
(1644) 동반자-4
![](http://postfiles2.naver.net/20130309_289/il0202_136282855093268Yi5_JPEG/20091113010322300230020_b.jpg?type=w2)
그날 밤 조철봉은 최갑중과 송기태만을 데리고 룸살롱의 밀실에 앉아 있었다.
갑중은 며칠 간 오토바이 공장 설립 문제로 바빴다.
송기태의 누나 탁반디가 갑중을 도와주었는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부지까지 다 선정이 되었다.
“그것들은 다 나갔다는군요.”
잠깐 송기태와 함께 밖에 나가 주인을 만나고 온 갑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것들이란 지난 번에 파트너로 앉았던 한국 여자들이다.
“대신 이곳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들여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갑중이 말하자 조철봉의 시선이 기태에게로 옮아갔다.
“누님한테 고맙다고 전해.”
“예, 사장님.”
“오토바이 공장이 설립되면 네가 우릴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기태가 바짝 긴장했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일을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기 남아서 일해야 될 거야.”
“어머니와 제 고향입니다. 어머니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
“그럼 됐네.”
조철봉이 갑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태한테 오토바이 공장 관리를 맡기면 되겠다. 어때?”
“업무 관리가 적격이죠.”
갑중이 맞장구를 쳤을 때 기태가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제 꿈이 이곳에 설립된 한국회사의 업무 관리였습니다.”
기태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어머니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아가씨 셋이 들어섰다.
동남아 계열의 여자는 대부분 작고 코 모양이 퍼졌으며 피부가 검붉게 탔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부 그런 유형이 있지만 한족이나
그 혼혈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서 우성 유전자를 흡수한 미인이 많은 것이다.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세 여자가 그렇다.
검고 윤기가 흐르는 긴 머리칼, 흑진주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거기에다 누르면 튕겨 나갈 것 같은 생기 있는 피부,
둥근 어깨 밑으로 부드럽게 흐르는 곡선.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미인들이다.
그때 데리고 들어온 주인이 말했다.
“저기 끝에 서 있는 아가씨가 시골에서 막 올라온 앤데 스물둘에 아직 처녀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골에서 교사생활을 1년 간 하다가 일주일 전에 프놈펜에 왔다고 합니다.”
주인의 입 끝에 흰 거품이 일어났다.
이른바 게거품이다.
그 애를 조철봉의 파트너로 앉힐 모양인데 소개가 아직 덜 끝났다.
“돈을 벌어서 다시 시골에 가겠다고 합니다.
제 입으로 처녀라고 했으니까 사실일 겁니다.
그건 제가 보장합니다.”
“허어.”
조철봉보다 갑중이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보였다.
힐끗 조철봉에게 시선을 준 갑중이 주인에게 물었다.
“돈 벌어서 뭐 한다고 합디까?”
“그건 모릅니다.”
“어쨌든 사장님 옆에 앉히세요. 그중 제일 낫구먼.”
그러자 주인이 끝에 선 아가씨에게 조철봉 옆에 앉으라고 눈짓을 했다.
아가씨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조철봉의 옆에 앉았다.
방안의 공기가 움직이면서 옅은 향내가 났다.
조철봉도 아가씨가 들어온 순간부터 눈여겨보았다.
셋 중 제일 마음에 들기도 했다.
물론 갑중이나 기태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