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남역(南域)평정 6
“말과 무기를 가져오라, 내 저 버릇없는 애송이놈의 목을 당장 베고 말리라!”
녹부를 비롯한 몇몇 장수들이 말렸지만 그는 한사코 장검을 뽑아 들고 쏜살같이 말을 몰았다.
연이틀째 장춘의 약을 올리던 은상은 장수 하나가 맹렬히 달려나오는 것을 보자
내심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말머리가 가까워지며 보니 백발이 드문드문한 늙은 장수라,
“젊은것들은 다 어딜 가고 이번엔 또 백수의 늙은인가?”
짐짓 야지랑을 떨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워낙 화가 났던 탓인지 장춘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칼날을 세워 달려들었다.
그때부터 양자의 불꽃 튀는 공방이 서너 차례 이어졌다.
현의 망루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문진이 깜짝 놀랐다.
“저 자는 전날 가잠성에서 만났던 장춘이 아닙니까?”
문진의 말에 흑치사차도 눈을 부릅떴다.
“장춘이라면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장으로 특히 그 무예가 보통이 아닌데 이것 참 야단났구려!
은상이 제아무리 칼을 잘 쓴다 한들 어찌 노련한 장춘을 당하겠소?”
“급히 징을 쳐서 불러들이는 게 옳겠습니다!”
“그럽시다!”
이에 백제 진영에서는 황급히 징을 쳐 은상을 불러들였다.
한창 싸우는 중에 징 소리를 들은 은상이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며,
“늙은이는 예서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무슨 일인가 알아보고 반드시 다시 오리다.”
하고는 진채로 왔다. 은상은 오자마자 두 장수를 보고,
“이제 막 승패를 가르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부르셨습니까?”
불만에 가득 찬 어조로 물었다.
흑치사차와 문진은 상대가 다름아닌 장춘임을 말하며,
“장춘은 신라의 명장이다.
우리가 전에 가잠성에서 싸운 적이 있어 잘 아는 터이니 너는 여기 있으라!”
하고 대신 문진이 갑옷을 입고 나서려 하였다.
그러자 은상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버지가 전사한 곳이 바로 가잠성입니다.
나는 저 늙은이의 나이를 생각하여 차마 죽이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만일 그렇다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반드시 10합 안에 저 늙은이의 목을 취하겠습니다!”
“싸움은 오기나 혈기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장군들께서는 제가 차수와 부윤의 목을 열매 따오듯 취하는 것을 보고서도 아직 믿지 못하십니까?
절대로 10합을 넘기지 않겠습니다!”
흑치와 문진은 불안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으나 은상이 하도 자신만만해하자 하는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반드시 10합이다.
그 안에 이기지 못하면 다시 징을 칠 것이다.”
은상은 허락을 얻자 투구를 고쳐 쓰고 다시 말을 달려 장춘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장춘을 보자 대뜸 눈알을 험상궂게 부라리며 고함을 질렀다.
“나는 가잠성에서 전사한 길지 장군의 아들 은상이다!
네가 장춘인 것을 안 이상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는가?”
은상의 말에 장춘이 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길지가 누구인지는 알 바 없으나 가잠성에서 애비가 죽었다니 불쌍하구나.
애비건 자식이건 본래 너처럼 볼강스럽게 까불다가는 천수를 누리기 힘든 법이다.”
“시끄럽다, 이 늙은 놈아!”
은상은 이를 악물고 거세게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양자간에 다시 치열한 공방이 이어져 위태롭게 사오 합을 넘겼다.
그런데 다음 순간,
맹렬히 말과 말이 교차하고 나서 갑자기 한 사람이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리는가 싶더니
이어 칼 한 자루가 피를 뿜으며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무엇인가 말발굽 아래로 뚝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떨어진 것은 물론 사람의 머리였다.
잠시 숨을 죽이며 침묵하던 양측 진영에서는 이내 희비가 엇갈렸다.
환호와 함성을 지른 쪽은 이번에도 역시 백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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