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 협력(11)
(1636) 협력-21
“중·일의 조건은 굉장합니다.”
먼저 김정산이 뜸을 들이고 나서 길게 숨을 뱉었다.
오후 2시반, 한식당의 밀실에는 김정산과 강성욱 둘이 마주 앉아 있었다.
남북한 현장 책임자로서 둘은 하루에 세번 만난 적도 있다.
지금 김정산은 포이한테서 들은 중·일이 공조해서 내놓은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김정산이 말을 이었다.
“중·일 양국의 컨소시엄에 제7공구 원유 공급권을 준다는 조건으로 차관 57억달러,
무기원조 55억달러, 그리고 한다자동차와 부품공장까지 건설하는 데
4년간 50억달러을 투자한다는 겁니다.
그럼 4만5천명의 고용인력이 창출될 것이라는 군요.”
“…….”
“차관 조건은 20년 거치 후 20년간 상환한다는 조건입니다.”
“…….”
“무기는 중국이 공급해 주기로 했는데 무상으로 전투기 2개 중대, 탱크 5개 대대분입니다.
거기에다 고속정 3척, 2개사단을 편성할 수 있는 각종 화기가 공급됩니다.”
그러고는 김정산이 다시 긴 숨을 뱉었다.
식탁 위에 밥과 찬이 놓여 있었지만 둘은 수저도 들지 않았다.
“중·일이 필사적입니다. 이건 마치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
김정산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강성욱이 머리를 들었다.
“내일 한국에서 경제사절단이 도착합니다.
한국에서도 전자제품과 자동차, 화학공업까지 약 30억달러
규모의 경제 투자계획안을 제시할 것 같은데.”
김정산의 시선을 받은 강성욱이 쓴웃음을 지었다.
“정부측에서 내놓을 차관은 이번에 총리께서 오셔야
윤곽이 잡히겠지만 중·일측보다 높지는 않을 겁니다.”
중·일 어느 한쪽만 상대했을 때는 남북연합의 조건이 우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연합에 대응해서 중·일이 바로 컨소시엄을 형성하자 입장이 달라졌다.
그때 김정산이 입을 열었다.
“평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육군 3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화기에다 미사일,
그리고 3개 포병연대를 창설할 수 있는 각종 포를 지원할 수 있답니다.
달러가치는 30억달러정도 될 거라고 합니다.”
강성욱이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내렸다.
장사꾼은 다 그렇다. 제 상품 가치는 올리고 상대방 상품은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강성욱은 북한측이 무기 가격을 높게 불렀다고 믿는 것이다.
김정산이 강성욱의 눈치를 보더니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강 선생, 우리가 무기 가격을 높여 부른 건 아닙니다.
그건 수출 가격입니다.”
“아,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시선을 든 강성욱이 따라 웃었다.
원유 공급권을 획득하게 되면 한국은 북한측에 캄보디아에 공급한 무기 가격만큼
보상을 해주기로 약정한 상황인 것이다.
그때 김정산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지금쯤 몰로토프를 만나고 있겠는데.”
“누가 말입니까?”
강성욱이 묻자 김정산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모스크바에서 몰로토프와 친분이 있는 러시아 사업가를 불러왔지요.”
목소리를 낮춘 김정산이 말을 이었다.
“그 사업가는 우리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믿을 만합니다.”
“그렇군요.”
강성욱이 머리를 끄덕였다.
러시아인을 보내 길을 터놓는 것이 자연스럽다.
북한은 러시아에 인맥이 많은 것이다.
(1637) 협력-22
보리스 티모센코는 거인이었다.
체격도 컸고 목소리도 굵었다.
승용차 안에 목소리가 쩌렁 울렸다.
“몰로토프가 이곳에 온 목적도 공급권 때문이니까 제의에 호의적이긴 합니다.”
앞자리에 앉은 안길수의 통역이 끝나자 티모센코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승산을 따지더군요.
명분에다 승산, 이 두 조건만 갖춰진다면 몰로토프는 협력할 겁니다.”
통역을 한 안길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몰로토프의 처신이 얌체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듣고 난 조철봉도 쓴웃음을 지었다. 러시아에서 불려온 티모센코는
한 시간 전에 몰로토프를 만난 것이다.
북한측의 부탁으로 몰로토프에게 남북한 양국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반응을 떠보는 역할을 했다.
오후 8시, 그들은 몰로토프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그때 조철봉이 티모센코에게 불쑥 물었다.
“몰로토프씨하고 금전 거래를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안길수가 그대로 통역을 했지만 티모센코는 눈만 껌벅이며 조철봉을 보았다.
그래서 조철봉이 다르게 표현했다.
“저기, 뇌물을 주고받으신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통역을 들은 티모센코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예, 있지요.”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안전하게 먹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먼저 손을 내민 적이 없고 뒤탈이 없다는 확신이 서야 먹었습니다.”
“으음.”
안길수의 통역을 들은 조철봉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프로다. 로비스트의 가장 까다로운 상대가 바로 이런 부류인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이런 부류는 크게 도움이 못 되는 대신 돈만 챙기는 경우가 많다. 위험한 일에는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티모센코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으므로 안길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더니 낮게 통역했다.
“몰로토프가 부인하고 같이 온 것을 보면 이번 일에 크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고 하더군요.”
조철봉이 눈을 치켜뜨고 안길수를 보더니 시선을 티모센코에게로 돌렸다.
“몰로토프 부인도 공무원인가요?”
“아닙니다.”
조철봉의 질문을 들은 티모센코가 쓴웃음을 지었다.
“비공식으로 동행해온 겁니다. 물론 부인 경비는 본인이 부담한 것으로 되어 있겠지요.”
티모센코의 말이 이어졌다.
“몰로토프는 이곳 방문을 마치고 스위스를 거쳐서 귀국할 예정이더군요.”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스위스에는 몰로토프의 딸이 유학 가 있는 것이다. 차가 약속장소인 시 변두리의 중국식당 후문에 멈추더니 밖에서 문이 열렸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을 연 사내가 한국어로 조철봉에게 말했다. 어둠 속이어서 얼굴 윤곽은 흐렸지만 북한 정보원이다.
주위는 한산했고 도로에는 차량 통행도 없다. 다만 앞쪽 붉은 벽돌건물의 불빛만 거리에 비치고 있을 뿐이다. 차에서 내린 셋은 사내의 안내를 받아 후문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도 역시 조용했다.
후문 옆은 바로 주방이었고 붉은색 양탄자가 깔린 복도를 걸어 왼쪽 끝방 앞에 선 사내가 문에다
노크를 하고 나서 비켜섰다.
“들어가시지요.”
몰로토프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적지에서 간첩들이 만나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조철봉은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525. 협력(13) (0) | 2014.09.18 |
---|---|
524. 협력(12) (0) | 2014.09.18 |
522. 협력(10) (0) | 2014.09.18 |
521. 협력(9) (0) | 2014.09.18 |
520. 협력(8) (0) | 2014.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