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6
그러나 왕은 신하들과 약간 생각이 달랐다.
생사의 경계에 서보면 사람이 순하고 착해지는 법인가.
아끼던 아우를 잃고 비통함이 채 가시지 않아 어느 때보다 혈육과 지친을 중히 여기게 된 그로선
조위 사절로 온 처조카를 죽인다는 게 우선은 탐탁할 리 없었고, 원자의 앞날을 고려할 때도
적국의 될성부른 인물을 미리부터 죽여가면서까지 왕업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전쟁에서 지략을 쓰고 꾀를 내어 적을 죽이는 것은 장한 일이지만 적수공권의 조위사를 베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누가 어리석은 말로 왕업의 번성을 논하는가.
전에 나를 가르쳤던 스승 조불은 자신의 양식을 덜어 날짐승과 길짐승에게 나눠주었다.
산중의 혜란이 불에 타면 내 집의 난초가 슬퍼하고,
강가에 소나무가 무성하면 들판의 잣나무가 기뻐하는 이치를 그대들은 정녕 모른단 말인가.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남을 해치고 어찌 내가 흥성하기를 바라리. 천하의 섭리란 그런 게 아니다.”
조불로부터 배워 도학에도 달통했던 왕이었다.
그는 신하들의 주장을 일언지하에 물리치고 곧 원자인 의자를 불렀다.
조석으로 대하던 원자였지만 김춘추를 만나고 나자
새삼 그 기상과 의표를 비교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찾아계신지요.”
춘추와는 달리 수려한 용모와 늠름한 체구의 의자가 어전에 이르러 공손히 절하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왕은 짐짓 정색을 하며 신라에서 김춘추가 조위 사절로 온 일과 조정에서
그의 됨됨이를 두려워하여 죽이자는 공론이 일고 있음을 대략 설명했다.
“엄격히 말하면 김춘추는 너의 세대 사람이지 내가 상대할 인물은 아니다.
하여 네 의향을 물어보고 그대로 처리할 것이니 원자는 뒷날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려보라.”
의자는 아버지 장왕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이내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춘추라는 자를 죽여야 할 이유는 없고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소자는 다만 불효와 관련된 이유를 들어 춘추라는 자를 그냥 돌려보냈으면 합니다.
만일 그를 죽인다면 소자는 세 가지 불효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왕이 궁금한 표정을 짓자 의자가 말했다.
“나라의 조문 사절로 온 자를 해치는 것은 아바마마를 만대의 조롱거리로 만드는 일입니다.
이것이 소자가 저지르는 첫째 불효입니다.
두번째는 춘추가 신라 임금의 외손일진대 저와는 이종간이며 어마마마께는 빈틈없는 조카입니다.
만일 춘추를 죽인다면 어머니께선 비록 내색은 아니하시겠지만 속으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제가 춘추라는 자 따위를 겁내어 죽여달라고 한다면 부모님께서는 비록 그렇게는 할지언정 나라와 왕실의 앞날에 대해 얼마나 심려가 크오리까.
자식으로서 작고 졸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소자에겐 다시없는 치욕이요,
결코 그래서는 안 될 불효 중의 상불효입니다.”
그리고 나서 의자는 되레 간청까지 하고 나왔다.
“아바마마, 심려하지 마시고 그를 살려 보내십시오.
조문 사절로 온 자를 죽여 없앤다면 이는 돌아가신 숙부께서도 바라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장왕은 의자의 말에 크게 흡족했다.
“과연 원자로다! 내 어찌 너의 뜻을 따르지 않으랴!”
왕은 의자가 물러간 뒤에도 만시름이 걷힌 밝은 낯으로 한참 동안 혼자 껄껄거리며 웃었다.
춘추는 밤늦게 선화비를 만났다.
쉰이 넘은 선화였지만 자태는 아직도 농염할 만치 아리따웠다.
하지만 고향 신라에 외틀어진 마음만은 여전하여 춘추를 보고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았고,
부왕 내외와 언니 천명 공주의 안부를 묻는 것도 극히 의례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너는 나의 언니를 하나도 닮지 않았구나.”
그리곤 잠깐 사이에 모로 잦바듬히 돌아앉으며,
“피곤할 테니 건너가서 그만 쉬어라.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오래 얘기를 나눌 형편이 못 되는구나.”
하고 퇴거를 명하는데 그 음성과 어투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참으로 싱거운 만남이었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이모부뻘인 장왕의 호의가 춘추에게는 더 인상적이었다.
이튿날 춘추가 아침 일찍 사비궁에서 장왕을 알현하고 돌아갈 것을 말하니
왕이 조문에 대한 답례로 과하마 한 필과 백면(白綿) 10필을 내어주며,
“고생이 많았네. 간밤에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았던가?”
하여 춘추로부터,
“덕분에 모처럼 단잠을 잤습니다.”
하는 대답을 듣고는,
“삼한이 본래는 한집안과 같아서 만일 여염의 인척으로 만났더라면 자네와도
밤새 정담을 나누었을 사이지만 서로가 팔자 기구하여 아쉬운 일이 많네.
과인이 마음처럼 대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비단 자네뿐이겠나.
자네의 부친인 용춘공과도 그렇고, 신라 왕실에도 그러하네.
자네는 영특하고 명철한 사람이니 왕업과 인간사 사이에서 번민하는
나의 어지러운 심사를 헤아려주리라 믿네.
가시거든 두루두루 안부나 전해주시게.”
다정한 말과 온화한 낯으로 자신의 서글픈 감회를 전하였다.
이에 춘추가 공손히 국궁하며,
“잘 알겠습니다.”
하고서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대왕께 한 가지 사사로운 청이 있나이다.”
하니 왕이 기탄없이 말해보라 하므로 춘추는 비로소
자신의 벗인 눌최와 벌구의 유골이 거타주에 묻혀 있을 것과,
자신이 그 두 사람의 시신을 가져가 장사라도 지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춘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왕은 당석에서 궁중의 시위장인 장수 목기루(木其婁)를 불렀다.
목기루는 전날 장왕을 가르쳤던 조불의 외손이었는데,
부여장이 보위에 오른 뒤 백방으로 조불과 그 후손을 수소문했더니
가까스로 나타난 한점 혈육이 바로 그였다.
왕은 목기루를 보자 대뜸,
“너는 지금부터 춘추 도령을 모시고 거타주로 내려가서 그가 벗의 유골들을 수습해
가져갈 수 있도록 하라.
만일 관의 도움이 필요하면 관리들을 동원하고 군사가 필요하면 흑치사차나 연문진에게
나의 뜻을 전하라.
그리하여 춘추 도령이 우리 국경을 무사히 지나 신라 땅에 들어가는 것을 반드시
눈으로 확인한 연후에 돌아오라.”
하고 명하였다.
춘추가 중국에 있을 때 가깝게 지낸 구칠은 거타주에 있던 가야국의 왕족이었다.
구칠은 이따금 고향산천을 회고할 적마다 어려서 본 거타주의 풍경을 흡사 그림을 그리듯
상세히 말하곤 했다.
그 바람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거타주의 지형이 춘추에겐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신라를 떠날 때부터 춘추는 눌최와 벌구의 유골이 십상팔구 봉잠성(烽岑城) 북봉에 묻혀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봉잠성은 옛 가야국 때부터 봉화대가 있던 곳이라 지대가 높고 그 북봉에는 말무덤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눌최와 벌구가 소문처럼 그렇게 분전했으면 백제인들이 그 시신을 거두어 성대히 장사지냈을
턱이 없었고, 필경은 마총(馬塚)에 끌어다가 짐승처럼 묻어놓았을 게 뻔하지 싶었다.
춘추의 예상은 과연 적중했다.
눌최와 벌구는 마총 들머리에 서너 보 거리를 격한 채 봉분 없는 평토묘에 관 없는
나장(裸葬)의 꼴로 나란히 묻혀 있었다.
그나마 누군가가 새끼줄로 금역을 만들고 돌을 쪼개어 명패라도 박아놓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춘추는 두 사람의 무덤을 확인하자 그 자리에 쓰러져 목을 놓아 울었다.
“헌걸스럽던 풍채와 꽃다운 얼굴은 어디로 가고 이처럼 험하고 낯선 꼴로 박토 마총에 흙을 덮고
누웠던가.
이 사람들아, 내가 왔네.
무심하고 용렬한 김춘추가 이제야 자네들을 고향땅으로 데려가려고 왔다네.
돌아가세나, 뼈를 얻고 뜻을 키우던 곳으로 나와 더불어 돌아가서 양토옥석(良土玉石)으로
만년유택을 짓고 다시는 깨지 않을 달고 곤한 새 잠을 이루어보세나……”
춘추가 두 벗의 썩은 형해를 움켜쥐고 어찌나 섧게 통곡하는지 따라온 백제 사람들도 돌아서서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춘추는 두 벗의 유골을 수습해 장왕으로부터 얻은 면포에 곱게 싸고 과하마에 관을 실은 채
무사히 금성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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