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8장 남역(南域)평정 5

오늘의 쉼터 2014. 9. 11. 20:38

제18장 남역(南域)평정 5

 

 

 

한편 교전하러 나갔던 차수가 눈 깜짝할 사이에 목 없는 귀신이 되어 말과 함께 돌아오자

장춘은 몹시 침통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대치한 양쪽 진영의 한복판에서 벌이는 장수들끼리의 이러한 맞대결은 전군의 사기를 크게 좌우하여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고, 대개는 장수들의 승패가 고스란히 전군의

승패로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장춘은 부하 장수들과 향군의 당주들을 불러모으고 대책을 물었다.

그러자 장하(帳下)의 한 사람이 나서며 말했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장춘이 보니 1천 군사의 편장(偏將)으로 따라온 부윤(趺胤)이었다.

“오호, 부윤인가!”

장춘은 만면에 가득 반가움과 기쁨의 빛을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윤은 몸이 날렵하고 검술이 출중하여 장춘이 유독 아끼던 부하였다.

그라면 능히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장춘은 곧 출장을 허락하면서 부디 단숨에 적장의 목을 취해

군사들의 침체된 사기를 북돋워달라고 주문했다.

“장군께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부윤은 한 손으로 가볍게 장검을 쥐고 즉시 백제 진영으로 내달았다.

그러자 백제 진영에서도 기꺼이 한 장수를 내어 응수하였는데,

그는 방금 전에 차수를 목벤 바로 그 젊은이였다.

부윤이 막 칼을 들어 교전을 하려다가 보니 상대편 장수가 비록 덩치도 크고

인상도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동안(童顔)의 청년이라,

“네가 과연 차수의 목을 가져갔느냐?”

하고 물었다.

“그렇다. 이젠 너의 목을 가져갈 차례다.”

“네 이놈! 어린 녀석이 여간 맹랑하지 않구나!”

“닥쳐라!”

은상은 짤막하게 대답한 뒤 부윤이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 하자

귀찮다는 듯이 칼날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양자가 말머리를 어우르고 교전한 지 불과 삼사 합, 허공에서 불꽃을 뿜으며 마주치던

칼 가운데 하나가 훌쩍 공중으로 치솟는가 싶더니 동시에 한 장수가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이번에도 함성이 인 쪽은 백제 진영이었다.

조금 뒤에 말에서 떨어진 장수가 피를 흘리며 일어서려 했지만 마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수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부윤의 목도 그렇게 주인을 잃고 말았다.

“대단한 무예다! 대체 저 자가 누구란 말이냐?”

장춘은 기가 막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믿었던 부윤이 그처럼 허무하게 죽는 판이니 장춘은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직접 나서자니 이기면 다행이지만 만일 자신마저 패한다면 이웃의 다른 속현들이

위태로울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굽지도 접지도 못하고 끙끙대고 있을 때 뜻밖에도 일선주를 맡고 있던 노장 무은이 5백여 기의

 원군을 이끌고 당도했다.

험로를 감안하자면 실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속한 도착이었다.

“잘 오셨소 장군! 나는 아무리 일러야 내일쯤에나 당도할 줄 알았는데 어찌 이리도 빨리 오셨소?”

무은을 본 장춘은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사정이 다급하여 우선 선발대를 추려 산길을 타고 왔소이다.

후군은 내일쯤에 이를 것이오. 그건 그렇고 국원은 어찌하고 이렇게 오셨소?”

칠순의 노장 무은도 장춘을 만난 것이 여간 반갑지 않았다.

장춘은 무은에게 그때까지의 일을 설명하고 함께 대비책을 강구했다.

“저들은 우리 장수를 연거푸 목베어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니

만일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반드시 군사를 내어 공격을 해올 것이오.”

“장군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적군이 공격을 해오면 일부러 도망가는 체하고 살매현으로 오시오.

살매현 입구에는 매복하기 좋은 장소가 있으니 나는 그곳에서 복병을 설치하고 기다리겠소.”

무은의 말에 장춘도 쉽게 동의했다. 무은은 자신이 데려온 군사들을 이끌고 살매현으로 떠나고

장춘은 녹부와 함께 그곳에 남아 백제군이 공격해오기를 기다렸다.

조금 있으려니 백제 진영에서 차수와 부윤을 죽인 바로 그 장수가 나와 고함을 지르며 약을 올렸다.

“신라에 인물이 없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창칼도 쓸 줄 모르는 몇 놈이 나와 목 없는 귀신이 되더니 이젠 그마저도 동이 났느냐?

너희 장수는 대체 어떤 위인인데 용병은커녕 꼬락서니조차 뵈지를 않는 게냐?

나는 진작에 신라의 장졸들이 하나같이 허깨비요,

오합지졸이란 소리를 듣긴 했다만 설마 이렇게까지 허무할 줄은 몰랐다.

우리가 그토록 무서우면 차라리 항복하여 목숨이라도 부지하는 것이 어떤가?

겁보 적장은 들으라! 우리나라에 와서 비록 종살이를 하더라도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야

백 번 낫지 않겠는가?”

장춘은 희롱하는 말을 듣고도 한동안은 어금니를 깨물며 잘 참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하루가 지나고 이튿날이 되어도 늑노현의 백제군은 요지부동이요,

수시로 장수 하나만 달랑 나타나서는 끊임없이 부아를 돋우니 차츰 분기가 끓어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참는다는 것은 평생을 무장으로 살아온 장춘에게는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던 부하들을 보기에도 여간 민망하고 거북살스러운 노릇이 아니었다. 장춘이 화를 삭이느라 장막 밖을 서성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우리 장수들 중에는 저런 코흘리개 하나도 상대할 이가 없단 말이야?”

“그러게. 아무래도 살아서 돌아가기는 어렵게 생겼네.”

“백제군의 위세가 날로 맹위를 떨친다더니 당하고 보니 소문 이상일세.”

“장춘 장군은 무슨 염불을 하고 있나?”

“말로는 따로 계책이 있는 듯한데 계책은 무슨 계책이겠나?

그저 속수무책이니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게지.”

속 모르는 군사들이 나누는 소리를 들은 장춘은 마침내 더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8장 남역(南域)평정 7   (0) 2014.09.11
제18장 남역(南域)평정 6   (0) 2014.09.11
제18장 남역(南域)평정 4  (0) 2014.09.11
제18장 남역(南域)평정 3  (0) 2014.09.11
제18장 남역(南域)평정 2  (0) 201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