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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남역(南域)평정 7

오늘의 쉼터 2014. 9. 11. 20:49

제18장 남역(南域)평정 7 

 

 

 

“허허, 은상의 칼 쓰는 것이 장군과 나보덤두 오히려 윗길이겠소?”

장춘이 죽는 것을 본 흑치사차가 혀를 내두르자

문진 역시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탄복을 금치 못했다.

“엊그제 내신좌평이 후생가외를 말하더니 저 정도 무예면 사비에서는 제일이지 싶소.”

은상이 장춘의 떨어진 목을 칼끝으로 찍어 들고 유유히 현으로 돌아오자

백제군의 사기는 더욱 충천하였다.

흑치사차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전군에 영을 내렸다.

“적장 장춘이 죽었으니 신라군은 이제 돛과 사공을 모두 잃은 난파선과 같다.

그대로 두어도 뿔뿔이 흩어져 달아날 것이지만 지금 공격하면 누구나 평생에 남을 무공을 세울 것이다. 어찌 달아나도록 구경만 하고 있겠는가?”

말을 마치자 군사를 세 패로 나누어 북소리를 울리며 진격해 나오니

이를 본 신라군들은 장졸 할 것 없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기에 바빴다.

싸움은 허무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늑노현 앞에 포진하고 있던 신라군 1천이 저항 한번 변변히 해보지 못하고 여지없이 무너졌다.

가까스로 말이라도 집어타고 달아나 목숨을 건진 이는 겨우 1백여 명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조리 불귀의 객이 되거나 백제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

한편 살매현 입구에서 군사들을 매복시킨 채 장춘을 기다리던 무은은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자 부장 하나를 시켜 늑노현의 사정을 알아보고 오라 하였다.

그런데 그가 미처 떠나기도 전에 사지를 탈출한 녹부가 몇몇 군사들과 함께 달려와서

장춘이 죽은 것과 거의 전멸한 아군의 사정을 전하였다.

무은은 장춘이 죽었다는 말에 크게 격분했다. 그는 5백의 군사를 이끌고 늑노현으로 가는

길목으로 나와 일선주에서 오는 후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중식 때가 조금 지나자 보졸 2천 5백 명이 당도해 군사가 모두 3천 명으로 늘어났다.

격분한 무은은 이들을 데리고 곧 늑노현으로 달려갔다.

“적군은 기껏해야 일이천에 불과하다!

모두 횡렬로 서서 진군하되 날아오는 시석을 피하지 말고 공격하라!

만일 도망가는 자가 있다면 내가 먼저 용서치 않으리라!”

무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3천여 신라군들은 횡진을 만들어 늑노현으로 진군하였다.

현에서는 당연히 시석으로 응수했지만 노장 무은이 횡진의 뒤에서 스스로 칼을 뽑아 든 채

군사들을 독려하는 바람에 신라군은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흑치사차는 한차례 백병전이 불가피한 것을 알고 군사들에게 창칼로 응수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때 길지의 아들 은상이 말했다.

“지금 당도한 신라군들은 어림대중으로도 우리보다 숫자가 많습니다.

본래 숫자가 많은 적을 상대하자면 계책을 쓰지 않고는 어려운 법입니다.

장군께서는 적을 현 안으로 유인하여 마을 북편으로 달아나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 하겠습니다.”

흑치사차는 은상이 검술에 뛰어난 것은 의심하지 않았지만 설마 병법까지

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너에게 무슨 궁리가 있느냐?”

“마을 북편에는 소로가 있는데 그곳은 본래 백성들이 나락을 털고 군데군데

마른 볏짚을 쌓아놓은 곳입니다.

저는 문진 장군과 함께 그곳에 미리 가서 신라군을 기다리고 있다가 입구를 막고

화공법을 써서 모두 불에 태워 죽이겠습니다.”

은상의 대답을 들은 흑치사차는 곧 그럴듯한 계책이라 여기면서도,

“신라군은 우리보다 숫자가 많다.

만일 그곳에서도 죽기 살기로 저항한다면 오히려 우리가 화를 입지 않겠느냐?”

하니 은상이 웃으며,

“소로의 끝에는 모래 언덕이 있습니다.

10여 명의 군사로 하여금 말 꼬리에 빗자루를 매달고 흙먼지를 피우도록 해두면

신라군은 반드시 도망하기에만 급급할 것입니다.”

하였다. 흑치사차는 그제야 무릎을 쳤다.

“너의 궁리하는 것을 보니 차라리 네가 선봉장이 되어 왔으면 좋았을 뻔했구나!”

그는 은상의 계책을 좇기로 하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신라군들을 현의 안으로 유인하여

한동안 공방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기운이 달리는 듯 퇴각 명령을 내리고 자신도 황급히 몸을 빼내어

마을의 북쪽으로 달아났다.

이를 본 신라군들이 기세를 올리며 쫓아갔는데,

얼마쯤 가자 길 끝에서 돌연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나는 게 보였다.

그러잖아도 도망가는 백제군들이 어쩐지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는 듯하여 께름칙했던

신라군들은 흙먼지를 보는 순간 길 끝에 복병이 있다고 판단했다.

“유인책이다! 모두 추격을 멈춰라!”

군사를 인솔해갔던 녹부가 고함을 질렀다.

그리곤 군사들을 다시 되돌리려 할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불을 매단 화살 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길 양편에 쌓아둔 마른 볏단으로 옮겨 붙더니

이를 기화로 사방에서 수백 개의 불화살이 정신없이 날아들어 삽시간에 사방팔방으로 벌불이 졌다.

신라군들은 그제야 헤어날 수 없는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달았다.

하늘을 가릴 만큼 무수히 날아드는 불화살에 맞아 타거나 데어 죽는 자가 수백이요,

사람과 말이 다투어 좁은 길을 빠져나가려다 보니 넘어지고 밟혀서 죽는 자가 다시 수백이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참패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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