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61. 새 인연(5)

오늘의 쉼터 2014. 9. 8. 23:35

461. 새 인연(5)

 

 

(1514) 새 인연-9

 

 

다음 날 오전 10시 정각.

 

응접실에 앉아 있던 조철봉이 머리를 들고 창밖을 보았다.

 

날씨는 화창했다.

 

정원의 야자수는 미풍에 산들거렸고 위쪽 하늘에 솜뭉치 같은 구름 서너 덩이가 떠 있었다.

 

강하영이 오면 파주로 가서 돈을 받아내는 절차를 말해줄 것이지만 다 헛것이다.

 

갑중은 파주에 별장은커녕 개집도 없다.

 

강하영은 제 돈을 들여서 비즈니스 클래스로 한국에 갔다가 파주에서 길 잃은 강아지처럼

 

헤맨 후에 지쳐 돌아올 것이었다.

 

만날 장소에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연락도 두절된 터에 뭘 하겠는가?

 

강하영한테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이쪽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할 테니

 

그것으로 끝이다.

 

한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조철봉과 갑중은 떠난 후가 될 것이고 이 집도 빌린 집이니

 

흔적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욕심 부렸다가 비행기 요금에다 시간, 정력이 꽤나 소진될 것이었다.

 

그때 차량 엔진음이 들렸으므로 조철봉은 다시 창밖을 보았다.

 

그러자 열린 정문으로 들어오는 차가 보였다.

 

강하영이다.

 

그 순간 조철봉은 엉거주춤 상반신을 일으켰다.

 

두 눈이 치켜떠졌고 입은 반쯤 열려 있다.

 

차는 경찰차였다.

 

그리고 이어서 또 들어온다.

 

또 한 대, 세 대나 된다.

 

다음 순간 조철봉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경찰차가 현관 앞에서 멈춰서더니 경찰들이 쏟아져 내렸다.

 

10여 명이나 된다.

 

지휘자인 듯 보이는 사내가 소리쳐 지시를 했고 모두 현관으로 내달려 왔다.

 

그때 응접실 문으로 최갑중이 들어섰다.

 

갑중도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는데 놀란 표정이었다.

“형님, 경찰이.”

그러자 조철봉이 풀썩 웃었다.

“아닌데.”

하면서 털썩 자리에 앉더니 갑중에게 앞쪽 자리를 가리켰다.

“앉아라.”

“그 여자가 경찰에 신고를 한 것 같습니다.”

갑중이 아직도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말했다.

“이거 황당한데요.”

그때 복도가 소란해지더니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경찰들이 응접실로 들이닥쳤다.

“꼼짝 마!”

하고 앞장선 경찰 서너 명이 그들에게 권총을 겨누면서 소리쳤다.

 

영어다.

“손 들어!”

조철봉과 갑중은 두 손을 들었다.

 

그때 경찰들에게 끌려 조철봉의 직원들도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두 손을 머리 위에 깍지 껴 얹고 있었다.

“누가 이 사장이야?”

하고 경찰관 중 한 명이 한국어로 물었으므로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긴 이 사장이 없습니다.”

그 순간 경찰들을 헤치고 강하영이 나타났다.

 

그러고는 손을 귄총처럼 만들어 조철봉을 가리켰다.

“이 사람입니다.”

강하영의 또렷한 목소리가 응접실을 울렸다.

“이 사람이 저 사람을 납치해서 돈을 강탈하려고 했어요.”

손가락으로 갑중을 가리켰다.

 

강하영이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그때 조철봉의 직원 한 명이 베트남어로 경찰에게 말했다.

 

그러자 다른 직원들도 입을 열었고 경찰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조철봉이 강하영을 보았다.

“아니, 18억은 어떻게 하시려고?”

시선이 마주친 강하영의 눈이 더 커졌다.

 

조철봉이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하영이 시선을 돌렸다가 이제는 입까지 벌렸다.

 

갑중도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1515) 새인연-10

 

 

 “아, 시끄러워요!”

바락 소리친 강하영이 눈을 치켜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그로부터 한시간쯤 후인 오전 11시경, 이제 응접실에는 셋이 남았다.

 

경찰관들은 모두 돌아간 것이다.

 

물론 경찰은 짜증을 내었고 경위서까지 다 작성해 갔다.

 

조철봉의 해명을 들은 경찰 중에서 웃는 사람도 있었긴 했다.

 

강하영이 말을 이었다.

“당신들,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수작을 해?

 

내가 강도 사기단에 가담할 것 같이 보였단 말이지? 기가 막혀서.”

“어쨌든 미안하게 됐습니다.”

조철봉이 처음부터 입만 꾹 다물고 있었으므로 최갑중이 다시 사과했다.

“그래서 경찰을 끌고 오신 것 아닙니까?

 

우리도 잡혀가진 않았지만 혼은 났으니까.”

“혼이 더 나야 돼요, 당신들은.”

강하영이 조철봉을 쏘아보았다.

“당신이 주도했다니까 말을 해요.

 

사과는 당신이 해야지 왜 다른 사람이 합니까?”

“아, 글쎄, 강 사장님.”

갑중이 어색한 웃음을 짓고 손을 펴서 막는 시늉을 했다.

“그만 하시지요. 제가 대신 죄송하다고 여러번 했지 않습니까?”

“난 이사람 사과를 듣지 않으면 못갑니다. 왜 가만 있는거죠?”

그때 머리를 든 조철봉이 물었다.

“언제 마음을 굳혔지요?”

강하영이 뻥한 표정을 지었을 때 조철봉은 다시 물었다.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말입니다.”

“처음부터.”

뱉듯이 말한 강하영이 코웃음을 쳤다.

“당신이 저사람 등을 치겠다고 말을 했을 때부터.”

“내 말이 믿기지 않습디까?”

“당신이 싫었어.”

조철봉을 노려본 채 강하영이 말을 이었다.

“제 주인을 배신하는 그 작태가 말야.

 

그리고 돈이면 다 된다는 그 사고도 구역질이 났지.”

“그렇군.”

“뭐가 그렇다는거야?”

강하영은 이제 아주 반말을 했는데 그것을 조철봉은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고 받아들였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어.”

그러자 강하영이 의심쩍은 표정이 된 채 입을 다물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난 당신이 나하고 같은 심보를 가진 줄로만 알았지.”

“뭐라구?”

했지만 강하영의 목소리는 별로 높지 않았다.

 

표정도 그대로였다.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했다.

“내 연기만 제대로 먹힌다면 그런 제의를 거부하는 인간이 없으리라고 자신했는데 말야.”

그러고는 조철봉이 강하영을 향해 멋쩍게 웃었다.

“내 기분은 반갑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도대체.”

강하영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 아녜요? 사과할거예요, 말거예요?”

“미안합니다.”

마침내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조철봉이 은근한 표정으로 강하영을 보았다.

“이것도 인연인데 저하고 한번 사귀어 보시지요, 강하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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