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 주면 받는다(6)
(1599) 주면 받는다-11
옆방에서 들어선 손님은 둘, 둘 다 정장 차림에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체격도 용모도 비슷했다. 둘 중 나이 든 사내가 상급자인지 먼저 대건이 소개했다.
“이분이 태우개발 부사장이신 양정호씨.”
“양정호입니다.”
사내가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40대 후반 정도의 나이였다.
“조철봉입니다.”
악수를 나누었을 때 다른 사내의 소개,
“담당 상무 유준식씨.”
갑중까지 인사를 마치고 둘러 앉았을 때 전애숙이 종업원을 시켜 다시 술상을 정리했다.
그러나 애숙은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양정호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차렸다.
“도와주십사고 이렇게 귀국하시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능력도 모자란 저한테.”
조철봉이 멋쩍은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과분한 칭찬이신데요.”
“아닙니다.”
정색하고 머리를 저은 양정호가 조철봉을 보았다.
간절한 눈빛이다.
조철봉은 양정호의 눈에서 진심을 읽었다.
자신은 도저히 저렇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양정호가 말을 이었다.
“대충 말씀 들으셨겠지만 저희들이 개발한 캄보디아 제7유전의 원유가
한국에 공급되면 약 25년간 수요의 15%를 차지하게 됩니다.
엄청난 양이고 이로 인한 국익은 금액으로 따질 수가 없습니다.
중동 의존에서 탈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싼 가격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막대한 양의 공급선을 확보해 놓는다는 것은 마치 백만 대군의 국방력을
항시 대기시킨 상태와 같습니다.”
그러고는 양정호가 붉어진 눈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미국에서의 활동상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캄보디아로 떠나주십시오.”
조철봉이 대건을 보았지만 외면하고 있어서 시선이 만나지 못했다.
갑중만 눈을 껌벅이며 이쪽을 보는 중이었다.
그래서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저는 업자들을 상대로 잔재주나 부리는 규모였는데 이건 좀 크지 않습니까.”
“로비는 비슷합니다.
순발력과 임기응변, 그리고 정보가 기본 요소이고 자금력이나 제공 물자가 따르는 것이지요.”
대답은 유준식 상무가 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유준식이 말을 이었다.
“캄보디아 정부에서 유정 공급 계약에 영향을 행사하는 실력자들의 정보는 모두 파악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유준식의 눈빛도 번들거렸다.
“중국측 로비스트, 정부 관리들에 대한 정보도 수집했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조철봉이 묻자 이번에는 양정호가 헛기침을 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유정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공급 응찰국의 관리는 물론이고,
개발회사 관계자들의 접촉을 금지했습니다.
겉으로는 공평한 응찰 기준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만.”
양정호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이미 중국측의 로비가 먹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 활동은 자유롭다는 말씀인가요?”
“저희들보다는 낫습니다.”
“로비 자금은 얼마나 준비하셨습니까?”
조철봉이 정색하고 또 물었다.
“그리고 일이 성사되었을 때 저한테 오는 이득은요?”
그러자 양정호가 다시 헛기침을 했다.
방 안이 갑자기 긴장감에 싸였다.
(1600) 주면 받는다-12
조철봉은 지금까지 스스로 애국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애국은 커녕 애향심을 느껴본 적도 없다.
민족? 동포? 모두 조철봉에게는 낯선 단어였다.
국사 시간에는 낮잠만 잤고 제대로 책을 읽어본 적도 없어서 간도는
강화도 옆쯤에 있는 섬인 줄 알았고 동북공정은 얼마 전까지 건설회사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조철봉이 대한민국을 부정한다든가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이 없다는 건 아니다.
남들만큼은 있다. 월드컵 때는 태극기를 몸에 감고 뛰어 다녔으니까.
홍명보의 승부차기 골이 들어갔을 때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조철봉은 두 사내의 간절한 눈빛을 받고 있는 입장이 되었다.
둘은 ‘애국합시다’ 하는 표정이었는데 조철봉은 좀 위축되었다.
그때 양정호가 입을 열었다.
“예, 로비자금은 800만달러쯤 준비되어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500만달러 정도가 더 지원될 수 있습니다.”
크다. 총 1300만달러, 130억원, 그 중 절반만 챙겨도 65억원,
이번에 챙긴 50억원까지 합하면 115억원.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조철봉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계산이다.
양정호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 일이 성사되면 첫 매출분의 2%를 커미션으로 드리겠습니다.
아마 내년 말이 되겠는데 금액으로는 약…….”
그러고는 양정호가 유준식을 보았다. 유준식이 즉각 대답했다.
“예, 한화로 약 100억원이 됩니다.”
“으음.”
조철봉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울렸다.
크다. 2%가 100억원이면 매출액은 5000억원이 된다.
그러자 조철봉의 눈치를 살핀 양정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캄보디아에서는 여기 유 상무가 비밀리에 조언을 해드릴 것입니다.
조 사장님은 캄보디아에 투자하려는 한국 기업가로 위장하시게 됩니다.”
이제는 다시 유준식. 둘의 호흡은 잘 맞는다.
“캄보디아어를 전공한 통역 겸 비서가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으실 것입니다.”
다시 양정호.
“수행 비서실장으로 저희 태우개발 본사 기획실의 배동식 차장이 손발이 되어 드리도록 하지요.
눈치 빠르고 업무 처리에 빈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길게 숨을 뱉은 조철봉이 옆에 앉은 갑중을 보았다.
“저도 조언자 겸 수행원이 한 사람 필요합니다. 여기 있는 최 사장인데.”
최갑중이 눈만 껌벅였을 때 양정호가 반색을 했다.
“그러시지요. 투자회사 부사장 명함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회사 이름은 경세엔진으로 오토바이 제작 회사가 어떻겠습니까?
동남아에서는 오토바이가 유행이어서요.”
“그러지요.”
조철봉이 선선히 머리를 끄덕이고는 갑중을 보았다.
“준비해.”
“예.”
대답부터 하고 나서 갑중이 눈을 가늘게 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박경택이도 데려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이번에는 조철봉이 승낙하고는 차분해진 표정으로 양정호를 보았다.
“심사는 언제 시작되지요?”
“어제부터 시작했습니다.”
양정호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러시아 등 14개국이 심사대상에 들어가 있지요.
심사 기간은 한 달 정도인데 기준도, 조건도,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우스운 심사죠.”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6. 주면 받는다(8) (0) | 2014.09.11 |
---|---|
505. 주면 받는다(7) (0) | 2014.09.11 |
503. 주면 받는다(5) (0) | 2014.09.11 |
502. 주면 받는다(4) (0) | 2014.09.11 |
501. 주면 받는다(3) (0) | 201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