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32. 동반자(7)

오늘의 쉼터 2014. 9. 20. 19:28

532. 동반자(7)


(1653) 동반자-13




눈을 뜬 조철봉은 창밖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탁자 위에 놓인 디지털 시계가 오전 5시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집 안은 조용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옆에서 자는 은지의 숨소리가 들렸다. 

 

가는 숨을 고르게 뱉으면서 은지는 꼬물거리지도 않고 잔다. 

 

이제 냄새도 맡아졌다. 

 

은지한테서 비누냄새에 섞인 살냄새가 났고 시트의 유연제 냄새, 

 

조금 열린 베란다 문틈으로 들어온 정원의 풀냄새도 섞여 있다. 

 

조철봉은 반듯이 누워 천장을 보았다. 

시야에 네모난 형광등이 정면으로 드러났다. 

 

그때 제 숨소리가 귀에 들리면서 가슴이 편안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은지의 숨소리보다 조금 늦고 굵지만 박자가 맞는다. 

 

남자는 결국 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여자하고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온갖 조건이 다 우습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를 겪었고 그 조건별로 따지면 

 

은지보다 월등한 상대를 수없이 만났지만 결코 지금처럼 편안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바로 이것이 가정의 행복인 것인가? 

 

서경윤과의 두번의 결혼 생활까지 합쳐 10년이 지난 후에야 느끼게 된 이 편안함, 

 

조철봉은 저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고 그 서슬에 은지가 깨어났다.

“깼어요?”

은지가 알몸을 붙여오면서 아직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팔과 다리로 조철봉을 감았는데 빈틈이 없다.

“온몸이 나른해.”

은지가 가슴에 볼을 붙이면서 말했다.

“하지만 몸이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워.”

어젯밤 은지는 세번 절정에 올랐다. 

 

두시간동안 은지가 쾌락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조철봉은 확인했던 것이다. 

 

조철봉이 은지의 이마에 입술을 붙였다. 

 

은지의 몸이 붙여지자 다시 아래쪽에 열기가 오른 것이다.

“또 할까?”

조철봉이 묻자 은지는 머리를 젓더니 두손으로 가슴을 미는 시늉을 했다.

“오늘은 그만, 또 하면 나 못 일어날 것 같아요.”

“좋아하면서 뭘.”

“좋지만 학교 가야 돼.”

“아직 여섯시도 안 됐어.”

“그래도 끝나면 일곱시가 넘을 것 아냐?”

하면서 은지가 이미 단단해진 철봉을 밑에서부터 쓸어올렸다가 튕기면서 웃었다.

“자기, 너무 좋아.”

“뭐가?”

“이렇게 안겨 있는 것이.”

“튕기는 거 말고?”

“아이 참.”

하더니 은지가 머리를 조금 물리고는 눈의 초점을 잡고 조철봉을 보았다.

“자기야, 나 부탁이 있는데.”

“뭔데?”

“내 고등학교 동창이 있는데 걔가 좀 안됐어.”

“취직시켜 달라구?”

“응, 영문과를 나와서 몇년 전까지 무역회사에 다녔어. 

 

전자제품 회산데 영업부 팀장까지 하다가 그만 두었는데.”

은지가 다시 조철봉의 가슴에 얼굴을 붙이더니 말을 이었다.

“남편하고 이혼을 하더니 혼자 집에서 지내기가 그런가봐. 

 

그래서 나한테 부탁을 해온거야.”

“꼭 들어줘야 할 관계야?”

“친하긴 했지만.”

잠시 망설이던 은지가 머리를 들었다.

“불쌍해서 그래. 남편한테 배신을 당했거든.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을 요구해서 들어 주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까 여자가 있었다는 거야. 얼마나 분해?”

흔한 이야기였지만 당사자는 그럴 것이다.

 

 


(1654) 동반자-14




회사에 출근한 조철봉이 급한 결재를 마치고 한숨 돌렸을 때 최갑중이 들어섰다. 

 

갑중은 조철봉이 어느 때 한가한가는 물론이고 눈빛만 보아도 생각을 반 정도는 읽어내는 인물이다. 

 

그만큼 심복인 한편으로 거북한 관계이기도 했다. 

 

갑중 앞에서는 도무지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위엄을 갖춰도 이놈이 속으로는 웃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리 겉으로 굽실거려도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사장님, 김정산씨가 서울에 왔답니다.”

소파에 앉은 갑중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이 머리를 들었다. 

 

놀란 표정이다.

“어? 그래?”

“이번에 남북간 경제협의회에 수행원으로 따라왔다는군요. 

 

국정원 강성산씨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강성산씨가?”

“예. 그래서 오늘 밤에 같이 식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오늘 밤?”

했다가 조철봉이 곧 머리를 끄덕였다.

“바쁜 일 없어. 그리고 그 작자를 만나야 돼. 잘됐어.”

“만나야 되다뇨?”

갑중이 눈썹을 모으고 조철봉을 보았다.

“김정산씨하고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일은 없어.”

그러고는 조철봉이 정색했다.

“남북한 관계 증진을 위해서라도 내가 손에 물을 좀 묻혀야겠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녁은 강성산씨가 사더라도 술은 내가 내야겠다. 화정을 예약해 놔.”

“화정을.”

긴장한 갑중이 눈을 크게 떴다. 

 

화정은 그야말로 최고급 룸살롱이다. 

 

마시고 오입질하는 데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조철봉이었지만 화정은 일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했다. 

 

가격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정에는 공직자나 정계 실력자, 대기업 오너들의 출입이 드물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현상인 것이다. 

 

화정의 고객은 들통이 나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자영업자, 

 

또는 벤처 사장, 부동산 관계자들이었는데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철저한 회원제여서 뜨내기는 아예 받지도 않는다. 

 

조철봉도 연줄을 통해 겨우 회원이 되었을 때 마치 복권이 당첨된 것처럼 기뻐했다.

“알겠습니다.”

갑중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기대에 찬 표정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오랜만에 화정에 가게 되는군요.”

“강성산씨한테 몇 명이냐고 물어서 연락을 해.”

“그러지요.”

조철봉은 가장 중요한 아가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룸살롱의 첫째 조건이 아가씨인 것이다. 

 

화정에다 그것을 강조하는 것은 모욕이다.

 

딱 세 번밖에 가지 않았지만 조철봉은 아가씨가 마음에 들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

하고 몸을 돌린 갑중이 바쁘게 문으로 다가갔을 때 조철봉이 번쩍 머리를 들고 불렀다.

“잠깐만.”

멈춰선 갑중에게 조철봉이 말했다.

“오늘 오후 3시쯤 너한테 사람 하나를 보낼 테니까 면접을 봐.”

눈만 껌벅이는 갑중에게 조철봉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디든가 팀장급으로 채용을 해주도록. 알았지?”

“예. 그런데 그자는 누굽니까?”

갑중이 조심스럽게 묻자 조철봉이 외면했다.

“여자야. 남자가 아니다.”

그러자 갑중은 두말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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