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 주면 받는다(7)
(1601) 주면 받는다-13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겪어온 조철봉에게는 로비만큼 적절하고 유효한 입신(立身)의 수단이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로비는 다 통했다.
그 로비는 인적(人的), 물적(物的)인 모든 것을 의미한다.
조철봉에게 무언가 이뤘다는 것은 곧 로비가 잘 되었다는 것이나 같았다.
로비가 다 통했다는 말은 조철봉에겐 그만큼 세상사가 인간적이며
융통성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따라서 죄의식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로비 없이 일이 그냥 풀렸을 때 관계자한테 미안한 마음까지 일어났다.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줄 기회를 놓친 것이다.
로비 없는 세상은 기계가 엇물려서 마치 시계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세상이지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냐?
하고 호기를 부린 적도 있다.
다 로비다. 교사, 경찰, 법원, 정치인, 교수, 의사, 하다못해 아파트 경비까지,
다 로비가 통하며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차츰 세상이 각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전에는 고속도로를 달릴 때 가죽장화, 이른바 사이드카 경찰이 과속 단속을 했다.
그럴 때 그냥 쌩 하고 도망가 버리거나 100m쯤 가다가 멈춰서
만원짜리 한장을 주면 씩 웃고 보내주었다.
주는 사람은 기분 괜찮고, 받는 사람은 고마운 경우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모르는 사이에 감시카메라가 찍어 버린다.
그리고 난데없이 7만원짜리 고지서가 사진까지 찍혀서 날아오는 것이다.
앞으로는 옆자리에 딴 여자를 태우고 가다가 찍힌다면 70만원짜리가 날아올지도 모른다.
기계나 기계 같은 인간을 상대하는 사회는 곧 망한다.
융통성이 없는 사회는 건조해져서 금방 부서진다.
낙이 없으면 정신이 피폐해지고 불만이 쌓이게 된다.
여유가 있는 사회가 곧 발전하는 사회인 것이다.
그 여유 속에서 사회 구성원은 의욕과 활기를 찾는 것이다.
조철봉은 양정호, 유준식과 많이 마셨다.
이대건과 최갑중까지 분위기에 휩쓸려 양주 다섯병은 마신 것 같다.
오랜만에 대취한 것이다.
조철봉이 눈을 떴을 때는 주위가 조용해진 깊은 밤이었다.
방안은 어두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조철봉의 후각이 이때다 하는 듯이 냄새를 전해주었다.
집에서 자다가 깼을 때는 거의 냄새를 의식하지 못한다.
특별한 경우만 빼놓고 그냥 일어난다.
그런데 지금 조철봉은 다른 냄새를 맡았다.
집과는 다른 냄새, 그러자 조철봉의 의식이 돌아왔다.
술에 취해서 전원의 내실로 안내된 기억이 났다.
지금 누워 있는 곳이 전원의 내실인 것이다.
상반신을 일으킨 조철봉의 눈에 방안의 윤곽이 그제서야 드러났다.
일본식 다다미방에 이불이 깔려 있었고 윗목에는 선반과 TV가 놓여 있을 뿐
넓은 방안에 다른 장식은 없었다.
미닫이문에 창호지가 발려 있는 것도 보였다.
갈증이 났으므로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이 미닫이문을 열었다.
그러자 어두운 복도 끝쪽에 희미하게 불빛이 비치는 것이 보였다.
복도 양쪽에는 각각 미닫이문이 붙어 있었는데 주위에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철봉이 마루 끝쪽으로 서너발짝 뗐을 때였다.
바로 옆쪽의 미닫이문이 열렸으므로 조철봉은 깜짝 놀랐다.
그 순간 불이 켜지면서 마루도 환해졌다.
“어디 가시게요?”
바로 눈앞에 전애숙이 서서 물었다.
전애숙은 잠옷 차림이었는데 금방 자다 일어난 사람 같지 않게 얼굴이 말짱했다.
생기띤 눈에 웃음기까지 떠올라 있었다.
“아, 목이 말라서.”
대답한 조철봉이 엉겁결에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잠옷이 입혀져 있었다.
(1602) 주면 받는다-14
“들어가 계세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
하고 전애숙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몸을 돌렸다.
그때 앞쪽 벽에 걸려있는 시계가 보였다.
새벽 3시10분이다.
이대건과 최갑중까지 모두 제 집으로 돌아갔단 말인가?
혹시 전애숙이 나온 방안에 대건이 누워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조철봉은 방에 돌아와 요 위에 앉아 기다렸다.
곧 애숙이 물그릇이 놓인 쟁반을 받쳐들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과음하셨어요.”
앞에 앉은 애숙이 물그릇을 건네주며 웃었다.
애숙이 움직이자 향기가 났다.
냉수 한 그릇을 다 마신 조철봉이 그릇을 내려놓았을 때 애숙이 물었다.
“물 더 드려요?”
“그것보다도.”
조철봉이 똑바로 애숙을 보았다.
“저 방에 대건이가 누워 있진 않겠지?”
턱으로 애숙이 나온 방을 가리키자 애숙은 빙긋 웃었다.
“그럴 리가 있어요?”
“그럼 날 여기다 혼자 두고 다 가버렸단 말이요?”
“그럼요.”
“애숙씨하고 나하고 둘만 집 안에 있다는 말인데.”
“그렇죠.”
그러자 조철봉이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아니, 침을 모아서 삼켰다.
조철봉이 아직도 빤히 시선을 주는 애숙을 똑바로 보았다.
“그럼 내가 어떤 상상을 하는지 짐작하시겠군.”
“그래요.”
여전히 애숙이 거침없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헛기침을 했다.
지금 뜸을 과하게 들이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이러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오버하는 것은 뭔가 찜찜하고 경계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조철봉의 방어 본능이 자동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어때요? 같이 누울까?”
“아뇨.”
애숙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방의 불은 환하게 켜 놓아서 애숙의 속눈썹도 보인다.
그런데 애숙은 전혀 당황하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싫어요.”
“섹스가 싫다는 말이군.”
“그래요.”
“금방 좋아질 텐데.”
“그렇겠죠.”
“그런데 왜?”
“다 아시면서.”
하고 애숙이 무릎 위에 두 손을 얹더니 조철봉을 또 빤히 보았다.
“지금 급하지 않으시죠?”
“응?”
했다가 조철봉은 바지 지퍼가 내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 남자처럼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애숙의 말이 맞은 것이다.
애숙을 안고 싶은 욕망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안으면 5초도 안 되어서 철봉이 될 것은 분명했다.
“거 봐요.”
조철봉의 표정을 본 애숙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억지로 하실 필요 없잖아요?”
부드러운 시선으로 조철봉을 보면서 애숙이 말했다.
“그때, 처음 뵈었을 때보다 조 사장님은 많이 여유가 있어 보여요.
그 모습이 참 좋아요.”
그러고는 애숙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급할 때, 꼭 필요할 때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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