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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남역(南域)평정 14

오늘의 쉼터 2014. 9. 11. 21:44

제18장 남역(南域)평정 14 

 

 

 

김춘추를 호위하여 당나라에 갔던 눌최가 환국한 것은 그해 3월이었다.

눌최는 금성을 떠난 지 햇수로 4년 만에 당고조 이연의 책봉 사절을 따라 돌아왔는데,

이는 백정왕과 용춘 내외에게 춘추의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눌최를 통해 춘추의 서신을 전해 받은 백정왕과 용춘은 눌최의 노고를 크게 치하하였다.

당초 눌최는 춘추의 안부를 전한 뒤에 다시 장안으로 가려 했으나 용춘이 눌최를 붙잡으며,

“자네는 그간 객지 생활을 하느라 고생이 심했을 테니 한동안 집에서 편히 쉬게나.

이젠 내가 진골로 물러났고 또 벼슬을 얻어 관직에 있으니 춘추를 해치려는 무리가 있을 턱이 없네.

게다가 불의의 재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치 중국 정세도 안정기에 접어들지 않았는가?

기회를 봐서 조만간 춘추도 환국을 시킬 생각이네.”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금성에 눌러앉았다.

그 뒤로 백정왕이 눌최를 볼 때마다,

“너를 보면 꼭 도비의 살아 있는 형상을 대하는 듯하구나.

너는 충절이 남보다 갑절은 더한 사람이니 이 다음에라도 두 마음을 갖지 말고

일구월심 춘추를 섬기도록 해라.”

하며 기특히 여기다가 하루는 눌최의 벼슬을 대내마로 높여주며,

“어떤 직책을 원하는고?”

되도록 편한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물었더니 눌최가 두 번 절하고,

“신이 원하는 바가 꼭 하나 있나이다.”

하고 말한 곳이 국원 접경의 성주 자리였다.

눌최의 대답이 왕의 뜻과는 너무 판이하므로 왕이 탐탁찮게 여기고 여러 차례 거절했으나

눌최가 기어코 뜻을 꺾지 않고,

“신은 춘추 도령을 따라 장안에 가서 먹고 자는 일밖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도리어 신의 벼슬을 대내마로 높여주시니

이는 신의 아비가 40년 일한 끝에 오른 벼슬과 같습니다.

어찌 천근을 등에 진 듯 버겁지 않으오리까.

신에게는 나라의 작록을 받는 신하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 있사오니

대왕께서는 신의 소원을 가납하시어 이제부터라도 견마지로를 다할 수 있도록 윤허합시오.

그것이 신이 가야 할 길이옵니다.”

하고 주장하므로 마침내 용춘을 불러 의논을 하게 되었다.

눌최의 뜻을 전해 들은 용춘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웃으며 말하기를,

“과연 눌최는 믿을 만한 청년입니다.

그는 도비의 후광이나 전하의 성은으로 중신이 되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 공을 세워 이름을 얻고자 하니 그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서,

“그러나 국원의 제성들은 백제가 호시탐탐 노리는 곳이라

어느 한 군데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 비하면 거타주는 대체로 안전한 곳이니

거타주의 군주에게 눌최를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는 안을 내었다.

이에 왕이 쾌히 동의하고 임서에게 눌최를 보냈는데,

도비가 살았을 때부터 눌최의 기백과 됨됨이를 알고 있던 임서 역시 그 뜻을 존중하여,

“그렇다면 접경의 3성을 너에게 줄 터이니

순성(巡城)을 게을리 말고 빈틈없이 임지를 지키도록 하라.”

하고 맡긴 곳이 곧 봉잠성과 앵잠성과 기현성이었다.

그런데 안전하다고 보낸 바로 그 거타주의 접경에서 근년에 보기 힘든 대접전이 벌어졌으니

이는 눌최가 부임하여 온 지 불과 석 달 남짓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성이 적의 침략을 받아 임서가 죽고 형세가 급박해지자 눌최는 필사의 각오로 적군에게 저항하였다.

그는 휘하의 군사들과 더불어 3성의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원군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이들을 구원하러 갔던 귀당, 법당, 서당의 3군 제장들은 싸움터에 이르러 백제군을 보는 순간

그 규모와 군진의 당당함에 위축되어 누구도 선뜻 앞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때 장수 하나가 의견이랍시고 말하기를,

“대왕께서 5군을 우리에게 맡겼으니 나라의 존망은 오직 이 한 번의 싸움에 달려 있다.

그런데 병가에 이르기를 승산이 있으면 진격하고 어려움을 알면 물러서는 것이 용기라 하였거늘,

지금 눈앞에 강적을 보고 아무런 계책도 없이 나아갔다가 만에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어찌 가볍게 움직이겠는가?”

 

하니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던 자들이 모두 옳다고 박수를 쳤다.

하지만 이미 군사를 동원한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다시 장수 하나가 나서서,

“이제 거타주의 6성을 잃게 생겼으니 모산현 동쪽의 대야성(합천)과 거열성(진주)을 잇는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거타주 전역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전에 나라에서는 이 일대에 가야국이 지어놓은 노진성(奴珍城) 등 6성을 다시 축조하려다가

그럴 겨를이 없어 미루어왔는데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가 그 성이나 쌓고 돌아가는 것이 어떤가.

만일 소득 없이 이대로 돌아가면 문초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요,

어차피 나라에서도 새 성곽들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며 궁여지책을 내었다.

하기야 기왕 침략을 당한 6성을 빼앗겨 5악 중의 하나인 지리산을 통째로 잃어버린다면

신라로서는 서쪽의 새로운 국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어찌 보면 군사를 물려 시급히 새 성곽을 쌓고 전열을 가다듬어 백제군의 동진을 차단하는 것이

패색이 짙은 6성에 연연해하는 것보다 한결 현명한 대응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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