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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남역(南域)평정 23

오늘의 쉼터 2014. 9. 14. 16:55

제18장 남역(南域)평정 23

 

 

 

“낭성은 작은 늪과 연못으로 둘러싸였을 뿐만 아니라 사방에 언덕이 중첩되어 있어 난공불락의

웅성(雄城)이 틀림없다.

그러나 싸움은 지략으로 하는 것이지 돌덩이를 쌓아놓은 성곽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백기는 선군 3천을 이끌고 낭성의 맞은편으로 가서 군진을 넓게 벌이고 북을 치며 기세를 북돋아라.

그런 다음 궁노를 지닌 정예병 1백 명을 선발해 몰래 성의 북편으로 들어가라.

얼마 아니 가면 남서향으로 전날 삼맥종이 지은 가궁의 꼭대기가 보일 것이다.

그곳에서 장대를 휘청거리게 할 만치 양풍(서남풍)이 매서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바람이 일면

궁궐을 향해 불을 매단 화살이며 화포를 있는 대로 퍼부어라.”

백기가 군령을 받고 한쪽 옆으로 물러나자 왕은 달솔 부여망지를 불렀다.

“너는 기병 1천을 이끌고 낭성 남쪽의 언덕 밑으로 가라.

낭성 남쪽은 통풍이 잘되고 들판이 넓어 예로부터 곡향(穀鄕)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아직 신라인들은 추수를 마치지 않았을 게 뻔하니 들판에는 익은 벼가 남았을 것이요,

근자 며칠 동안 일기가 건조하여 화공을 쓰기에는 그저 그만이다.

너희는 성안 궁궐에 불길이 치솟기를 기다렸다가 그것을 신호로 들판에 불을 놓아라.

농사를 짓는 자들이 익은 곡식을 걱정하는 마음이야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 무엇이 다르랴.

하면 백성들은 모조리 우왕좌왕하여 불길을 잡으려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그 틈을 이용하여 재빨리 성의 남문을 공략한다면 어렵잖게 성문을 열어제칠 수 있을 것이다.”

망지가 국궁하고 물러나자 왕은 부여사걸을 불러 말했다.

“너는 마군 5백을 거느리고 낭성의 후문으로 돌아가 언덕에 복병을 설치하고 기다렸다가

달아나는 자들은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주살하라.”

그리고 왕은 마지막으로 죽은 길지의 아들 은상을 불렀다.

문독에 불과하던 은상은 이때 그 비범한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아 하루아침에 한솔 벼슬로

승차해 있었다.

“은상은 지금 즉시 지리산으로 달려가서 흑치사차와 연문진에게 말하여 하루에 세 번씩 조석으로

북을 울리고 날마다 군사들의 열병과 사열을 실시하라 일러라.

그리하면 금성에서도 그쪽으로 관심을 쏟느라고 감히 낭성을 구원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며,

소경이나 여타 다른 곳의 향군들도 제 고을을 방비하는 데 열중하여 함부로 원군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속함의 6성과 지리산을 얻고 나서 장왕은 흑치사차와 연문진에게 그곳의 방비를 맡겨두고 있었다.

군령을 받은 장수들이 일제히 탑전을 물러나자 왕은 나머지 신하와 장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앞으로 공을 세울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므로 이번에 출정하지 못한 사람들은

과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

겨우 닭 한 마리를 잡는 데 어찌하여 소를 잡는 큰 칼이 필요할 것인가.

올해는 진흥왕 삼맥종이 지은 낭성 궁궐에서 그대들과 더불어 흥겨운 여흥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짐은 그때 쓸 고기를 장만하러 사냥을 나가고자 하거니와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따라 나서라.”

그러자 군신들이 일제히 기뻐하며 왕을 수행해 사냥터로 향했다.

부여장의 용병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마치 점을 치듯 적의 동태를 사전에 훤히 간파하고

계책을 내는 듯했다.

백제 장수들은 그저 왕의 말을 좇아 군령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어디서나 손쉽게 개가를 올릴 수 있었다.

병술년 8월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때 왕재성의 방비를 맡은 신라 장수는 동소(東所)였다.

동소는 늑노현에서 죽은 장춘의 편장으로 뜻이 곧고 용맹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백제군의 기습을 받자 곧 성안의 군사들을 소집하고 군장을 갖춘 뒤 성 주변의 늪과 연못에

의지해 철통같이 성곽을 방어했다.

하지만 때는 바야흐로 초가을 환절기라 서남의 양풍과 동남의 혜풍(惠風)이 조석으로 방향을 달리하며

거벽을 떨곤 했다.

성안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성문 밖의 백제 진영과 남쪽 들판에 쏠려 있을 때 갑자기 성의 북방에서

화포 소리가 들리더니 수십, 수백 개의 불화살이 정신없이 날아들어 하림궁 꼭대기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화공이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당황할 것 없다! 이는 교활한 적군이 우리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수작이니

모두 이성을 잃지 말고 침착히 대응하라!”

동소는 몇몇 군사들과 성민들에게 말하여 우물과 연못의 물을 길어오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그 지시가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남문 밖의 들판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악정 고초에 시달리면서부터 해마다 굶기를 부자 밥먹듯 해오던 신라인들이었다.

농사도 악정은 알아본다고 걸핏하면 흉년이 들기 일쑤요,

그나마 수확한 곡식은 비싼 소작료를 물고 나라에 조세를 바치느라 사람마다

쌀밥 한번 배불리 먹어본 지가 아래통 벗고 외 서리 다닌 일처럼 감감한 터였다.

목숨보다 귀한 곡식이 뻔히 눈앞에서 타들어가니 성민들은 금세 눈알이 튀어나오고 복장이 뒤집혔다.

이는 가궁이 탈 때와는 유가 다른 일이었다.

“멈춰라! 누구든 성밖으로 나가는 자는 목을 베리라!”

장검을 뽑아 든 동소가 우왕좌왕하는 성민들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호령 따위로 될 일이 아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물을 이고 들판으로 달려 나가느라 왕재성 주변은 졸지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틈에 성의 남문으로 밀어닥친 백제군은 한껏 기세를 올리며 항전하는 신라군을 짓밟았다.

동소는 죽기를 각오하고 졸개 서너 명의 목을 베었으나 어디선가 고함을 지르며 나타난 적장 망지를

만나자 싸우기도 전에 겁부터 났다.

게다가 성에서 접전이 벌어진 줄을 알아차린 백제군 본진이 언덕을 넘어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자

부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끝까지 항전하면 비록 지조와 절개는 높일지 모르지만 목숨을 잃는 것은 필지의 일입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지조와 절개가 태산같이 높아진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잃어버린 성은 뒷날 기회를 보아 다시 찾을 수 있지만 명줄은 한번 끊어지고 나면 그만이올시다.”

하며 달아날 것을 권유하니 동소도 못 이긴 척 그 말을 수락하고 황급히 만노군 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동소 일행이 사력을 다해 후문을 빠져나온 뒤 다소 한적한 언덕길에서 막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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