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02. 주면 받는다(4)

오늘의 쉼터 2014. 9. 11. 12:27

502. 주면 받는다(4)

 

 

(1595) 주면 받는다-7

 

 

 

 

 

뱀이었다.

 

차가운 뱀, 널름거리는 혀, 꿈틀거리는 몸, 이윽고 이재영은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뱀은 온몸을 감았다.

 

아니, 빈틈없이 꿈틀거리며 지나갔다.

 

재영은 뱀이 꿈틀거릴 때마다 온몸을 떨며 몸서리를 쳤다.

“아아아아.”

제 목구멍에서 나온 신음이 제 귀에 너무 생소하게 들렸으므로 또 진저리가 쳐졌다.

 

몸이 비틀리면서 감은 눈 앞에 붉은 불덩이가 떠올랐다.

“아아, 그만 그만.”

재영이 비명처럼 소리친 순간이었다.

 

그 붉은 불덩이가 몸을 꿰뚫고 들어왔다.

“아아악.”

터지는 신음, 재영은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이제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재영은 제 몸이 곧 산산조각으로 분해되어 허공으로 흩어질 것 같다고 느껴졌다.

“그만! 그만!”

아우성을 치듯이 외치면서 재영이 조철봉의 목을 당겨 안았다.

 

감은 눈 앞에 갖가지 색깔의 빛이 품어지고 있었다.

 

빛줄기는 점점 더 강해졌고 빛깔도 더욱 짙어졌다.

 

재영은 이제 흐느껴 울었다.

 

몸이 빛줄기 속에 떠 있는 느낌이 들었으며 자꾸 자꾸 솟아오른다.

“아아아.”

다음 순간 재영은 분해되었다.

 

원자가 되어서 빛줄기가 되었다.

 

수백, 수천개의 빛줄기가 된 재영은 흰 우주를 향해 힘차게 솟아올랐다.

 

그러고는 재영의 의식이 끊겼다.

“깨어났군.”

재영이 눈을 떴을 때 먼저 귀에 목소리부터 들렸다.

 

눈 앞은 환했을 뿐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조철봉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재영의 몸이 굳어졌다.

 

다음 순간 의식을 잃기 전에 닿았던 그 쾌락의 절정감이 떠올랐고

 

무의식중에 다리를 오므리자 다리 사이에서 쩌릿한 쾌감이 솟아올랐다.

“아.”

저도 모르게 신음을 뱉은 재영이 손을 뻗쳤다가 제 몸이 단정하게 시트로 덮여 있는 것을 알았다.

“내가 깨끗하게 닦았어.”

조철봉이 재영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침대 끝에 걸터앉은 조철봉은 가운차림이었다.

 

그때서야 시선이 마주치자 조철봉은 빙긋 웃었다.

“꼼꼼하게 닦으면서 기뻤어.”

다음 순간 재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항상 지저분한 뒤처리에 구역질까지 했던 재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의식을 잃은 사이에 몸이 깨끗하고 꼼꼼하게 닦여져 있다니,

 

누운 채 재영이 시선을 돌렸을 때 조철봉의 손이 어깨에 닿았다.

“말을 해, 말을.”

다시 시선을 든 재영은 조철봉의 웃음띤 얼굴을 보았다.

“좋았어?”

조철봉이 묻자 재영의 입이 그때서야 열렸다.

“좋았어요. 너무.”

그것으로도 부족한 느낌이 든 재영이 덧붙였다.

“이런 느낌 처음이거든요?”

“나도 좋았어.”

조철봉이 답례했다.

 

어깨에 붙여졌던 손이 내려와 젖가슴에 덮여졌지만 이제 재영의 시선은 내려가지 않았다.

 

방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어서 조철봉의 콧등에 박힌 점까지 보였다.

 

그때 재영이 말을 이었다.

“섹스가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한지 오늘 처음 알았어요.”

재영의 표정을 본 조철봉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596) 주면 받는다-8 

 

 

 

 

 

다음 날 골드마켓의 에드워드 골드먼 사장을 만나고 돌아온 이재영의 얼굴은 활짝 핀 진달래꽃 같았다.

“1억2천5백만달러입니다.”

탁자 위에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한 이재영의 목소리는 떨렸다.

“꿈만 같아요.”

하면서 머리를 든 재영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조철봉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재영의 표정이 꼭 어젯밤 절정에 오르기 전의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회사는 일년 동안 오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재영의 목소리에는 점점 더 열기가 더해졌지만 조철봉은 머리만 끄덕였다.

 

골드마켓의 전시장은 어제 폐장을 했다.

 

전시회에 참가한 각국의 회사는 골드마켓이 한국의 대성전자와 동업자 관계를 맺었다는 발표를 하자

 

두말하지 않고 철수한 것이다.

 

작년에 오더를 나눠간 대만의 자이언트전자와 한국의 명일전자 또한 이의가 있을 리 없다.

 

그때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재영이 말을 이었다.

“골드먼 회장이 그러더군요.

 

머빈과 더글러스한테서 지금까지 착복한 금액을 배상하겠다는 각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골드먼은 김동수가 수집한 더글러스와 머빈의 자료를 다 받은 것이다.

“잘됐군.”

조철봉이 앞에 놓인 서류를 들쳐보는 시늉을 하다가 도로 놓았다.

 

영어로만 기록된 서류여서 봐도 모른다.

“그럼 내일은 출발해야겠군.”

조철봉이 말하자 재영이 다시 시선을 들고 똑바로 보았다.

 

오후 3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방 안에는 둘뿐이었는데 재영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의 심장이 또 세게 뛰었다.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 단어 몇 개가 박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욕정과 비밀공유, 신뢰까지 세 단어는 분명하게 읽을 수가 있었다.

 

좀 오버하면 영양가치는 별로지만 사람을 가끔 마취시키는 사랑이란 단어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 재영이 말했다.

“오더 디테일은 이미 본사에다 팩스로 보냈고 이 원본은 직원이 들고 귀국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하는 시선을 받고 재영이 말을 이었다.

 

거침없다.

“저기, 우리, 하와이나 피지, 뉴질랜드도 좋아요.

 

거기서 일주일쯤 쉬었다가 귀국해요.”

그러더니 좀 미흡했는지 덧붙였다.

“우리 둘이서요.”

“그것, 참.”

재영의 시선을 잡은 조철봉이 빙그레 웃었다.

 

만족감, 성취감 그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까지 온 얼굴에 드러났다.

 

남자는 이럴 때 행복하다.

 

이 순간을 맛보려고 그 고생을 하는 것이다.

“일주일이나?”

조철봉이 묻자 재영이 눈웃음을 쳤다.

“너무 길어요? 그럼 5일.”

재영이 손 하나를 확 펴 보였다.

“돈은 제가 쓸게요. 10만달러나 있으니까 특급으로만 돌아다녀도 돼요.”

“그렇게 좋았어?”

마침내 조철봉이 입 안에서만 여러 번 빙빙 돌던 말을 뱉었다.

 

그러자 재영이 금방 머리를 끄덕였다.

“응, 좋았어요.”

그러더니 순식간에 붉어진 볼에다 한쪽 손바닥을 붙이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회장님하고 밤에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요.”

“큰일났군.”

“저도 이렇게 된 것이 놀랍고 창피해서 미치겠어요.”

하지만 눈은 더 반짝였다.

 

그 눈에 또 다른 단어가 덧붙여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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