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 새 인연(8)
(1520) 새 인연-15
박경택은 조철봉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이라도 짓기를 예상한 것 같았다.
그러나 조철봉이 눈만 껌벅이자 오히려 좀 당황했다.
그래서 말까지 더듬었다.
“그, 그것도 소문이긴 합니다. 하지만.”
“담보가 그대로 살아 있는 걸 보면 등을 쳤다는 소문이 맞는 것 같단 말이지?”
조철봉이 묻자 경택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예 그렇습니다, 사장님.”
“자네 생각은 어떤가? 허심탄회하게 말해 봐.”
정색하고 조철봉이 물었을 때 경택은 헛기침부터 했다.
“전문가입니다, 사장님.”
“강하영이?”
“예,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경택은 지금까지 온갖 사건을 다 겪었다.
조철봉은 저질렀지만 경택은 사건처리를 해온 터라 몇 배나 더 다양한 경험을 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경택이 말을 이었다.
“이혼한 남편은 사기와 사문서 위조로 각각 1년씩 형을 살았는데 모두 강하영씨가 관계돼 있습니다.
남편을 내세워 일을 시키고 실속은 강하영씨가 채운 것이 분명합니다.”
“…….”
“지금 다각도로 조사 중이니까 곧 밝혀지겠지만 마치 양파 같아서…….”
“까도 계속해서 알맹이가 나온단 말이지?”
“예, 사장님.”
“흥미 있군.”
의자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정색하고 경택을 보았다.
“흥미 있는 인간이야. 그렇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만.”
“자넨 내가 왜 이런 여자한테 관심을 갖는지 그것이 궁금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조철봉을 따라서 정색한 경택이 머리를 저었다.
“저는 사장님의 지시를 따라 일을 처리할 뿐 의견을 낼 입장이 아닙니다.”
“말해 봐.”
조철봉이 똑바로 경택을 보았다.
“내가 상의하고 조언을 구할 사람은 자네밖에 없어.
최 사장은 머리가 너무 커져서 나한테 부담이 돼.”
“…….”
“우선 내 행동에 호의적이지 않단 말이야.
쌔고 쌘 게 여잔데 왜 그런 여자한테 집착하느냐는 것이지.
아주 간단하게 정리를 해 버린다니까. 건방진 놈이.”
“그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나?”
다시 조철봉이 불쑥 묻자 경택이 작심을 한 듯 어금니를 물더니 헛기침부터 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제가 사장님 지시를 받고 조사를 한 여자 중에서 가장 독특합니다.”
“독특하다…….”
“예, 첫째로 교육수준이 가장 높습니다.
제일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흥.”
“지능지수가 높은 데다 미인입니다.
그 정도 미모에 몸매면 꿈도 클 만한데 대학 졸업을 하자마자
전수만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전수만은 대학 동창으로 별 볼일이 없는 놈이었죠.”
“…….”
“강하영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밑에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결혼해서 미국에 있지요.
어머니가 화장품 가게를 해서 가족은 별 걱정 없이 자란 것 같습니다.”
“…….”
“그런데 강하영이 친구들 사이에서 뭐라고 불리는지 아십니까?”
그러더니 경택이 곧 제가 대답했다.
“살모사라고 불리더군요.”
(1521) 새인연-16
그날 밤 깜박 잠이 들었던 조철봉은 눈을 떴다.
그러자 자신의 가슴 위에 얹힌 묵직한 물체가 느껴졌다.
팔이다, 이은지의 팔.
지금은 영일이가 엄마라고 자연스럽게 부르는 담임선생님.
“어.”
하고 조철봉이 깼다는 표시를 했을 때 은지가 입을 열었다.
“자?”
“아니. 깼어.”
조철봉이 몸을 돌려 은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 여자한테는 고맙다.
비록 몸은 따로 놀려고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이 여자한테 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놔둬라.
난 그런 놈이니까.
“왜? 그 생각이 나?”
어깨를 안은 팔에 힘을 주고 묻자 은지가 흐응 웃었다.
“그건 딴 데 가서 해.”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정색한 조철봉이 어둠 속이었지만 눈을 크게 떴다.
목소리도 굵어져 있었다.
“마누라 두고 딴 데 가다니?”
“흐응.”
“무슨 흐응이야? 응?”
조철봉이 은지의 어깨까지 흔들었다.
“왜 그래? 당신.”
“아무것도 아냐, 그냥.”
은지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있었으므로 조철봉은 속으로 숨을 뱉었다.
“나한테 그건 신경 안써도 된단 말이야.”
은지가 손바닥으로 조철봉의 가슴을 부드럽게 쓸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난 자기를 믿어.”
“응?”
조금 놀란 조철봉의 묻는 소리가 목이 막힌 탓인지 이상해졌다.
“뭘 믿는다구?”
“자기를.”
은지가 다시 조철봉의 가슴을 쓸었다.
“밖에 나가서 딴짓 해도 괜찮아. 자기가 날 믿고 있는 거 아니까.”
“그, 그런….”
침을 삼킨 조철봉이 눈을 부릅떴다.
“내가 당신을 배신할 리가 있어?
만일 그런다면 내가 벼락을 맞아 죽을 거다.”
그 순간에도 조철봉의 머릿속에는 벼락 맞아 죽을 확률이 몇억분의 일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보다 더 낮은 것이다.
“저기, 내가 할 말이 있어서 깨웠어.”
하고 은지가 입을 열었으므로 조철봉은 화제가 바뀐 것에 안도했다.
소리 죽여 숨을 뱉고 나서 듣겠다는 시늉으로 은지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은지가 말을 이었다.
“우리 학교에 결식 아동이 꽤 있어. 우리 반에도 세명이나 있어. 점심도 못먹는 아이들이, 글쎄.”
“저런.”
조철봉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신문에서 가끔 읽었다. 은지의 말에 열기가 돌았다.
“대개 조부모하고 사는 애들인데, 불쌍해. 정부에서 도와주고는 있지만
난 우리 학교 애들한테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지원해줬으면 좋겠어.”
“어떻게?”
“기금을 만들어놓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거야.
점심은 물론이고 학비, 생활비까지.”
“으음.”
“내가 계산해보았더니 칠천오백만원이 있으면 되겠는데, 너무 큰돈이지?”
“으음.”
“결식 아동이 스무명쯤 되거든. 그 돈으로….”
그때 조철봉이 은지의 어깨를 안고 말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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