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 도망자(11)
(1503) 도망자-21
“아버지.”
다시 학교 정문 앞에서 안기준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우뚝 걸음을 멈춘 성규가 그랬다. 놀란 표정 같기도 했고 멍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성규야.”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안기준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다가가 성규의 어깨 위에 두 손을 놓았다. “별일 없지?” 오후 3시반. 입 밖으로 밥 먹었느냐는 말이 나오려다가 말았고 대신 그렇게 물었다. 묻고 보니 그랬다.
별일이 서로 너무 많았는데 하필 그렇게 묻다니. “예에.” 하고 성규가 건성으로 대답해 버렸으므로 어색함은 가셨다. “가자.” 성규의 어깨를 쥔 채 안기준은 발을 떼었다. 이제는 사람이 무섭지 않다. 경찰은 더욱. 인도를 걸을 때 성규가 걸음을 늦추더니 안기준을 올려다 보았다. “아버지, 감옥에서 나왔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안기준이 성규의 시선을 받은 채 빙그레 웃었다. 얼굴이 굳어져 버리는 바람에 웃음이 일그러졌다. “짜샤, 너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말해 주었어.” “니 엄마는 어떻게 알았대?” “빚쟁이한테서 들었대.” “그랬구나.” “이제 나온 거야?” “아니, 탈옥했어.” “응?” 하면서 놀란 성규가 눈을 크게 떴다. “아빠, 정말야?” “그래, 간수 셋을 쏘고 탈옥했어.” “거짓말.” 성규가 얼굴을 찌푸리며 웃는 시늉은 했지만 크게 뜬 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서 안기준이 성규의 머리를 팔로 감아 안았다. “인마, 다 끝내고 나온 거야.” “그럼, 빚 다 갚았어?” “다 끝냈다.” “그럼.” 했다가 침을 삼킨 성규가 시선을 돌렸으므로 이번에는 안기준도 말을 잇지 않았다. 성규가 이으려고 했던 말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규는 그럼 이제 집에서 같이 살 수 있느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안기준이 입을 열었다. “성규야, 너 집에 가서 민규 데리고 나올 수 있지? 엄마 모르게 말야.” “응.” “내가 어디서 기다릴까?” “저기.” 잠깐 이맛살을 찡그리며 궁리하던 성규가 머리를 들고 안기준을 보았다. “아파트 뒤쪽에 골목이 있어. 내가 알려줄게.” “그래라, 그럼.” 이쪽 지리는 모른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였지만 금방 도착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 저기서 기다려.” 일부러 아파트 뒤로 돌아간 성규가 손으로 골목을 가리켰다. 이쪽 동네는 허름했다. 골목은 차도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았지만 가게가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행인도 별로 없어서 한산했다. 안기준을 골목 입구에 세워놓은 성규가 아파트로 내달렸다. “빌어먹을.” 아까부터 가슴이 먹먹해진 안기준이 혼잣소리를 했다. “차라리 집안 제대로 갖추고 교도소 들어가 있는 것이 낫겠다.” 그러나 그게 생각처럼 되는가. 하나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
(1504) 도망자-22
민규는 안기준을 보더니 정신없이 내달려 오다가 바로 앞에서 넘어질 뻔했다.
“아빠.”
두팔을 벌리고 덤벼든 민규를 안으면서 안기준은 숨을 들이켰다.
그렇다. 내리 사랑이다.
어머니가 보름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구치소로 면회를 왔는데도 이런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주는것 없이 받기만 하는데도 자식들은 당당하다.
감동을 준다.
“아빠, 인제 교도소 안가?”
하고 민규가 물었으므로 안기준은 쓴웃음이 나왔다.
교도소로 출퇴근 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 안간다.”
안기준이 민규의 손을 쥐고는 성규를 보았다.
“뭐 먹자.”
그러자 성규가 골목 안쪽의 순대집을 가리켰다.
떡볶이도 판다.
잠시 후에 셋은 떡볶이와 순대를 앞에 놓고 둘러앉았는데 분위기가 밝았다.
첫째 성규가 쉴새없이 학교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민규는 먹는데 열중했다.
성규는 엄마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애들한테 김밥까지 더 시켜 먹이고 난 안기준이 입을 열었다.
“얘들아, 근데 아빠는 당분간 베트남 공장에 나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둘은 금방 긴장했고 안기준의 말이 이어졌다.
“베트남에 공장을 만들어야 될 것 같아서 말야.”
“아빠 공장?”
하고 민규가 물었지만 성규는 가만 있었다.
의심쩍은 것 같았다.
그때 안기준이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성규에게 내밀었다.
“이거 아빠 명함이다.”
베트남 공장의 명함을 미리 만든 것이다.
오직 성규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왔다.
물론 명함에 찍은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면 안기준과 연결이 될 것이다.
명함을 받은 성규가 꼼꼼하게 살폈고 민규는 힐끗거리다가 말았다.
이윽고 머리를 든 성규가 안기준을 보았다.
“가서 언제와?”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올 수 있지만 난 너희들이 방학 때 아빠한테 왔으면 좋겠다.”
“베트남으로?”
성규가 놀란듯 눈을 크게 떴지만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멀잖아? 아빠.”
“비행기 타면 다섯시간이야.
서울서 부산까지 차로 가는 것보다 빨리 도착해.”
“에이, 그래도.”
“인마, 구경할 것 많아.”
“엄마가 보내줄까?”
불쑥 그렇게 물었던 성규가 시선을 내리더니 말을 이었다.
“다행이야, 아빠.”
“뭐가?”
“교도소에서 나와서.”
“자식이.”
“그때 할머니가 오셔서 우리 붙잡고 우셨어.”
“응? 왜?”
“그냥, 아빠가 급한 일로 베트남에 갔기 때문에 할머니가 대신 왔다고 하면서.”
“…….”
“우리는 멋도 모르고 가만 있었는데 며칠 있다가 아빠가 교도소에 있다는거 알게 되었어.”
교도소가 아니라 구치소라고 정정시키고 싶었지만
애들한테는 그게 그것일터라 안기준은 가만 있었다.
그때 민규가 입을 열었다.
“아빠, 그럼 우리 몇밤자고 다시 만나는거야?”
안기준은 무슨 수작을 부리던 애들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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