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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남역(南域)평정 1

오늘의 쉼터 2014. 9. 11. 12:51

제18장 남역(南域)평정 1

 

 

보위에 오르면서부터 전날 중국 대륙에 세웠던 화려한 외백제의 영화를 되찾고자 했던

백제왕 부여장은 삼국 가운데 백제와 가장 긴밀한 선린 관계를 맺고 지내던 수나라가 완전히 멸망하자

자신의 마음속에 품어왔던 계획을 재빨리 바꾸었다.

그는 영명한 군주였고, 탁월한 전략가였으며, 그런 만큼 나라 밖의 정세를 읽고 대처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짐은 북방의 두 강국이 맞붙으면 필시 양쪽이 모두 심한 상처를 입게 되리라 예상하고 그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취하고자 했었지만 양광은 욱기만 앞섰지 지혜가 없는 자로 공연한 허세를 부리다가

그만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외백제의 땅을 되찾기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쇠기에 접어든 신라를 쳐서 남역을 평정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동으로 왜국과 남으로 탐라국을 거느릴 수 있을 것이며,

그 여세를 몰아 훗날 중국에 새로 들어서는 왕조와 제휴해 양쪽에서 고구려를 협공한다면

굳이 외백제의 고토를 얻지 않고도 대국의 찬란한 영화를 다시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수나라가 망한 뒤에 새로 수립한 장왕의 전략이었다.

바다 건너 왜국과 탐라가 실제로 백제의 세력권 아래 있었기 때문에 신라만 무너뜨린다면

남역 전체를 수중에 넣기란 손바닥을 뒤집듯 손쉬운 일이었다.

그는 중국 대륙이 아직 내란에 휩싸여 있는 것을 알고도 신사년(621년) 10월,

자신의 이복 아우 부여헌을 장안에 조공사로 보내어 당의 건국을 치하하고 선물로

과하마(果下馬)까지 바쳤다.

이는 신라의 김춘추가 조정의 반대를 무릅써가며 왕을 조르다시피 하여 장안에 이른 지

불과 석 달 뒤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꼭 2년 후인 계미년(623년) 10월,

장왕은 마침내 휘하의 장수들을 탑전에 불러모으고 신라를 공격할 계략을 짜기 시작했다.

가잠성에서 아끼던 두 장수를 잃고 성마저 빼앗겼던 그는 꾸준히 군사를 훈련시키고 군비를 축적하며

신라를 칠 기회를 끊임없이 엿보고 있었는데, 계미년에 농사마저 잘되어 산곡간에 풍악 소리가

흘러넘치자 때를 놓치지 않고 전국에 동원령을 내렸다.

“나는 가잠성의 일이 있은 후로 단 하루도 편히 잠을 자본 일이 없다.

이제 백성들의 살림은 넉넉하고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에까지 닿았으니 무엇을 더 망설이겠는가?

마땅히 군사를 내어 어리석은 계림의 족속들을 무찌르고 남역을 평정해 억울하게 죽은

부여청과 길지의 원혼을 달래리라!”

장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나선 사람은 달솔 흑치사차였다.

“신이 이역만리 부남에서 내지로 들어온 것은 대왕 폐하의 왕업을 도와 전날의 융성했던

강국 백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섭니다.

그러나 스무 해 가까이 세월이 흐를 동안 나라에 세운 공은 없고 전하께서 주시는 녹읍만 받았으니

어찌 마음이 무겁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가잠성에서 죽은 부여청은 신과는 어려서부터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가깝게 지낸 한몸 같은

사이였습니다.

원컨대 신을 남역 평정의 수장으로 삼아 비명에 간 청의 원수를 갚고 아울러 만대에 길이 남을

전공을 세우도록 허락해주십시오.”

흑치사차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의 장수가 나섰다.

“신 또한 호형호제하던 길지의 원한을 아직 갚지 못했습니다.

흑치 장군과 함께 대군의 선봉을 맡도록 해주십시오!”

장왕이 보니 연문진이었다.

두 장수의 기백에 장왕은 크게 기뻐했다.

곧 두 사람을 선봉장으로 삼고 나머지 장수들로 후군을 만들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려 했다.

그러자 백관들의 말석에서 문득 한 사람이 나서서 급히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잠깐 저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백관들이 모두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니 허우대는 건장하나 얼굴은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하고

허리에는 노란 띠를 두른 문독(12관등) 하나가 당돌하게 입을 열었다.

“신이 알기로 대왕께서 남역 평정의 대업을 준비하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어찌 함부로 군사를 내어 큰일을 그르치려 하십니까?”

“너는 대체 누군데 막중대사를 앞두고 홀로 불길한 말을 지껄이는가?”

장왕은 고작 문독 따위가 미리부터 초를 치고 나오는 것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말을 꺼낸 문독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신의 이름은 은상(殷相)으로 가잠성에서 전사한 길지가 바로 저의 아비입니다.”

장왕은 그제야 크게 놀랐다.

“오호, 길지의 아들이 벌써 이렇게 컸더란 말이냐?”

용화산 화적촌에서 지낼 때 흙을 주워 먹던 코흘리개를 떠올린 왕은 곧 노여운 기색을 거두었다.

왕은 은상을 가까이로 불러 어느새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사내다운 풍모를 흐뭇한 눈빛으로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우락부락하게 생긴 생김새며 늠름하고 헌칠한 체구가 영락없는 길지의 모습이었다.

“너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싶지 않으냐?”

이윽고 왕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묻자 은상이 허리를 굽혀 대답했다.

“이 세상에 어떤 자식이 아비의 원수를 갚고 싶지 않겠습니까.

사사로운 원한으로 친다면 만조를 통틀어 신만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한데 어찌하여 대군의 앞을 가로막으려 하느냐?”

그러자 은상은 한 번 국궁한 뒤 차분히 대답했다.

“신라는 비록 근년에 이르러 정사가 황폐하고 민심이 어지럽다고는 해도 결코 가볍게 볼 나라가

아닙니다.

지난번 가잠성의 일만 하더라도 우리의 이름난 두 장수가 계림의 보잘것없는 애송이에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것은 적을 미리부터 얕잡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수나라 양광이 수백만 대군을 움직이고도 을지문덕에게 패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 먼저 적의 허실을 탐지하는 것이야말로 병가의 기본이올시다.

두 장수의 원수를 갚는 것도 중한 일이오나 자칫 사사로운 감정에 치중해 대왕께서 오랫동안 준비하신

대업에 차질을 빚을까 신은 오직 그것이 두려울 따름입니다.

우선 약간의 군사를 내어 적의 허실을 염탐한 후에 치밀한 계략에 따라 대군을 움직인다면

어찌 실패가 있겠나이까?”

은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신좌평 개보가 웃음을 머금고 말문을 열었다.

“나중에 난 뿔이 단단하다더니 은상의 경우가 꼭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그의 진언을 가납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신라는 작년부터 부마 용춘을 중용하여 나랏일을 맡겼다고 하는데 소문에 그는 제법 덕이 있고

지략도 만만찮은 인물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외관의 군주로 있는 자들은 대체로 충절이 있어 가볍게 여길 상대가 아닐 듯합니다.

은상의 말대로 먼저 소수의 군사를 내어 신라의 용병술과 방어하는 능력을 살펴본 후에

대군을 움직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장왕 역시 용춘의 일은 소문을 통해 알고 있던 바였다.

그는 용춘이 오랜 야인 생활을 끝내고 신라 조정에 중용되었다는 말을 듣자 왕비 선화에게,

“내 손윗동서인 용춘은 과연 어떤 사람이오?”

하고 물으니 좀처럼 신라인을 칭찬하는 법이 없던 선화가,

“용춘공은 저의 형부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당숙이 먼접니다.

계림에 인물이 없으나 용춘공만큼은 가벼이 보지 마세요.

그는 지략과 용맹을 고루 갖춘 사람입니다.”

하고 답하여 내심 께름칙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개보까지 그렇게 말하자 왕은 비로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는 대군을 내기 전에 먼저 신라의 늑노현(勒弩縣)을 습격해 이에 대처하는

신라군의 전략을 엿보고자 하였다.

장왕은 흑치사차와 연문진에게 각각 1천의 군사를 주고 출정을 명하였다.

그런 다음 길지의 아들 은상을 불러,

“너의 무예가 아버지와 비교해 어떠한가?”

하니 은상이 대뜸,

“아비와는 싸워보지 않아서 모르오나 신이 한창 검술을 익히고 있으면 구경하던 아비가

칭찬하는 소리는 여러 번 들었습니다.

신은 말 한 필과 칼 한 자루만 있으면 세상에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나이다.”

꽤나 자신만만하게 말하였다.

왕이 패기에 찬 은상의 태도에 흡족한 표정으로 껄껄 웃으며,

“쇠라도 녹이겠구나. 너의 기백이 참으로 대견하다.”

하고서 흑치사차에게 은상을 비장으로 삼아 데려가라 일렀다.

그리고 따로 조용히 이르기를,

“은상이 비록 호언장담을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 무턱대고 덤비다가 화를 입을까 두렵소.

장군이 늘 그의 뒤를 보아주고 반드시 이기는 싸움이 아니거든 섣불리 내보내지 마시오.”

하자 흑치가 두 번 절한 뒤에,

“어찌 등한히 하오리까.

대왕께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이 물가에 데려간 제 자식처럼 돌보겠나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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