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26. 동반자(1)

오늘의 쉼터 2014. 9. 20. 19:23

526. 동반자(1)

 

(1641) 동반자-1

 

 

 

마들렌은 미인이었다. 

 

흰 피부에 붉은 기가 섞인 금발이 어깨까지 늘어졌고 몸매는 육감적이었다. 

 

반소매 셔츠에다 무릎 위까지 올라온 스커트 차림이어서 몸매가 거의 드러났는데 

 

알맞게 살이 붙은 체형이었다. 

 

특히 조철봉의 시선을 사로잡은 부위는 아랫배다. 

 

자연스럽게 약간 튀어나온 아랫배야말로 조철봉의 성감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밋밋해서 그냥 쑥 내려간 아랫배는 조철봉에게 어떤 연상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런 아랫배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졌으며 어떤 때는 그 부분을 덮고 있는 

 

스커트나 바지 천이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뵙자고 해서 놀라셨다는데요.”

안길수가 셋이 자리잡고 앉았을 때 마들렌이 한 말을 통역했다. 

 

마들렌이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속눈썹도 금발이다. 

 

푸른 눈동자, 콧날은 오뚝 섰지만 약간 들창코인 것이 더 귀여웠다. 

 

나이는 40대 중반쯤, 콧등과 눈 밑에 자잘한 죽은 깨가 깔려 있다. 

 

조철봉이 방 안을 둘러보았다. 

 

프린스호텔의 스위트룸 안이다. 

 

오후 3시반이 되어가는 중이었는데 몰로토프는 지금 러시아 대사관에 들어가 있다.

“부인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뵙자고 한 겁니다.”

정색한 조철봉이 그렇게 말했고 안길수도 비슷한 표정으로 통역했다. 

 

조철봉이 통역하고 같이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통역들은 

 

조철봉과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중 안길수가 조철봉과 가장 비슷한 표정을 만들었고 제대로 전달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제일 잘하는 것 같았다. 

 

마들렌이 눈만 깜박였으므로 조철봉은 말을 이었다.

“어젯밤 몰로토프씨를 만나 남북한과 러시아가 연합하자는 제의를 했었지요.”

통역을 들은 마들렌이 머리를 약간 끄덕였다.

“몰로토프씨는 모스크바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안길수가 통역을 마치자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마들렌을 보았다.

“전 한국 정부 측 요원이 아닙니다. 

 

민간 기업인 태우개발의 로비스트지요. 

 

그러니까 처음에 민간 차원의 로비를 하려고 이곳에 투입된 사람입니다.”

조철봉이 또박또박 말한 것은 안길수가 잘 통역하라고 그런 것이다. 

 

눈치를 챈 안길수도 한 구절씩 강조하듯 통역했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부인께서 몰로토프씨한테 적극 나서 달라고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부탁드릴 일은 그것뿐입니다.”

그러고는 조철봉이 마들렌 앞에 쪽지 한 장을 내려놓았다.

“여기 스위스 은행 계좌에 200만달러가 들어 있습니다. 

 

계좌번호와 비밀번호가 위에 적혀 있지요. 언제든지 찾으실 수 있습니다.”

조철봉이 말을 그치자 안길수는 한마디 한마디씩 통역했는데 말 끝이 떨렸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안길수의 말을 들은 마들렌이 눈 앞에 놓인 쪽지를 보았다. 

 

차분한 표정이었다. 

 

마들렌이 시선을 들었을 때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부담이 없는 로비자금이죠. 근거도 남지 않고요. 

 

일이 잘못되더라도 전혀 상관이 없는 자금입니다. 그리고.”

조철봉이 안길수의 통역이 끝났을 때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일이 성사되었을 때 300만달러를 다시 드리지요. 

 

사례금인데 남북한 당국자들도 다 받게 될 겁니다.”

통역을 마친 안길수가 조철봉의 눈치를 보았다. 

 

남북한 당국자까지 다 뇌물을 받는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1642) 동반자-2

 

 

 

“별거 아냐.”


왕자성이 탁자 건너편에 앉은 위윤에게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한국 경제사절단이 내놓을 카드는 뻔해. 

 

오성전자나, 근대, M·G를 중심으로 20억달러쯤 될 거야.”

위윤의 시선을 받은 왕자성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요즘 한국의 달러 보유고가 많아졌지만 차관으로 내놓을 자금은 많지 않아. 

 

그것도 20억달러쯤 될까?”

“그렇지요.”

위윤도 웃음 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거기에다 북한 측이 제공할 무기 무상원조 금액도 20억달러 정도가 될 것이었다. 

 

중·일의 조건에 비교하면 턱도 없다. 

 

바로 며칠 전만 해도 남북한의 갑작스러운 연합에 사색이 되었던 왕자성이다. 

 

그러나 일본을 끌어들임으로써 중·일의 조건은 독자로 나섰을 때보다 더 증가되었다. 

 

양국이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오후 6시. 대사관의 넓은 정원 위로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 한국의 경제사절단은 부총리 보쿠동을 방문하고 

 

한·캄 양국의 경제 협력을 논의했다. 

 

한국은 내일 경제협력방안을 제시할 예정이었지만 이미 왕자성은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부대사 동지의 공적입니다.”

위윤이 정색하고 말했다.

“부대사 동지께서 일본과의 연합을 제의하지 않으셨다면 우린 지금쯤 좌절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직 방심하면 안 돼.”

그렇게 말했지만 왕자성은 얼굴을 펴고 웃었다.

“일주일 후에 보쿠동이 공급권 발표를 할 때까지 말야.”

제7공구 유정의 원유 공급권에 대한 결정은 일주일 후에 발표되는 것이다.

“그런데, 참.”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얼굴로 왕자성이 위윤을 보았다.

“그, 한국의 로비스트말야.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북한 놈들하고 자주 어울립니다.”

그러고는 위윤이 쓴웃음을 지었다.

“룸살롱에 간 적도 있었는데 여자를 데리고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도청 장치를 해놓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부대사 동지.”

위윤의 표정이 금방 굳어졌다.

“아마 북한 측이 알려준 것 같습니다. 그런 방면에서는 북한 측에 전문가가 많으니까요.”

“망할 놈들.”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왕자성의 눈썹이 추켜세워졌다.

“우리하고 손을 잡으면 기름 얼마쯤은 나눠줄 텐데 말야, 우리를 적으로 삼다니.”

“이제 큰일 났지요, 그 사람들.”

위윤이 위로하듯 말했다.

“공급권이 발표되면 북한 측 담당자들은 모두 문책을 당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판단을 잘못한 책임 추궁을 당하겠지요.”

“그렇게 돼야지.”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왕자성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긴 한국을 끼고 공급권을 따내면 

 

저희들이 주도권을 쥐고 권리 행사를 하려는 속셈이었겠지.”

“모험을 한 것이죠.”

맞장구를 친 위윤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떠올랐다.

“그러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 상황을 맞겠지요.”

다시 방안 분위기는 밝아졌다. 

 

덩달아서 요즘 대사관 분위기도 밝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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