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16

오늘의 쉼터 2014. 9. 17. 16:21

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16

 

 

 

그렇게 백반의 집을 다녀온 며칠 뒤, 춘추는 마침내 김유신을 다시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눌최의 장지에서 나누었던 말을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자신의 집 별배 하나를 놓아 유신이 있는 곳을 알아보라고 심부름을 보냈더니

 

한참 만에 그 별배가 이마에 신짝을 붙인 채로 헐레벌떡 뛰어와서,

“유신 도령을 상수관 앞에서 만났습니다.

 

소인이 인사를 드리니 누구냐고 물어서 우리 춘추 도령께서 유신 도련님을 뵈려고 안달이시라

 

소인이 사전 정탐을 나온 길이라고 이실직고를 했습니다요.”

기다리는 사람 앞에서 쓸데없는 사설부터 늘어놓았다.

“그랬더니 뭐라고 하시더냐?”

“별말씀은 없고 그저 도련님께 안부나 전해달라 하십디다.”

“너는 내가 유신 도령을 찾는 줄 알고서도 어찌하여 뫼시고 오지 않았느냐?

 

함께 가시자는 말은 안해보았던 게로구나?”

“웬걸입쇼. 소인이 멍충입니까요?

 

이래뵈도 육갑에 12간지를 짚고 나락 백 섬을 말로 달아 묶는 사람은 이 집안에 소인밖에 없습니다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말이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지만 아무튼 이 집 하인 중에 소인만한 이가 없다는 뜻입지요.”

“얘, 실없는 소리 고만두고 어서 유신 도령의 얘기나 전해보아라. 어디로 가신다더냐?”

“소인이 직접 물어 들은 답은 아니지만 하주에서 아우들이 왔나 봅디다.

 

마침 상수 도령 하나가 주막에 들러 목이나 축이자고 은근히 유신 도령의 옷깃을 끌어당겼더니

 

아우들이 기다린다며 바삐 뿌리치고 가시는 품이 소인 같은 것이 제아무리 머리를 산발하고

 

아가리를 귀밑에까지 찢어올려 붙잡아본들 될 일이 아닌 듯했습니다요.”

“이런 녀석하고는.”

춘추는 입심 좋은 하인의 넉살을 들으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그 길로 곧장 유신의 집을 찾아갔다.

춘추가 유신의 집에 이르러 대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머리를 수건으로 질끈 동여맨 20세 전후의

 

건장하고 수려하게 생긴 청년이 방에서 밥상을 들고 대청을 내려서다가,

“뉘시오?”

하고 점잖게 물었다.

 

춘추가 보니 어딘가 면이 익은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했다.

 

하지만 행색을 보아하니 빈틈없는 범골이라,

“용화 도령께서는 안에 계시는가?”

하고서 그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김춘추가 왔다면 아실 걸세. 연통 좀 하여주시게.”

했더니 그 청년이 왈칵 반색을 하며,

“춘추 도령이 이렇게 장성을 하였소?

 

소인 소천입니다요!

 

옛날 만노군에 오셨을 때 같이 놀던 소천이를 모르시겠는지요?”

하였다.

 

춘추가 그제야 보희, 흠순과 같이 놀던 소천이를 알아보고는,

“허, 자네가 소천인가?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네.

 

자네 부친이 아시량국 일관을 지낸 성보 아니야?

 

그 양반은 내가 다 크도록 우리 집에 왕래가 있었지.”

하고 인사를 건넸다.

 

춘추가 소천에게 성보의 안부를 물으니 소천이,

“저의 아비도 이제 칠순이 넘어 기력이 전만 같지 않습니다.

 

근자엔 관아 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개신개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남들 일하는 데

 

쓸데없는 참섭이나 할 정도지요.”

하고서,

“그런데 어쩝니까요?

 

우리 도련님께선 좀 전에 늦은 조반상을 물리시고 하주에서 올라온 누이들과 같이

 

대찰 구경을 나가셨습니다.”

하였다.

 

춘추가 대청으로 올라서다 말고,

“이 엄동에 대찰 구경이라니?”

하고 반문하자 소천이,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고는 유신의 두 누이가 설 지낸 음식을 싸들고 하주에서 올라온 것과,

 

그 누이들이 난생 처음 금성에 온 사람들이라 도착하자마자

 

서울구경을 시켜달라며 성화가 대단했던 것을 말하고서,

“오늘 식전에도 제가 사지를 달달 떨어가며 웬만한 곳은 다 뫼시고 다녔는데

 

보는 것마다 신기해하고, 별것도 아닌 것을 보고도 탄복을 금치 못하더니

 

집에 와서 밥 한술 뜨고는 또 구경을 나가자고 조르지 뭡니까.

 

그러던 차에 큰도련님이 점고를 맞고 오시니 두 누이가 꽃 본 나비마냥 한꺼번에 달려들어

 

조반 먹는 내내 양쪽 어깨를 하나씩 주무르고 경쟁이라도 하듯 야지랑을 떱디다.

 

결국 누이동생 등쌀에 못 견딘 도련님이 대찰 구경이나 시켜주겠다고 데리고 나갔습지요.

 

아마 지금쯤 흥륜사나 황룡사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며 웃었다.

유신에게는 아우가 셋 있었다.

 

본래 유신의 어머니인 만명부인은 유신을 볼 때 하도 고생이 심했던 탓인지

 

그 뒤로 좀체 자식이 들어서지 않았는데, 네댓 해가 지난 뒤에야 딸을 하나 낳았다.

 

그러나 그렇게 본 딸이 미처 돌도 지나지 않아 까닭 없이 죽으니 만명이 크게 낙담하여

 

한동안은 음식조차 입에 대지 않았다.

 

서현이 죽은 딸은 팔자에 없는 자식이라며 곁에서 아무리 위로를 해도

 

사정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성보가 서현에게 아이 때문에 얻은 심병(心病)은

 

새로 아이를 낳아야 없어진다고 귀띔하면서,

“불공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고들 합디다.”

하고 권유하였다.

 

서현이 성보의 권하는 바를 옳게 여기고 만명에게 말하니

 

만명이 기왕 불공을 드릴 거면 낭지 법사가 있는 취산이 좋겠다고 하였다.

 

선친의 유택이 있는 데다 자신의 본향인 금관 땅에서 가까운 취산을 서현인들 마다할 리 없었다.

 

이에 만명이 혼자 만노군을 떠나 취산 몽암서 여러 날을 머물며 불전에 치성을 드렸는데,

 

하루는 낭지가 만명을 보고,

“그만하면 부인의 몸이 취산 정기를 담뿍 받았으니 앞으로 귀한 자식들을 많이 볼 게요.”

하고서 시자 담수더러 만노군까지 수행해 가라고 말하였다.

아니나다를까, 만노군으로 돌아온 만명의 몸에 곧 태기가 돌았다.

 

그렇게 낳은 딸이 보희(寶姬)요,

 

그로부터 2년 터울로 아들과 딸을 하나씩 더 보태니

 

아들의 이름은 흠순(欽純)이며 딸은 문희(文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