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79. 언제나 꿈을 꾼다(8)

오늘의 쉼터 2014. 9. 9. 13:48

479. 언제나 꿈을 꾼다(8)

 

 

(1549) 언제나 꿈을 꾼다-15 

 

 

 

 

조철봉은 차분해진 표정으로 이애진을 보았다.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여자가 있으며 잠자리에서의 반응도 다 다르다.

 

지금도 자주 조철봉은 여자의 얼굴을 보면서 절정에 올랐을 때의 장면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아주 점잖은 표정을 짓고 상대를 보면서 알몸과 가쁜 숨소리, 내지르는 신음,

 

그리고 짙은 숲과 골짜기에서 범람해 오는 용암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 상대가 때로는 초면인 엘리베이터 안의 승객일 수도 있고 비행기 옆좌석의 여자,

 

또는 식당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서 아귀아귀 퍼먹고 있는 아줌마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조철봉은 애진을 그대로 보는 중이다. 눈에 뭐가 씌워지지 않았다.

“애진씨.”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난 한번 이혼을 했고 지금은 내 아들의 담임선생님인 아주 착한 여자하고 삽니다.”

긴장한 애진이 눈도 깜빡이지 않았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여자지요.

 

나와 자식을 위해서 헌신적이고 사랑해줍니다.

 

어느 한 곳 흠잡을 데가 없는 여자지요.”

“…….”

“그런데.”

심호흡을 하고 난 조철봉이 애진을 보았다.

“내가 전처하고 이혼한 것은 내 불성실한 행동 때문이었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고 만날 바람을 피웠으니까요.”

“……”

“그랬더니 그 여자도 맞바람을 피웁디다.

 

그래서 갈라섰다가 또 잠깐 재결합했고 다시 갈라섰지요.”

그러고는 조철봉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 나서 아들 담임선생님하고 같이 살게 되었는데, 내가 또 이러네요.”

애진은 그대로 몸을 굳힌 채 가만 있었으므로 조철봉은 계속했다. 

“병이라면 병이지요. 끝없이 새로운 여자를 찾아서 이렇게 방황하는 것. 하지만.”

머리를 든 조철봉이 애진을 똑바로 보았다.

“난 그때마다 진심이 됩니다.

 

지금도 그래요.

 

난 애진씨하고의 사랑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겁니다.

 

다만 내 가정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지요.”

조철봉이 이번에는 거의 진실을 말했지만 분위기를 위해서 표현을 바꾼 단어가 딱 하나 있다.

 

애진씨하고의 사랑을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 사랑은 잠자리, 또는 섹스라고 말하려다가 얼른 바꾼 것이다.

 

물론 이야기를 가만 들으면 모순이 많다.

 

자기 가정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무엇이건 하겠다는 말도 도둑놈 심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인데 얼핏 들으면 멋지게 들린다.

 

그때 애진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남자는 다 그런 것 같아요. 목적은 섹스죠.”

애진의 입에서 섹스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멀쩡한 여자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입으로 개구리를 토해 낸 것만큼 조철봉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충격을 받은 가슴이 쿵쾅거리는 와중에 애진의 말이 이어졌다.

“저도 여잔데 그런 유혹이 없었겠어요? 여러 번 겪었죠.”

조철봉은 작게 헛기침만 했다. 시선까지 내렸을 때 애진이 부드럽게 말했다.

“조 선생님 분위기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남자 바람기 말이죠.”

“…….”

“놔두면 저절로 식는다고 하고 누구는 늙어서 힘이 없어질 때까지 간다고도 하지만.”

그러더니 애진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배어났다.

“저도 가끔 남자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1550) 언제나 꿈을 꾼다-16

 

 

 남자가 그립다니.

 

조철봉은 이번에는 애진이 가만있다가 입으로 방울토마토를 뱉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충격이 가시고 금방 적응이 된 것이다.

 

그때 애진이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저, 갖고 싶으세요?”

“갖, 갖고 싶다니요?”

놀라서 말까지 더듬으며 되물었지만 이미 조철봉의 가슴 박동은 평시의 두배가 되어 있었다.

 

애진이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아아, 이 얼마나 당당한 자세인가?

 

이토록 아름다운 표정이 세상에 어디 또 있으리오.

 

날 가질 테면 가지라는 이 자세는 자신감이 없으면 표현되지 못한다.

“원하신다면 드릴게요.”

애진이 또박또박 말했을 때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기선은 제압당했지만 가슴은 감동으로 들끓고 있다.

 

애진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애진씨, 오해하신 것 같은데 난 애진씨의 몸을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다.”

말은 그렇게 뱉었지만 조철봉의 사타구니는 이미 팽창되어 있었다.

 

부풀어 오른 철봉 때문에 앉아 있기에도 거북한 지경이 되었지만 조철봉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것이 사기꾼의 본색이다.

 

준다고 하면 뒤로 빼면서 여운을 즐기는 것이다.

 

만일 애진이 그런 소리를 안했다면 달라고 애걸복걸했을 조철봉이다.

 

애진의 시선을 잡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난 섹스는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몸만으로 충분히 섹스가 가능하지만 그것은 성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짐승이나 마찬가지라고 믿어 왔지요.”

애진은 눈을 크게 뜬 채 듣고만 있다.

“천천히.”

조철봉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애진을 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애진씨 감정이 익을 때까지 천천히 기다릴랍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면서 애진이 시선을 내렸는데 눈 밑이 조금 붉어진 것 같았다.

 

그 순간 조철봉의 가슴이 불끈대었지만 또 참았다.

 

참을수록 그 감개는 더 깊어지는 법이다.

 

준다고 해서 덥석 먹어 버린다면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린 것이나 같다.

 

애진은 땅바닥에서 주워 든 진주 같은 여자였다.

 

닦고 기름칠까지 해 놓은 다음에 안는다면 그 몇배의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 산책이나 할까요?”

하고 조철봉이 묻자 애진은 금방 일어섰다.

 

분위기가 어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애진이 조철봉의 팔짱을 끼었다.

“오목대로 가요.”

애진이 팔을 끌면서 말했다.

“밤에 데이트하기 좋아요.”

오목대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지만 조철봉은 애진이 가자는 데는 다 갔을 것이다.

 

오목대는 멀지 않았다. 시내에 위치한 낮은 산이었는데 데이트 코스로 아주 좋았다.

 

길이 잘 정비되었고 오르는 데 10분도 안걸렸다.

“여기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조 사당이죠.”

하면서 애진이 앞쪽 작은 사당을 가리켰다.

 

밤이어서 아래쪽으로 시내의 휘황한 불빛이 펼쳐졌고 군데군데 놓인 벤치에는

 

쌍쌍이 앉은 남녀로 채워져 있었다.

 

애진이 끝쪽 벤치가 빈 것을 보더니 조철봉을 이끌었다.

 

이제 애진의 어깨가 자주 부딪쳤고 팔을 쥔 손도 자연스러웠다.

 

둘이 벤치에 앉았을 때 애진이 엉덩이를 들썩이더니 바짝 붙었다.

 

그러고는 조철봉의 팔까지 당겨 안는다.

 

조철봉은 다시 심호흡을 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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