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 새 인연(9)
(1522) 새 인연-17
다음날 이은지는 환해진 얼굴로 마치 날아갈 것처럼 가볍게 걸어 집을 나섰다.
물론 이제는 영일이 당연한 듯한 표정으로 은지의 한쪽 손을 잡고 있다.
은지의 가방 안에는 조철봉이 준 1억원짜리 수표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 돈은 점심도 먹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쓰일 것이었다.
문득 말을 꺼냈다가 아침에 조철봉한테서 1억원짜리 수표를 받은 은지는 행복했다.
학교에 가면 남편이 된 조철봉 자랑을 실컷 할 것이다.
회사로 출근한 조철봉 역시 컨디션이 좋았다.
비록 돈으로 은지의 환심을 샀지만 그것도 능력이다.
조철봉에게는 그런 방법이 가장 적당하고 몸에 익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휴대전화가 진동을 했으므로 조철봉은 먼저 발신자 번호부터 보았다.
번호는 찍혀있지 않았다.
머리를 기울인 조철봉이 잠깐 휴대전화를 든 채 망설였다.
번호를 감춘 이유는 뻔하다.
자신을 밝히지 않은 채로 상대가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침내 조철봉은 휴대전화를 귀에 붙였다.
다른 때 같으면 받지 않았다.
“여보세요.”
조철봉이 대답했을 때 3초쯤 지나고나서 목소리가 울렸다.
“저, 조철봉씨 전화죠?”
여자다.
그 순간 조철봉의 가슴이 뛰었다.
“예, 그런데요?”
“저, 강하영입니다.”
예감이 맞았다.
소리 죽여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아, 강 사장님이 전화를 다 주시다니.”
“놀라셨어요?”
“그럼요, 반갑습니다.”
베트남에서 강하영에게 명함을 주었지만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없애 버릴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저, 바쁘세요?”
하고 강하영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휴대전화를 고쳐 쥐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았지만 지금은 트릭을 쓸 상황이 아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저한테 점심 사주실래요?”
했을 때 조철봉은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대답하기 전에 먼저 물었다.
“아니, 갑자기 웬 일이십니까? 이거 조금 겁이 나는데요.”
“말씀 드릴 것이 있어서 그래요.”
“좋습니다. 점심은 제가 사지요.”
“아뇨, 제가.”
했다가 강하영이 웃음 띤 목소리로 이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오후 12시반에 그린호텔 커피숍이 어떠세요?”
“지금 출발하면 충분히 도착합니다.”
“그럼 거기서.”
하고 전화가 끊겼으므로 조철봉은 다시 심호흡을 했다.
오전 11시 반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이 방을 나가면서 휴대전화의 버튼을 누르고 귀에 붙였다.
복도에 나왔을 때 신호음이 그치더니 곧 박경택의 목소리가 울렸다.
“예, 사장님.”
“조금 전에 강하영의 전화가 왔어.
그래서 지금 점심 약속을 한 그린호텔로 가는 중인데.”
긴장한 듯 경택은 가만 있었고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갑자기 나한테 전화를 한 이유가 뭘까?
지금까지 날 뱀처럼 대하던 여자가 말야.”
“저기.”
경택이 굳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강하영은 지난번 사채업자를 강간 혐의로 고소했다가 합의를 하고 고소를 취하했습니다.
그것이 조금 전에 밝혀진 사실인데요.”
또 나왔다.
조철봉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1523) 새인연-18
까고 까도 또 나온다.
도대체 이 여자의 알맹이는 언제 나타날 것인가?
베트남에서 조철봉을 공안에 신고한 것은 사기 작전이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조철봉의 계획이 허술했던 것이다.
그린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12시25분이었다.
5분 전이었지만 강하영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아직 영문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만나니까 감동이 되는데요.”
조철봉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강하영을 보았다.
“어쨌든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베트남의 작전이 성공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앞쪽 자리에 앉은 조철봉에게 강하영이 웃음띤 얼굴로 물었다.
“전 그것이 궁금했어요.”
“아, 그야.”
조철봉이 뒷머리를 긁었다.
“성공했다면 강 사장님이 지금쯤 내 애인이 되어 있었겠죠.”
“어떻게요?”
다가온 종업원에게 강하영은 시선도 주지 않고 커피를 시키고는 조철봉을 보았다.
“그 과정을 말해 주실 수 있어요?”
“실패했지 않습니까?”
“듣고 싶어요.”
“밥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지금 들려주세요.”
시선이 마주치자 강하영이 눈웃음을 쳤다.
정면으로 본 강하영의 오늘 얼굴은 교태가 넘쳐 흘렀다.
조철봉의 표현 대로라면 색기(色氣)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강 사장님은 서울로 들어가 헤매게 되었을 겁니다.
처음부터 파주 별장의 금고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겠죠. 전 며칠이나 불쌍한 모습으로 헤매게 되었을까요?”
“한 이틀.”
“그러고는 어떻게 되죠?”
“나한테서 다급한 연락을 받는 겁니다. 최 사장이 사고로 죽었다고 말이죠.”
“아아.”
“난 최 사장을 납치해서 죽게 만든 범인이 되고 강 사장은 공범 신세가 되는 거죠.
그래서 난 서울로 날아가 강 사장을 만나는 겁니다.”
“그래서요?”
“그런 사이인데 친해지지 않겠습니까?”
“공범 사이로 말이죠?”
웃음띤 얼굴로 물은 강하영이 머리를 끄덕였다.
“제가 추측한 방법하고 비슷하군요.”
“추측해 보셨습니까?”
“당연하죠.”
이제는 정색한 강하영이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도대체 이 남자가 무슨 목적으로 날 끌어 들였나부터 생각해 보았죠.”
“그래서요?”
“목적은 곧 알 수가 있겠더라구요.
조 사장님이 주신 명함으로 확인을 해 보았더니 회사 규모가 크더군요.
그런 회사 소유주가 금전 문제로 사기를 칠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과연.”
“그렇다면 뻔하지 않겠어요?
저를 엮어서 궁지에 빠뜨리고 자빠뜨리려는 수작이겠죠.
그런데 그 방법이 궁금하더라구요.”
“아하.”
“하지만 좀 심하셨죠, 그렇죠?”
“물론입니다. 다시 사과 드립니다.”
조철봉이 앉은 채로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럼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강하영이 이렇게 불러낸 이유는 뻔하다.
방법이 궁금하다면서 재추진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물론 회사를 다 알아본 후에 그렇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467. 새 인연(11) (0) | 2014.09.08 |
---|---|
466. 새 인연(10) (0) | 2014.09.08 |
464. 새 인연(8) (0) | 2014.09.08 |
463. 새 인연(7) (0) | 2014.09.08 |
462. 새 인연(6) (0) | 2014.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