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3
춘추가 귀국하고 달반쯤이 지난 때였다.
그날도 금성의 한 색주가에서는 춘추를 위한 주연이 걸게 벌어졌다.
전날 법사 원광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화랑들이 구연을 내세워 마련한 술판이요,
늘 그러하듯 춘추는 주빈의 자리를 차고앉아 당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신이 나서 떠벌리는 중이었다.
“참으로 딱하고 한심하구나! 그대는 내일이라도 당장 당나라로 돌아감이 어떠한가?”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돌연 한 사내가 술상을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춘추는 무춤하여 미처 말맺음도 못하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주흥을 깬 사내는 어깨가 벌어진 장대한 체구에 눈은 범의 눈이요,
윤이 나는 아름다운 수염이 턱과 목을 반쯤 가렸는데,
춘추로서는 처음 대하는 낯선 얼굴이었다.
“무엇이 한심하다는 것이며 그렇게 말하는 그대는 누군가?”
망신을 당한 춘추가 어림잡아 자신보다 두세 살은 연상으로 뵈는 사내에게
반말투로 퉁명스레 반문하였다.
그러자 사내는 눈을 더욱 부릅뜨고 노기등등한 기세로 노려보며 섰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나라로 가서 당황제와 교분을 쌓고 돌아왔다기에
사람들이 칭송하듯 남다른 혜안과 포부를 지닌 큰 그릇인 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 실로 시답잖고 형편없는 촌놈에 지나지 않는구나.
네가 당나라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는 동안 계림에선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난 줄 아느냐?
우리는 해마다 백제의 침략을 받아 지금은 사직의 존망마저 위태로운 지경이요,
얼마 전엔 거타주 접경의 6성을 잃고 지리산을 송두리째 빼앗겼으며,
수많은 군사와 백성들이 무도한 적의 손에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장안에서 너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눌최와 그의 종명궁 벌구도 목이 떨어지고
사지가 갈가리 찢겨 죽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아직 시신조차 찾아오지 못했는데,
너는 당에서 가져온 비단옷을 입고 향기로운 술과 기름진 음식들을 차고앉아 쓸데없는
남의 나라 얘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줏대도 없고 생각도 없는 너 따위가 무슨 큰일을 할 수 있으랴. 너는 눌최와 벌구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
눌최의 가묘(假墓)를 한 번이라도 찾아간 적이 있느냐?
아니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었더냐?”
순간 춘추는 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뜨리며 당장 안색이 백변했다.
귀국하고 제법 시일이 흘렀지만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눌최와 벌구의 일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반말이 오가고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모임을 주선한 선품(善品)이 황급히 나서서,
“좋은 자리에서 왜들 이러시는가.
춘추 도령께서는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 내지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시네.
오늘은 옛 벗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닌가?
하니 죽만랑(竹曼郞)은 노여움을 거두시고 어서 자리에 앉으시게.”
하고 만류했으나 죽만랑이라 불린 그 사내는 선품의 손길을 뿌리치며,
“일없네. 저 자는 계림 사람이 아닐세.
그저 운 좋게 임금의 외손으로 태어나 책상 앞에서 글줄이나 읽은 위인이요,
어쩌다 당나라에 가서 이세민과 알게 됐을 뿐이야.
나라 꼴이 어떤지, 백성들이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그런 건 관심도 없고 애당초 헤아릴 그릇도 아니라고.
그러니 당나라로 돌아가란밖에. 저런 자가 임금의 외손이요,
왕실의 족친이라니 계림의 앞날이 참으로 캄캄하고 한심스럽네.
계림 사람이면 귀국하자마자 내지 사정부터 알아봐야지.”
말을 마치자 휭하니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주흥은 이미 깨어졌고,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누, 눌최와 벌구가 죽었다니, 그게 과연 사실이란 말인가……”
춘추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허공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던 그가 한참 만에 다시 고개를 드는데 닭똥 같은 눈물이
볼을 타고 굴러내려 옷깃에 뚝뚝 떨어졌다.
이튿날 춘추는 도비의 무덤 아래 써놓은 눌최의 시신 없는 가묘에 가서 목이 쉬도록 통곡했다.
장안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눌최와 벌구는 춘추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중국에 도착해 풍토병을 앓았을 때 피골이 상접한 춘추를 등에 업고 밤새 의원을 찾아
돌아다닌 것도 그들이요,
눌최는 춘추가 입에 맞지 않은 음식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신라 쌀을 구하러 하루에
백릿길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번은 세민의 식객들과 험하기로 이름난 종남산(終南山)에 사냥을 나갔다가 춘추가 탄 말이
언덕에서 미끄러져 늪에 빠졌는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뛰어들어 구한 이도 눌최였다.
눌최는 사람이 깊고 성품 또한 은근했지만 극한 상황이 닥치면 누구보다 행동이 민첩했다.
금성을 떠난 후로 그는 종명궁 벌구와 함께 언제나 그림자처럼 춘추를 호위하며 잠을 잘 때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본래 춘추는 거만을 떨거나 거드름을 피울 인물은 아니었다.
신라에서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의지처는 금왕 내외뿐이었지만 어느덧 나이 팔순을 바라보는
왕은 조석의 일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시해당한 조부와 일생을 야인으로 보낸 아버지 용춘의 일로 미루어 금왕 만세후 자신의 안위를
줄곧 걱정하던 춘추로선 혹시라도 본국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아예 고향을 등지고
당의 숙위로 사는 것까지 심각히 고려했을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이세민과 쌓은 친분 덕택으로 앞날을 빈틈없이 닦아놓았다는 사사로운 기쁨에
들뜬 나머지 잠깐 본성을 망각하고 우쭐해서 돌아다녔던 것인데,
눌최와 벌구의 죽음을 대하고는 다시 전날의 겸손하던 자세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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