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9

오늘의 쉼터 2014. 9. 15. 21:23

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9

 

 

 

“이 버르장머리없는 애새끼야, 감히 어디서 칼을 뽑느냐? 너는 이 천품이 상대해주마!”

수십 근이나 되는 창날을 휘두르며 달려든 이는 천존의 아우였다.

그는 아까부터 형의 곁에서 시종 아니꼬운 얼굴로 죽지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어린 소년 하나가 칼을 뽑아 들고 설치자 눈에 불을 켜고 나서서 형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치달았다.

구경하던 청년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쪽으로 자리까지 옮겨가서 흡사 전장의 대치전과 같은

형국이 되었고, 그렇게 둘로 나뉜 양측 진지에서는 박수와 야유를 퍼부으며 서로 죽이라는

고함소리가 드높았다.

물론 다수는 죽지 편이요,

천존을 응원하는 청년들은 그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그렇다고 결코 만만한 숫자는 아니었다.

일이 걷잡을 수 없게 변하자 화주를 비롯해 조정에서 참관을 나온 중신들이 황급히 징을 치며

소리를 질러 그만둘 것을 호소했지만 통할 상황이 아니었다.

조정 중신들과 법사 원광의 사이에 앉아 있던 춘추도 내심 크게 놀라고 당황했다.

그는 술자리에서 자신을 꾸짖었던 죽만랑이란 자가 나설 때부터

비상한 관심을 갖고 사태를 주시했는데, 곧 욕설이 난무하고 칼날과 창날까지 번뜩이는 것을 보자

호기심을 넘어 참담한 느낌마저 들었다.

춘추는 싸움을 뜯어말리느라 우왕좌왕하는 화주를 불러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화주가,

“이것이 지금 우리 계림의 고질입니다.

날이 갈수록 신라인과 가야인으로 근본을 따지고 뿌리가 갈라지니

이러다간 정말로 나라가 둘로 나뉘는 게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잔뜩 근심 어린 낯으로 대답하고서 법사 원광에게,

“대체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요. 스님께서 한번 말려보십시오!”

하며 애원했다.

 

그때까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말이 없던 원광은 화주의 청에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닐세. 가야인들이 어디 내 말을 듣나?”

“하면 방법이 영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주 없지야 안하고 꼭 하나가 있지.”

“그게 무엇입니까?”

“용화랑이 있지 않나. 이 분란을 막을 사람은 임금도 아니고, 자네와 나도 아니고,

천하에 오직 김유신이가 있을 뿐이네. 화랑을 관리하는 자네가 그걸 모르시던가?”

원광의 말에 화주는 홀연 안색이 밝아졌다.

그는 잊고 있었던 것을 갑자기 생각해낸 듯 기뻐하며 급히 아랫사람을 부르더니,

“어서 용화랑을 모셔 오너라, 어서!”

하고 소리쳤다.

그사이 어느덧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양편에서 질러대는 환호며 함성이 번갈아 지축을 흔들고,

창날과 칼날 부딪치는 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춘추는 스승 원광의 입에서 김유신이란 말을 듣는 순간 아, 하고 무릎을 쳤다.

그라고 일찍부터 계림의 산곡간에 떠돌던 용화향도의 명성을 모를 턱이 없었고,

불과 18세의 어린 나이로 국선에 뽑혀 화랑들을 가르쳤다는 신화 같은 소문을 듣지 못 했을 리 없었다.

일순 춘추의 뇌리에선 어려서 만난 유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 용춘을 따라 서너 차례 만노군에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유신의 어머니인 만명부인은 춘추에게는 당고모할머니였다.

그렇게 치자면 유신의 동기들은 아저씨나 아주머니뻘이었지만 어른들은 촌수가 높으면

재미가 덜하다며 형제처럼 지내라고 말하곤 했다.

춘추가 말로만 들어온 유신을 처음 본 것도 그 가운데 하루였다.

유신은 그때 군의 들머리 공터에서 몇몇 청년들과 어울려 생마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용춘을 보자 반갑게 달려와 꾸벅 절을 하고는,

“어디 보자, 네가 춘추냐?”

하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서 있던 춘추를 양팔로 덥석 안아올려 만노군 태수 관사까지

무등을 태워주었다.

일곱 살이나 위인 유신은 어린 춘추의 눈에는 장성한 어른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씩씩하고 활달한 모습은 형 없이 자란 춘추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 깊은 것이었다.

하지만 유신에 대한 기억은 그것뿐이었다.

춘추는 나이가 많은 유신보다도 같은 또래의 그 아우들과 친하게 놀았다.

보희는 자신과 동갑이었고, 흠순은 두 살이 아래였다.

특히 보희와는 서로 태어난 달을 가지고 다툰 일도 있었다.

그 밑으로 다시 문희가 있었지만 주로 같이 어울려 논 상대는 보희와 흠순,

그리고 성보의 아들인 소천이었다.

쇠를 녹여 병기구를 만드는 만노군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장소가 여러 군데였는데,

춘추는 보희와 흠순을 따라 몰래 금역으로 숨어들어 쇠를 녹이는 상형로도 보고,

장정들이 밤새 활활 타오르는 불길 옆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풀무질하는 광경도 구경했다.

한번은 야산 둔덕에 참숯 캐는 사람들을 구경하러 갔다가 발목을 접질려 보희의 등에

업혀 온 일도 있었다.

 외톨이로 자란 춘추에겐 밥을 가지고도 다투는 형제들이 있다는 게

그렇게 신기하고 부러울 수 없었고, 산야를 맹수처럼 뛰어다니며

열매를 따먹고 짐승을 잡아먹는 시골 생활이 꿈처럼 신비롭게만 보였다.

그래서 춘추는 용춘이 만노군 할머니댁에만 간다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따라 나서곤 했다.

그러나 친할머니 폐왕비가 돌아가신 뒤부터 용춘은 일체의 바깥 출입을 삼간 채 철저히 은둔해

지냈기 때문에 춘추도 더 이상은 만노군에 따라갈 일이 없어지고 말았다.

철이 들면서 춘추는 나라 안에 회자되던 유신과 용화향도에 관한 명성을 듣고 내심

퍽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만나서 서로 얘기를 나눌 만한 기회는 없었다. 서현이 하주 군주로 가고 유신이

금성에 상수살이를 처음 왔을 때 집으로 인사를 온 유신을 보긴 했지만,

그때도 유신은 아버지 용춘과만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갔고, 자신은 그저 먼발치에서

가볍게 목례만 했을 뿐이었다.

춘추가 유신의 인품과 됨됨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국에 있을 때였다.

죽은 눌최는 장안에 숙위할 때 늘 유신에 관한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숱한 화랑들을 보고 다녔지만 계림에서 믿고 따를 만한 인물은 오직 유신밖에 없다는 게

눌최의 지론이었다.

눌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세와 구칠의 도움으로 장안에서 곡물 장사를 시작한 설계두도 그랬다.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용화향도 시절을 입에 올리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계두는 유신이 이사부나 거칠부에 못지 않을 큰 장수가 될 거라며 큰소리를 쳤고,

눌최는 유신에게 삼한을 평정할 큰 뜻이 있으니 진흥대왕과 같은 성군만 만난다면 오히려

전조의 어느 명장보다 위대한 장수가 될 거라고 장담했다.

두 사람이 하도 유신을 칭찬하고 떠받드니 나중에는 같은 남자로서 은근히 질투심이 일기도 했다.

특히 눌최는, 춘추가 보기에 몸은 자신을 호위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유신에게 가 있는 듯했다.

 

그래서 하루는 눌최를 보고,

“자네 입으로 나와 김유신을 한번 비교해보겠는가?”

농담하듯이 물어보았더니 눌최가 잠시 생각하다가,

“제가 용화랑을 따르는 것은 그분의 호걸다운 풍모와 가슴속에 품은 야망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도련님께서는 춘추 아직 어리시니 부지런히 공부를 하셔서 뜻을 세우십시오.”

 

점잖게 충고하여 춘추가 홀연 낯을 붉힌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