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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남역(南域)평정 20

오늘의 쉼터 2014. 9. 13. 21:49

제18장 남역(南域)평정 20 

 

 

 

용춘이 침통한 어조로 탄식하자

을제는 한동안 침사에 잠겼다가 갑자기 바깥에다 대고 자신의 아들 알천(閼川)을 불러오라 하였다.

을제의 장자인 알천은 이때 나이가 서른넷으로 아버지를 도와 수병(水兵)을 훈련시키는 일을

맡아보고 있었는데, 신체가 장대하고 식견이 뛰어나 을제가 극히 아끼던 자식이었다.

“조카는 내가 어찌하여 진골의 여자와 혼인하였는지 그 까닭을 아는가?”

을제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본래 그는 숙흘종이 살았을 때 갈문왕 복승(福勝)의 딸이자 마야 왕비의 아우와 혼례를 올렸으나

첫 부인이 자식도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다시 아내로 맞아들인 이가 금성에서

잡찬 벼슬에 다니던 진골의 딸이었다.

“이는 만명이 서현을 지아비로 삼은 이유나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

곧 왕이 되지 못한 성골들의 고충을 당대에서 끝내자는 것이었네.

평탄하게 살기로는 진골이 제일이지.

나라에 성골이 차츰 줄어들고 진골이 늘어나는 것은 모다 나처럼 생각하는 이가 많은 때문이

아니겠는가?”

을제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밖에서 기척이 나고 건장한 장정 하나가 조심스레 들어섰다.

용춘이 보니 키는 7척이요, 용모는 그림처럼 수려한데,

입성과 행색은 매우 검소하여 한눈에 그 의표가 곧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호, 네가 알천이냐? 알천이 이토록 훌륭히 장성하였더란 말이냐!”

용춘이 놀라움과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묻자 알천이 허리를 굽혀 공손히 절한 뒤에,

“나리께서 하선하시는 것을 보았으나 마침 어장 일을 돌보느라 인사를 여쭙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했다.

 

알천의 호칭이 귀에 거슬린 용춘이,

“너와 나는 육촌간이다. 어찌 나리라고 부르느냐?”

하자 알천이 을제를 한번 쳐다보고 나서,

“사사롭게는 그러하오나 나라의 하나뿐인 국서이신데 어찌 감히 호형을 하겠습니까.”

하므로 용춘이 팔을 휘휘 내저으며,

“당치 않으니 형이라 부르라.”

하였다.

 

두 재종형제의 대화를 웃음을 머금고 듣고 있던 을제가 용춘을 보고 말했다.

“저 아이가 제법 기운을 쓰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아 내가 자식 중에서도 상치로 치는 녀석이네.

만일 조카가 데려다가 요긴하게 쓴다면 늙은 내가 백반의 눈총을 받으며 벼슬살이를 하는 것보다는

한결 도움이 되지 싶어 불렀네.

비록 내 자식이긴 하지만 나하고는 신분이 다른 진골이요,

또 제 새끼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중당의 당줏감은 너끈하지 싶은 게 평소의 내 소견일세.

어떤가? 큰일을 하시는 조카 옆에 사람이 너무 없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니

내 대신 저 아이를 데려가지 않겠는가?”

“그래도 되겠는지요? 저야 불감청이나 고소원이올시다!”

용춘은 크게 기뻐하였다.

아직 알천의 재주는 알 도리가 없었으나 을제의 아들이면 그것 하나로도 웬만큼 믿음이 갔고,

알천을 데리고 있으면 훗날에라도 을제를 손쉽게 청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생겼다.

용춘이 기뻐하는 것을 본 을제는 알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 뜻은 어떠하냐? 용춘공께서 임금을 제대로 보필하여 흐트러진 나라의 벼리를

바로잡고자 하시는데 천하에 사람이 없음을 개탄하고 계신다.

네가 부모 슬하를 떠나 능히 용춘공의 수족이 되어보겠느냐?”

“아버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일에 소자가 어찌 중언부언 뒷말을 달겠습니까.

저 또한 난신이 득세하고 불의가 횡행하는 뭍의 일을 늘 마음 아프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비록 재주는 없으나 개와 말이 주인을 섬기듯 형님을 돕겠습니다.”

“그러면 됐다.

너는 어서 가서 맡은 일을 동생들에게 맡기고 뭍으로 나갈 채비를 하라.”

을제는 알천을 물리치고 나자 용춘에게 조만히 속삭였다.

“저 아이가 창칼을 다루는 솜씨도 꽤나 뛰어난 축에 들지만 병서를 닥치는 대로 읽어

남의 심중을 꿰뚫어보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네.

나는 자네가 병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매우 걱정을 하였는데 알천이 고육책과 할양계를 말하며

반드시 꾀병일 거라고 귀띔을 해주더군.”

그는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자네가 잔심부름이나 시키며 가까이 두고 지내다가 신통치 못하다 싶거든

언제든 돌려보내게나. 거로 삼현이 이만치 살게 된 것도 실은 저 아이 공이 과반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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