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12
김유신과 김춘추가 정식으로 만나 인사를 나눈 것도 바로 그 자리에서였다.
유신은 춘추가 눌최와 벌구의 골편을 수습해온 사실에 크게 감동했고,
춘추는 벌써부터 유신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호기심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법사 원광이 가실사로 떠나며 특별히 두 사람을 한자리에 불러,
“나 가고 나거든 서로 의논들을 잘해 백년대계를 여물러보게나.”
종잡을 수 없는 말을 뱉고는,
“가야 없이 신라 없고 신라 없는 가야 없어.
이 말은 거꾸로 가야가 있어야 신라가 있지,
그 둘이 서로 나뉘어 가지곤 아무것도 안 돼.
그것 보면 구해대왕, 법흥대왕 양 어른이 두 분 다 선견지명이 대단했어. 금불여고일세.”
말을 마치자 다시 어린애처럼 티없이 웃었다.
날은 저물었지만 횃불이 켜져 사방은 대낮처럼 밝았다.
원광이 떠난 뒤 유신과 마주앉게 된 춘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진작에 찾아뵙고 문안을 여쭈었어야 도리인데 이제서야 뵙습니다.
족숙께서는 그간 평강하셨는지요?”
춘추는 유신을 족숙이라 칭했다.
촌수를 따지자면 당고모할머니의 아들이니 마땅히 아저씨뻘인데,
비록 종문은 아니었지만 집안끼리 가까우므로 친숙한 호칭을 고른 것이었다.
그러나 유신은 춘추의 인사에 대답하지 아니하고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래, 춘추 도령께서는 장안에 가셔서 무얼 보고 오셨소?”
뜻밖의 질문을 받은 춘추가 잠시 생각한 끝에 낭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성성한 당의 기세를 구경하고 왔습니다.”
“엊그제 개국한 당이 승승장구하는 까닭이야 당연히 있을 테지요?”
“물론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당은 국기(國基)가 편협되지 않고 정사가 관후하여 민심을 빨리 얻었고,
인물을 제대로 영접할 줄 알며, 재주와 기량이 뛰어난 이는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지금 보위에 오른 이세민은 인재를 식별하는 안목이 탁월합니다.
예로부터 사람을 아는 것이 왕도(王道)요 일을 아는 것이 신도(臣道)라 했고,
물이 모여 내를 이루어야 교룡이 살고 흙이 쌓여 산이 되어야 수목이 무성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임금의 뜻과 제도가 함께 넉넉하여 포의(布衣)의 굴기지사(屈奇之士)들이 다투어 모여들고 있으니
어찌 그 기업이 순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실로 부러운 일입니다.”
춘추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유신이 다시 물었다.
“하면 우리 계림의 제일 큰 우환은 무엇이라 보시오?”
“작게는 반목과 불신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백성들은 왕실을 믿지 못하고 왕실은 신하들을 믿지 못합니다.
왕실 내에서도 형과 아우가 서로 미워하고 신하들간에도 그렇습니다.
조정에서 외지로 병권을 주어 군주를 파견하면 그를 믿지 못해 반드시 자제들을 상수로 붙잡아두지요.
손바닥만한 땅에 실낱 같은 권세를 가지고도 조석으로 다툼을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게는 천년 가까이 개 이빨처럼 지경을 접하고 싸우는 삼한의 지형 지세입니다.
저는 광활한 중국 땅에서 6족을 아울러 개국한 당을 보고 줄곧 부러운 느낌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 보셨소.”
유신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령도 아시겠지만 나는 운명이 기구하여 뼈는 가야 왕실에서 얻고 살은 신라 왕실로부터 얻어
세상에 나왔소.
집안에는 망국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 예절과 습속, 음식이며 의복에 이르기까지
가야의 것을 좇았으나 대문 밖에만 나서면 또한 신라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으니
어찌 그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일이 없었겠소.
나는 가야인도 신라인도 아닌데 가야 사람은 날더러 가야인이 되라 하고,
신라 사람은 또 신라인으로 살라 합디다.
양친부터 요구하는 것이 서로 달랐던 게지요.
하나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이몸에게 내린 거역할 수 없는 천명(天命)임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소.”
유신은 잠깐 말을 그치고 춘추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5백 년을 이웃하여 내려오던 신라와 가야가 하나로 합쳐 일국(一國)을 이루었듯이
이제쯤은 누군가가 나서서 삼한을 모두 하나로 아울러야 하오.
삼한 백성들이 대대로 고통을 당하고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까닭은 사직이 달라
국력의 부침(浮沈)과 왕업의 성쇠에 따라 공방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오.
그렇게 다퉈온 세월이 어느덧 천년이외다.
그러나 제아무리 나라가 중하고 사직이 중한들 백성들의 목숨만하겠소.
백성이 죽고 없는데 나라가 어찌 있을 것이며, 사직 또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수나라가 망했다고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수나라 백성이 곧 당나라 백성이오.
가야는 이미 옛날에 없어졌어도 가야인들은 보다시피 이 나라 산곡간에 흩어져
여전히 가계와 세대를 이어가며 살지 않소?
나라가 망하면 끊어지는 것은 군장(君長)일 뿐이오.
나는 내 집안의 기묘한 가풍을 몸소 겪으며 바로 그 점을 깨우쳤소.
누군가가 나서서 삼한의 사직을 일가(一家)로 아우르기만 한다면
백성들은 얼마든지 한핏줄, 한식구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오.”
유신의 말투는 거침이 없었지만 흥분으로 음성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춘추는 느꼈다.
수 왕조의 몰락과 당 왕조의 시작을 똑똑히 지켜본 춘추로선 유신의 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 역시 친가와 외가가 원수처럼 뒤얽힌 복잡한 환경에서 성장한 처지였다.
그 답답하고 안타까운 전대의 원한이 결국에는 전왕의 적손이자 금왕의 외손인 자신을 진골로까지
추락시키지 않았던가.
비록 모양은 달랐지만 가계를 통한 반목과 갈등을 겪고, 그것을 극복할 이념을 세우기까지
양인이 걸어온 길은 꽤나 흡사한 구석이 있었다.
춘추는 유신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본래 삼한은 땅이 좁아 한 왕조가 다스릴 만한 곳입니다.
백성들도 조상은 다르지만 오랜 세월 서로 인접하여 지내온 까닭에 말과 글이 통하고
먹고 입는 것이 유사하며 그 심성이나 풍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5호가 발호하고 만족(萬族)이 날뛰던 광활한 중국 대륙도 천하 통일을 몇 번씩이나 하였는데,
오히려 손바닥만한 삼한 땅에선 유사 이래 통일 왕조를 세운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족숙께서 삼한을 일가로 아우르려는 큰 뜻을 품으셨으니
용렬한 춘추로서는 그저 놀랍고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한동안 춘추는 만면에 감격스러운 빛을 띠고 앉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족숙께서 세우신 뜻은 일국의 사직 하나를 흥하거나 망하게 하는 것과는 격이 다릅니다.
전대미문의 거룩한 천년대업(千年大業)일 수도 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그만큼 무모하고 허황된 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뜻을 펼칠 치밀한 계책과 방안이 있어야 하겠지요.
어떻게 하면 근본이 다른 삼한을 하나로 합칠 수가 있겠는지요?”
“도령도 좀 전에 가야인과 신라인이 서로 다투는 광경을 보았을 테지만
우선은 계림의 민심부터 하나로 합쳐야 하오.
그게 성공한다면 궁극에는 삼한의 민심도 능히 아우를 수 있겠지만 실패하면
한낱 허황된 자의 부질없는 헛소리에 불과하지요.”
고개를 끄덕이던 유신이 문득 허공으로 눈길을 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기러기가 어찌 홀로 만리장천을 날며 탕(湯) 임금을 만나지 않았던들
어찌 이윤(伊尹) 같은 명신이 뒤에까지 이름을 남겼겠소.
천금이나 되는 가죽 외투는 한 마리 여우 가죽으로는 만들 수 없고,
누대나 묘당의 서까래는 한 그루의 나무로는 깎을 수 없는 법이오.
불을 피워 밥을 짓고자 하는 이가 바라는 것이 작은 불씨이지 어찌 미리부터 활활 타는 큰 장작불이겠소.
나는 요즘도 답답한 가슴을 억누르며 새벽마다 정한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비는 것이 있소.
우리 계림에 부디 삼한을 아우를 만한 큰 임금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우선 가야와 신라의 경계를 허물고, 왕실의 내분과 대신들의 싸움을 잠재우고,
외관의 신하를 믿지 못해 그 자식을 볼모로 잡아두는 저 딱하고 한심한 상수 제도와 같은 것을
보란 듯이 없애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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