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77. 언제나 꿈을 꾼다(6)

오늘의 쉼터 2014. 9. 9. 13:44

477. 언제나 꿈을 꾼다(6)

 

 

(1545) 언제나 꿈을 꾼다-11 

 

 다음날 오후 5시가 되었을 때 호텔방으로 박경택이 차분한 얼굴로 들어섰다.

 

경택은 조철봉의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오전에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소파 앞쪽 자리에 앉은 경택이 가죽 가방을 열고 서류를 꺼내더니

 

복사한 한부를 조철봉의 앞에 놓았다.

 

그러고는 서류를 들고 읽었다.

 

군소리도 쓸데없는 동작도 전혀 없는 실용적인 태도였다.

“이애진은 35세, 3년 전에 남편 유기철이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보험혜택이나 보상금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조철봉은 잠자코 들었다.

 

이애진한테서 들은 약간의 정보만으로 경택은 제법 긴 보고서를 만들어 놓았다.

 

경택의 말이 이어졌다.

“오히려 유기철이 중상을 입고 사망하기까지 넉달동안 병원비가 많이 들어서

 

아파트를 팔고 빚까지 졌습니다.”

조철봉이 머리만 끄덕였으므로 경택은 계속했다.

“더구나 유기철과 함께 있던 딸도 같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때 조철봉이 퍼뜩 머리를 들었다.

“딸이?”

조철봉이 묻자 경택이 보고서의 한쪽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예, 유명현이라고 지금 일곱살입니다.”

“아.”

보고서에 써있다.

 

7살. 유명현. 그때 경택의 말이 이어졌다.

“척추를 다쳐서 기동을 못합니다.

 

그래서 현재 집에서 치료 중입니다.”

“그렇군.”

점심때 밥을 먹이러 간다는 말이 바로 그 때문이다.

 

 머리를 끄덕이는 조철봉에게 경택이 말했다.

“병원측에 확인을 해보았더니 상태는 나아지는 중이지만 수술비가 없어서

 

지금 넉달째 물리치료만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리치료 비용하고 약값, 병원비가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듭니다.”

“…….”

“이애진씨는 화랑에서 135만원, 편의점 알바로 30만원 정도를 월급으로 받는데

 

채무 이자로 월 80만원이 나갑니다.”

“…….”

“같이 살고 있는 외할머니가 건물 청소일을 하지만 몸이 불편해서

 

한 달에 받는 30만원가량의 수당은 약값, 병원비로 다 나갑니다.”

“…….”

“시청에서 지원금을 내줍니다. 한 달에 40만원 정도인데.”

경택이 계속하려는 것을 조철봉은 손을 들어 막았다.

 

계산은 금방 나왔다.

 

이애진의 수입은 시청 지원금까지 합쳐서 205만원, 지출이 185만원이다.

 

생활비로 20만원이 남는다.

 

외할머니는 벌어서 당신이 쓴다고 계산해서 그렇다.

 

이애진은 시청 지원금이나 하다못해 편의점 알바수당이 끊긴다면 당장 굶어야 할 신세인 것이다.

 

머리를 든 조철봉이 경택을 보았다.

“남자관계는?”

이 사항은 보고서에 기록하지 않는 것이 둘 사이의 묵계였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경택이 머리를 저었다.

“없습니다.”

경택의 표정이 우등상을 받은 초등학생처럼 은근한 활기에다

 

자부심까지 번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가 주변을 대충 뒤졌습니다만 깨끗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뭐야?”

“성격이 밝고 주위 사람들의 평이 좋습니다.

 

아주 모범시민입니다.”

조철봉의 머리에 한옥마을의 길가에 떨어진 휴지를 줍던 애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왕건이가 맞다. 모범시민까지나. 

 

 

 

 

(1546) 언제나 꿈을 꾼다-12

 

 

 조철봉은 언제나 꿈을 꾼다.

 

그것이 자신을 현재의 위치로 만들어 놓았다고 스스로도 믿는다.

 

조철봉에게 역경이 왜 없었겠는가?

 

더한 사람도 있겠지만 배고픔에서부터 좌절, 배신, 수모, 외로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슬픔에서부터 찢기는 것 같은 아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상황의 낙망까지 다 겪었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게 한 것이 바로 꿈이다.

 

찢어질 것 같은 가슴으로 꿈을 꾸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금방 울어놓고 어떻게 정반대의 꿈을 꾸란 말인가?

 

꿈이란 곧 희망이다.

 

바람이고 기대다.

 

조금 더 발전하면 꿈만 꾸는 정신병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꿈을 따라 몸도 움직여야 꿈을 이룬다.

 

기를 쓰고 따라가는 그 고통, 스스로도 미친 짓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남의 시선은 오죽하겠는가?

 

그것을 극복해야 살아남는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사는 게 쉬운 것 같지만 매 시각이 인고의 연속이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그 기다림이 곧 바람이며 기대며 희망이다.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다.

 

성공했건 실패했건, 있건 없건 간에 그렇게 살아 가는것이 인간이라고 조철봉은 믿었다.

한국화랑이 바라보이는 영원 커피숍의 창가에 앉아서 조철봉은 지금 또 기다리고 있다.

 

보다 나은 섹스를 위해서냐고 누가 묻는다면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할 것이다.

 

물론 어젯밤에도 이애진의 알몸을 공중에다 띄워 놓고 자위는 했다.

애진이 몸을 비틀면서 기쁨의 탄성을 뱉는 순간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거침없이 대포를 발사한 것이다.

 

조철봉은 자위할 때는 빨리 대포를 쏜다.

 

그것이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한국화랑은 간판도 낡았고 진열대의 유리창 위가 금까지 나 있었다.

 

거기에다 구차하게 금간 자리 위에 테이프를 붙였는데 오래되어서 눈에 확 띄었다.

 

그렇지만 꽤 오래된 명문 화랑인지 손님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화랑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는 작은 키에 배가 나온 데다 대머리였다.

 

둥근 얼굴은 붉었고 문 앞에서 손님을 배웅할 때 환하게 웃는 것이 보기 좋았다.

 

가끔 이애진의 머리가 유리창 안에서 보였다가 들어갔는데 바쁜 모양이었다.

 

자주 왔다 갔다 한다.

 

그렇게 창가에 앉아 애진을 기다리면서 조철봉은 행복했다.

 

기다림의 초조함 정도는 기다림도 없는 자들의 심상보다는 백 배 나은 법이다.

 

6시 5분, 조철봉이 그렇게 기다린 지 35분 만에 한국화랑의 문이 열리더니 애진이 나왔다.

 

그러더니 길을 건너 이쪽으로 오고 있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오늘 애진은 밝은 색 바지에다 같은 색 재킷을 입었다.

 

머리는 여전히 뒤로 묶어서 올렸고 손에는 꽤 큰 가방을 들었다.

 

아름답다.

 

화장기가 없는 얼굴은 매끈했으며 눈빛은 부드러웠다.

 

애진 또한 항상 꿈을 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애진이 앞에 와 섰을 때 조철봉은 웃음 띤 얼굴로 일어나 맞았다.

“다 보고 계셨겠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서 애진이 그렇게 말했다.

 

애진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덮여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 계셨어요?”

“5시30분.”

“어머, 35분이나.”

애진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미안하니까 제가 차 살게요.”

“아니.”

했다가 조철봉은 곧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그럼.”

그러고는 그 순간에 마음을 굳혔다.

 

이 여자는 진짜 왕건이다.

 

신은 기다리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셨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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