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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남역(南域)평정 11

오늘의 쉼터 2014. 9. 11. 21:20

제18장 남역(南域)평정 11 

 

 

 

무은이 바닥에 누운 파랑의 시신을 거두어 말에 싣고 살매현으로 돌아가니

난리는 거의 수습이 되었고, 저항하던 잔적 몇몇이 막 투항을 하여 늑노현의 사정을

낱낱이 털어놓는 중이었다.

무은을 본 장수들의 얘기가 시초에는 엉겁결에 당한 봉변이라 속수무책으로 화를 입었지만

살매현의 이름 모를 형제 장수가 이삼십 명의 무리를 이끌고 나타나 닥치는 대로 백제군을

무찌르면서부터 전세가 급속히 역전되었노라 하고, 이삼십 명의 무리가 하나같이 용맹하고

빈틈이 없었으나 특히 두 형제의 검술과 창술은 그것이 사람의 솜씨인지 귀신의 솜씨인지

모를 정도로 절륜하였는데,

형은 칼로 종횡무진 적진을 헤집으며 사람의 목을 따는 것이 마치 감나무에 열린 감을 따듯 하였고,

아우가 창으로 적진의 한복판을 휩쓸며 지나갈 때는 적군들이 흡사 광풍이 지나간 갈숲처럼

무더기로 쓰러졌노라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이구동성으로 찬탄하는 소리를 듣고 무은이 그 형제 장수를 찾으니

누군가가 말하기를,

“백제군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 아우가 내친 김에 늑노현까지 되찾겠다며

먼저 무리를 인솔하여 갔는데, 뒤에 형이 와서 그 소리를 듣자 득달같이 뒤쫓아갔습니다.”

하고서 포로로 붙잡힌 백제군을 가리키며,

“저것들은 저녁까지 굶어 그런지 막상 밀리기 시작하니

그 기세가 쌓아놓은 계란이 무너지듯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군사들은 모두 한잠에서 깨어나 맑은 정신과 빠른 몸놀림이 이른 아침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으니 급히 늑노현으로 가서 형제 장수를 돕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무은 역시 그 말이 옳다 싶어,

“부상자는 그대로 두고 성한 자들로 군진을 개편해보라.”

하였더니 금성에서 온 원군이 4천에 육박하고 장춘을 따라온 국원의 원군과 자신이 데려온

일선주 군사가 1천 소수였다.

무은은 이들을 이끌고 살매현에서부터 북소리를 크게 울리며 늑노현으로 진격했다.

그런데 늑노현에 이르러보니 이미 백제군은 철수를 한 뒤였고, 형제 장수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무은이 겁에 질려 떨고 있는 현민들을 불러 물어보자

방금 전에 현에서 큰 싸움이 있었노라 하면서,

“본래 수백이나 되는 백제군이 이삼십 명의 우리 군사를 당하지 못해 쩔쩔 매고 있었는데

마침 북소리가 나자 군장을 꾸리더니 바쁘게 줄행랑을 쳤습니다.

적군이 도망간 뒤에 싸우던 우리 군사들도 이내 자취를 감추었으나 어디로 갔는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날이 밝자 무은은 수복한 늑노현에서 장춘과 차수, 부윤 등의 머리를 찾아 시신과 함께

초제를 지낸 뒤 장춘과 부윤의 관은 소경 원군들과 더불어 국원으로 보내고,

차수의 관은 식솔들에게 주어 성대히 장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아울러 죽은 군사들과 부상한 이들도 모두 고향으로 보냈다.

그는 신라의 원군이 파랑의 시신을 지니고 떠날 때 머리를 풀고 나와 두 번 절하며 통곡하고는

왕에게 장문의 장계를 지어 올려 저간의 사정을 소상히 알렸다.

무은은 장계의 여러 군데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살매현 형제 장수의 공이 으뜸이라고

수십 차례나 강조하였다.

그리고 말미에 가서 자신은 이제 나이가 들어 군주의 일을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내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대략 수습을 끝낸 무은은 삼년산군과 일선주에서 온 군사들이 훼손된 늑노현의 서방 외성을

견고히 쌓는 동안에 살매현 현령을 찾아갔다.

살매현 현령은 대사 벼슬에 있던 이로 나이는 마흔이며 덕이 있고 평판은 좋았지만

잦은 병치레로 늘 삭신이 시원치 못했다.

살매현 사람들은 잔병을 끼고 사는 현령을 가리켜 ‘반현령’이라 부르곤 했는데,

이는 병앓이를 하느라고 한 해에 절반밖에는 공무를 보지 못해 붙은 별칭이었다.

무은이 살매현을 찾아갔을 때도 현령은 달포나 앓던 망양증 끝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비영비영한 몸으로 무은을 맞이했다.

“유구무언이올습니다.

하필이면 이럴 때 또 그놈의 속병이 도져서…… 그저 죄만할 따름입니다요.”

포병객 현령은 자신이 비록 창칼을 들고 싸우지는 못했을지언정 백제군이 침략한 내내

현의 향군들과 제 집의 종, 심지어 식솔들까지 동원하는 성의를 보인 터였다.

“재자다병(才者多病)이라 하였네.

득병하고 회도하는 것이 어디 사람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던가?

내 자네를 탓하러 오지 않았으니 과히 심려치 마시게나.

하물며 태수나 현령 중에 장수의 자질을 겸전한 이가 어디 쉬운가.”

무은은 현령의 소임이 덕치에 있지 반드시 창칼로써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로 그를 위로했다.

한동안의 인사가 끝나자 무은은 살매현의 형제 장수와 그들이 이끌던 이삼십 명의 청년들에 관해 물었다.

“이번에 그들이 아니었으면 무슨 낭패를 더 당했을지 모르네.

대저 일기당천의 그 용감한 청년들은 뉘 집 자제들인가?”

“저도 싸움터에 나갔던 사람들한테서 소문을 듣고 궁금하여 알아보았는데

아마도 현의 북산에 사는 두두리 거사 밑에서 학문과 무예를 배우던 청년들이 아닌가 합니다.”

무은이 소상히 묻자 현령의 대답이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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