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 새 인연(7)
(1518) 새 인연-13
조철봉에게 성적 쾌락이란 상대방이 절정에 오르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제 자극을 느끼며 즐겼다가는 금방 오발탄이 나간다.
그럼 섹스의 의미가 없다.
조철봉은 지금까지 상대를 만족시키기 위한 섹스를 했다.
단 한번도 제 만족을 위해 대포를 발사하지는 않았다.
목표로 삼은 여자가 결국 알몸이 되어 본능을 이겨내지 못하고 소리치며 울며 떨었을 때
조철봉은 쾌감을 느꼈다.
성감(性感)과는 별도의 감정이 될 것이다.
만족감, 성취감 또는 우월감. 그것이 불만족스럽고 열등감,
또는 패배감에 사로잡힌 인간의 기어오르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철봉이 싸지 않으려고 기를 쓰면서 교가나 애국가까지 거꾸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끝난 후에 여자는 대부분 조철봉을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보았다.
그게 존경심이 담긴 시선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조철봉에게 섹스란 바로 희생과 봉사의 순간이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활해온 자신에 대한
원기 회복의 순간이 될 것이다.
인간은 대부분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산다.
굴곡이 있는 인생, 또는 행·불행을 번갈아 지니며 산다.
새옹지마로 여기며 사는 인간도 있지만 스스로 방법을 만들어 가면서 사는 인간도 나온다.
조철봉은 만들었다.
싸지 않으면서 만들어 내었다.
제 희생을 바탕으로 상대의 존경심을 받아 기운을 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철봉이 지금 장안동의 퍼시픽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는 것이 그렇다.
요즘은 아파트 이름을 외국어로 짓지 않으면 가격이 내려가는지 한국 이름이 없다.
전에는 개나리, 수정, 진달래 등이었다가 지금은 외국어로 다 바꿨다.
조철봉은 아파트 입구에서 30분째 차 안에 앉아 있었는데 강하영은
지금 청계천에서 이곳으로 오는 중이다.
물론 박경택의 직원 두 명이 열심히 따라오면서 조철봉에게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다시 핸드폰이 진동을 했으므로 조철봉은 덮개를 열었다.
이번에는 박경택의 전화였다.
“사장님, 강하영씨가 사채업자한테서 자금을 빌렸습니다.”
박경택이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강하영을 미행한 경택은 한 시간쯤 전에 남자를 만난 것만 보고했는데 지금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경택이 말을 이었다.
“3천만원을 빌렸습니다.”
“자금 사정이 안 좋은 모양이군.”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강하영이 갑자기 귀국한 이유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차 안이었으므로 조철봉은 시트에 등을 붙이고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짙게 선팅이 돼 있어 밖에서 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강하영도 설마 조철봉이 이곳까지 알아내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때 박경택의 말이 이어졌다.
“사장님, 강하영씨는 이 사채업자한테 이번 3천만원까지 포함해서 2억2천만원을 빌렸습니다.”
조철봉은 눈만 크게 떴고, 경택의 말이 이어졌다.
“어머니가 살고 있는 장안평 퍼시픽 아파트는 이미 은행 담보로 들어가 있어서
이중 담보가 되어 있다는군요.”
“…….”
“사채업자 사무실 직원을 매수해서 들었는데,
베트남의 결혼소개소하고 룸살롱도 적자랍니다.”
“…….”
“그런데도 사채 사장이 돈을 빌려 주는 건 딴 생각이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조철봉은 쓴웃음만 지었고 경택의 말이 이어졌다.
“이미 강하영씨는 정부가 된 것 같다고 합니다.”
(1519) 새인연-14
이십분쯤 지났을 때 아파트 입구에서 멈춰 선 택시에서 강하영이 내렸다.
그 뒤쪽의 편의점 앞에 멈춘 택시에서 내린 두 사내는 박경택의 직원이었다.
조철봉은 숨을 멈추고 옆으로 지나가는 강하영을 보았다.
강하영은 베이지색 코트 차림이었지만 미끈한 종아리와 잘록한 허리의 선이 다 드러났다.
시선을 앞쪽 땅바닥으로 내렸지만 꼿꼿한 자세로 걸었는데 발이 조금 옆으로 벌어졌다.
조철봉은 이런 남자 같은 걸음걸이의 여자를 좋아한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가끔 발끝을 안쪽으로 굽히면서 걷는 여자를 보면 답답해진다.
그것이 버릇이 되었다고 해도 그렇다.
강하영은 바로 조철봉이 앉은 차 옆을 지나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는데
문을 열고는 끌어 당기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사채업자의 정부가 되어 있으면 대수인가?
과거 없는 여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때 조수석으로 사내 하나가 들어서더니 조철봉에게 인사를 했다.
박경택의 직원이다.
“1203호실입니다.”
사내가 말했을 때 조철봉은 머리를 저었다.
강하영이 오면 집으로 찾아가 만날 계획이었지만 마음을 바꾼 것이다.
“오늘은 그냥 가겠어.”
조철봉이 아쉬운 표정으로 창밖에 잠깐 시선을 주었다.
“그동안 준비를 더 해놓고 만나야겠어.”
“예, 사장님.”
시킨 대로만 하면 되었으므로 사내가 차밖으로 나갔을 때 조철봉은 운전사에게 말했다.
“회사로 가자.”
조철봉은 한 여자에 집중할 때 다른 여자와는 거의 접촉을 끊는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혼자 지내는 것이다.
회사로 돌아와 밀린 일을 처리하고 났을 때는 오후 6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박경택은 정확하게 6시10분에 들어섰는데 정상 근무시간인 6시가 될 때까지 기다린 것 같았다.
예의바른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이 사적 용무인 것을 알고 하는 행동이었다.
조철봉이 사주더라도 그렇다.
조철봉이 권한 자리에 앉은 경택이 입을 열었다.
“사채업자 배동복은 52세로 강하영씨와 거래한 지 5개월 되었습니다.”
경택이 탁자 위에 서류를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강하영씨와 배동복의 관계는 아직 확실한 증거가 잡히지 않았지만 직원들의 소문이 그렇습니다.
자금 관리가 철저해서 담보 초과하는 자금은 전혀 대출해주지 않는 배동복이 현재 담보 대비
1억 가깝게 초과 대출을 해준 것이 그 이유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
”배동복은 여자를 밝힌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반반한 채무자한테는 이자 상환연기를 대가로 수시로 성상납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자는 10원도 깎아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
“그리고.”
힐끗 조철봉의 눈치를 살핀 경택이 말을 이었다.
“강하영씨는 6개월쯤 전에 다른 사채업자하고 거래를 했습니다.”
시선을 든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사채업자를?”
“예, 그 업자한테는 3억원을 빌렸는데,
다 갚고 배동복으로 거래선을 바꾼 것입니다.”
“… ….”
“그런데 그 거래선하고도 이상한 소문이 있습니다.”
이제는 경택이 외면하고 말했다.
“강하영씨가 그 사채업자 등을 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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