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 언제나 꿈을 꾼다(11)
(1555) 언제나 꿈을 꾼다-21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나와 도청 근처의 백반집에서 혼자 5천원짜리 백반으로 아침을 먹은
조철봉이 한옥 마을까지 다시 둘러보고 돌아왔을 때는 10시20분이 되어 있었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경택이 조철봉을 맞았다.
“아, 구경하느라고 좀 늦었어.”
커피숍으로 향하면서 조철봉이 말하자 경택은 머리만 숙여 보였다.
이제는 거물이 된 최갑중을 대신해서 경택이 조철봉의 수족 역할을 한다.
커피숍에 자리 잡고 앉았을 때 경택이 입을 열었다.
“서울 국제병원에 수속을 끝냈습니다.
여기서 보낸 명현이 진료기록 검토도 끝났으니까
오늘이라도 당장 입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조철봉이 머리만 끄덕였고 경택이 말을 이었다.
“1인실 예약도 되었고 수술 보증금도 입금했습니다.
병원 관리부에서는 그만하면 남는다고 하더군요.”
“…….”
“그리고 국제병원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천호동에 25평형 아파트를 석달간 빌렸습니다.
병원에서 수술하고 회복될 때까지 석달이면 충분하다고 해서요.”
1인실이지만 명현의 할머니까지 서울로 함께 올라가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자상한 경택은 병원 근처에다 할머니와 애진이 번갈아서 쉴 숙소를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경택이 옆에 놓인 손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조철봉의 앞에 놓았다.
“말씀하신 대로 가져왔습니다.”
“수고했어.”
봉투를 집어 주머니에 넣은 조철봉이 팔목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를 시키지도 않았으므로 경택이 따라 일어섰다.
“난 오늘 오후에 올라갈 거야.”
커피숍을 나오면서 조철봉이 말했다.
“그전에 일을 다 마무리해야겠군.”
무슨 뜻인지 다 알고 있는 경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택을 대동한 조철봉이 한국화랑에 들어섰을 때는 그로부터 20분쯤 후였다.
“어서 오세요.”
경택이 먼저 문을 열어 조철봉을 안내했으므로 애진은 경택부터 보았다.
그래서 인사를 했다가 다음 순간 조철봉을 보더니 대번에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입을 딱 벌리고 말도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어서 오십쇼.”
하고 안쪽에서 주인이 나왔는데 아직 눈치를 못채고 웃음띤 얼굴이었다.
“구경 오셨습니까?”
화랑 주인쯤 되면 그냥 구경하러 온 손님인지,
사러 온 손님인지는 백발백중 다 맞히는 법이다.
주인은 조철봉이 구경온 손님으로 찍었지만 친절했다.
얼굴의 웃음기도 지우지 않았다.
“제가 천천히 설명해드리죠.
글씨하고 그림 중 어느 것부터 보시렵니까?”
화랑 안에는 작품들이 꽉 차 있었는데 잠깐 훑어본 순간 조철봉은 경황 중에도 압도되었다.
“아, 저것을….”
하면서 조철봉이 엉겁결에 손으로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저거 얼맙니까?”
“아, 그 그림은 예약이 되어 있어서.”
주인이 말했을 때 애진이 그제서야 발을 한발짝 떼더니 조철봉에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인사부터 하세요.”
그러자 놀란 주인이 눈을 둥그렇게 떴을 때 애진이 주인을 향해 말했다.
“아저씨, 이분이 제가 말씀드린 그 분이세요. 서울에서 내려오신 분.”
애진이 조철봉을 가리켰다.
(1556) 언제나 꿈을 꾼다-22
“아이고.”
이애진의 말을 들은 주인이 반색을 했으므로 조철봉은 당황했다.
그때 주인이 다가와 조철봉의 손을 움켜쥐었다.
“반갑네, 이 사람아. 우리 애진이가 남자 만났다는 건 처음이라 내가 궁금했었네.”
“앉으세요.”
애진이 자리를 권했으므로 조철봉과 경택은 소파에 안내되어 앉았다.
“그래, 사업을 한다면서?”
자리에 앉자마자 주인이 또 물었다.
반기는 기색이 역력해서 조철봉은 정식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영문은 모르지만 그래야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 같기도 했다.
“저, 조철봉이라고 합니다.”
하면서 조철봉이 명함을 꺼내 주인에게 내밀었다.
그러고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경택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은 제 비서고요.”
“아이고.”
조철봉의 명함을 훑어본 주인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큰 회사구먼. 나도 이 회사 이름 들어본 것 같아. 덕진동에 있지?”
“예, 그렇습니다.”
그때 애진이 다가와 모두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더니 주인의 옆자리에 앉았다.
“사장님은 돌아가신 제 아버지 친구 되세요.”
하고 애진이 말했을 때 조철봉은 힐끗 경택을 보았다.
경택과 시선이 마주치자 조철봉은 머리만 끄덕였다.
그때 주인이 명함을 내밀면서 은근하게 물었다.
“자네도 혼자 산다면서? 내가 애진이한테서 다 들었네.”
“네?”
놀란 조철봉이 애진을 보았지만 표정은 보지 못했다.
머리를 숙였기 때문이다.
“우리 애진이만한 여자가 없을 거네. 그래, 집안 사정은 다 들었지?”
조금 흥분한 주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애가 누워 있고 좀 고생은 하지만 내가 사주를 보았지.
애진이는 복을 받을 팔자야. 암, 당연히 그래야지.”
주인 이름은 김동진, 겪을수록 순박한 인상이 짙어졌다.
그때 주인이 말을 이었다.
“그래, 자네가 결혼하자고 했다던데. 나도 관상을 좀 봐. 그만하면 됐어.”
그러더니 옆에 앉은 애진을 보았다.
“애진아, 이 사람 잘 만났다, 해라.”
“아저씨.”
하고 애진이 머리를 들었는데 다시 얼굴이 하얗게 굳어져 있었다.
그런데 눈주위는 빨갛다.
그때 조철봉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조철봉이 앉은 채로 김동진에게 머리 숙여 절을 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이렇게 갑자기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애진씨가 선생님하고 그런 관계인지 저는 몰랐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김동진이 웃음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난 얘 부친하고 어릴 적부터 친구였어. 그래서 내 딸이나 같지.”
“앞으로 그렇게 모시겠습니다.”
그때 애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김동진에게 말했다.
얼굴을 돌리고 있어서 이번에도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잠깐 나갔다가 올게요.”
“어, 그래라.”
금방 눈치를 챈 김동진이 조철봉을 돌아보며 웃었다.
“점심 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같이 점심 먹고 늦게 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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