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 열정(1)
(1559) 열정-1
“전애숙입니다.”
하고 여자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숙여 답례를 했다.
이곳은 역삼동의 한정식집 ‘전원’으로 금방 인사를 한 전애숙이 사장이다.
아마 사장의 성(性)을 앞에 붙여 가게 이름을 지은 것 같았다.
“자, 그럼 인사는 했으니까 슬슬 마셔볼까?”
아주 상반신까지 반듯이 세운 이대건이 술잔을 들고 말했으므로 조철봉이 손을 들어 막았다.
“잠깐.”
“왜그려?”
이대건이 눈을 가늘게 떴다. 굵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
곧은 콧날 밑으로 두꺼운 입술이 꾹 닫혀 있다.
사내다운 용모에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이대건은 본인이 원하지 않았어도 리더 역할을 자주 맡는다.
그것이 술값 걷는 역할이거나 미팅을 주도하는 역할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동창회 간부로 발전되었다.
이대건과 조철봉은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러나 이대건이 오랫동안 외국에 나가 있었는데다 회사가 대구에 있어서 자주 만나지 못했다.
오늘은 이대건이 조철봉을 제 단골 식당이라는 이곳에 초대한 것이다.
이대건과 전애숙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헛기침부터 했다.
그러고는 정색하고 전애숙에게 물었다.
“어떤 체위를 좋아하세요?”
무슨 말인지 얼른 알아듣지 못한 전애숙이 눈만 크게 떴을 때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뒤에서 하는 것을 좋아하실 것 같은데, 맞지요?”
“이런 시벌놈.”
하고 이대건이 투덜거렸지만 곧 배를 흔들며 큭큭 웃었다.
당황했던 전애숙이 따라 웃었지만 얼굴이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전애숙은 30대 후반이나 많아야 4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인상이 깔끔했고 찬찬히 뜯어볼수록 매력이 솟아나는 스타일이다.
조철봉이 다시 물었다.
“거기 위치가 좀 밑으로 내려가 계신 것 같은데, 맞죠?”
“야, 이시키야.”
했지만 이대건이 강하게 제지하지 않는 것이 전애숙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조철봉이 내친 김에 말을 이었다.
“자전거 자주 타시죠?”
그때 전애숙이 대답했다.
“네, 맞아요.”
“뭐가 말입니까?”
조철봉이 묻자 애숙이 정색했다.
“뒤로 하는 거, 뒤에 있는 거, 자전거 타는 거 다 맞아요.”
“아이쿠.”
하면서 이대건이 제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더니 몸을 비틀며 웃었지만 조철봉은 정색했다.
전애숙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전 이름은 그럴 듯하지만 조루올시다. 최장기록이 27초밖에 안됩니다.”
“그러실 것 같아요.”
“앗하하하.”
하고 이대건이 다시 웃었고 그때서야 조철봉이 술잔을 들었다.
요즘 세상에 멀쩡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는 당장에 성희롱으로 고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전애숙이 이대건과 깊은 관계가 아니라는 심증이 굳어졌다.
거기에다 와이담 몇마디로 애숙과의 친밀도가 상당히 진전되었다.
일거양득이다.
그때 이대건이 술잔을 따라 들면서 말했다.
“아니, 전 사장이 오늘은 유난히 섹시하게 보이는구먼 그래.”
(1560) 열정-2
조철봉은 머리를 돌려 전애숙을 보았다.
그때 애숙이 힐끗 이대건에게 시선을 주더니 이를 드러내고 소리없이 웃었다.
곱다. 조철봉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전능하신 조물주는 여자마다 다른 매력을 주셨다.
다 다르다. 조철봉은 그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오늘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따끈하네요.”
애숙이 그렇게 말하고는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조 사장님 덕분이에요.”
“뒤쪽을 좋아하신다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동했습니다.”
이렇게 정색하고 말해버리면 저쪽은 할말이 없어져 버리는 법이다.
예상대로 이대건이 큭큭 웃었고 애숙이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가씨 보내 드릴까요?”
애숙이 묻자 조철봉이 먼저 머리를 저었다.
“좀 있다 부르지요.”
“그러지.”
이대건도 그러자고 했으므로 애숙은 방을 나갔다.
“전 사장 보통내기가 아니다.”
둘이 되었을 때 대건이 정색하고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한번도 안줬어.
그렇게 소문도 났고, 이혼한 지 10년 가깝게 되었는데
악착같이 사업만 했고 바람 한 번 피우지 않았다는 거다.”
“거짓말.”
조철봉이 대번에 부정했다.
대건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머리까지 저었다.
“개 눈에는 뭣만 보인다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절대로 아냐.
저 여자 남자 맛을 알아.”
“무슨 증거로 그러는 거야?”
“척 보면 알지. 내가 뒤쪽 이야기를 했을 때 저 여자는 후끈 달았어.
그런 여자가 독수공방을 할 리가 없지.”
“하긴 기구를 쓰면 되겠다.”
“기구가 아니라니까 이놈아. 생물이 들락대고 있다니까 그러네.”
“이 자식이 정말.”
눈을 부릅떴던 대건이 들고 있던 소주잔을 한모금에 비우더니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
“그래. 듣자.”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대건을 보았다.
대건은 대동전자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작년 매출액이 150억원 정도인 중소기업이었다.
대동전자는 각종 전자제품을 생산, 수출하는 중소기업으로 아직 주식 상장은 안되었다.
대건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 조철봉은 대동전자의 상황을 알아본 것이다.
그때 대건이 입을 열었다.
“회사 사정이 안좋아. 작년에 5억원 적자를 냈어.
152억원 매출에 5억원 적자면 위험하지. 이대로 가면 회사 넘어가.”
조사한 내용과 같았으므로 조철봉은 열심히 머리만 끄덕여 보였다.
만일 매출을 불렸거나 적자를 줄여 말했다면 건성으로 들었을 것이다.
대건의 말이 이어졌다.
“열심히 해도 안된다.
자금도 부족하지만 내 경영 능력이 모자라는 것 같다.
신제품을 개발했는데 우물거리다가 타기업에 빼앗겼고 연구원도 놓쳤다.”
그러더니 대건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렇게 나간다면 내가 10년 동안 닦아 놓은 개발품,
생산 시설과 연구 인력 그리고 250명의 내 식구들까지 다 산산조각이 나 버릴 것 같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대건이 심호흡을 하고 나서 물었다.
“너에 대해서 많이 들었어.
네가 도와준다면 대동전자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금을 보태 달라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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