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52. 도망자(8)

오늘의 쉼터 2014. 9. 5. 22:58

452. 도망자(8)

 

 

(1497) 도망자-15

 

 긴장한 안기준이 조철봉을 보았다.

 

지난번 황토침대를 사지도 않고 리베이트 360만원을 주었을 때 받긴 했지만

 

갑자기 생의 의욕을 잃어버렸었다.

 

그래서 죽으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말았지 않은가?

 

안기준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불쑥 물었다.

“선배님, 베트남에 가시지 않을랍니까?”

“베트남?”

되물은 안기준의 눈이 커졌다.

 

눈빛이 강해졌고 얼굴은 상기되었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예. 베트남에 제가 설립한 정비회사와 운수회사가 있는 것 아시죠?”

“알아.”

“규모가 꽤 큽니다.”

안기준이 머리를 끄덕였다.

 

들었다.

 

정비회사는 직원이 1천명이나 되었고 운수회사는 수백대의 버스와 트럭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조철봉이 안기준을 똑바로 보았다.

“베트남에 자동차 부품 공장이 필요합니다.

 

정비회사와 운수회사에 공급할 물량만으로도 운영이 될 겁니다.”

안기준은 숨을 죽였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선배님이 승낙하신다면 새로 설립할 부품 공장을 맡겨 드리지요.

 

자본은 제가 댑니다.

 

선배님은 경영과 관리를 맡으시는 조건으로 지분을 드리지요.”

안기준의 일생에서 이런 복음은 처음일 것이었다.

 

심장의 고동이 너무 크게 뛰었으므로 안기준은 손바닥으로 가슴을 눌러야만 했다.

 

벌겋게 상기되었던 얼굴이 곧 하얗게 굳어졌다.

 

눈이 찢어져라고 크게 뜬 것은 혹시 눈물을 쏟는 추태가 일어날까봐서였다.

 

심호흡을 한 안기준이 입을 열었다가 목이 메었으므로 헛기침부터 했다.

“하지만.”

안기준이 부릅뜬 눈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하지만 난.”

“아, 출국문제 말씀입니까?”

조철봉이 귀신처럼 안기준의 걱정을 읽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사람을 시켜서 공항에다 체크했더니 선배님 출국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던데요.”

그러더니 덧붙였다.

“선배님은 출국 금지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 그런 경우도 있다고 하더구먼요.”

“기소중지가 되어 있어서 여권 체크하면 바로 드러날 텐데.”

“제가 다시 한번 확인을 해보지요.”

다시 잔에 술을 따라준 조철봉이 정색하고 안기준을 보았다.

“어쨌든 제 제의를 받아들이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네.”

“다시 재기하셔야 합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겠어.”

“저도 선배님 같은 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고마워.”

“자, 한잔.”

술잔을 들어올린 조철봉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제가 황토침대를 받지 않고 리베이트만 덜렁 드려서 속이 상하셨지요?”

“아냐.”

머리를 저었던 안기준의 눈에서 마침내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그러자 조철봉은 외면했고 안기준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때 안기준의 머릿속에 이제는 넉자 단어가 떠올랐다.

 

새옹지마다.

 

인생은 새옹지마다.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

 

좋은 일이 나쁜 일의 원인이 되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나는 것이다.

 

 

 

 

(1498) 도망자-16 

 

 “응, 난데.”

하고 안기준이 말했을 때 김수정은 가만 있었다.

 

오후 5시반, 성규와 민규는 집에 돌아와 있을 시간이다.

“저기.”

안기준이 말을 이으려는 순간이었다.

 

전화가 끊겼으므로 안기준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뱉었다.

 

김수정이 전화를 끊은 것이다.

 

다시 아이들하고 같이 살 것도 아니면서 자꾸 불러내면 서로 가슴만 아플 것 아니냐는

 

김수정의 말은 맞다.

 

또한 뒤늦게 자식 생각한다면서 찾아 대는 건 제가 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맞다.

 

한참 동안 공중전화 박스안에 서있던 안기준은 다시 전화를 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나왔다.

겨울에 5시반이면 어둡다.

 

어제 시골로 내려가려다가 조철봉의 제의를 승낙하고는 다시 오피스텔로 돌아온 안기준이다.

 

오피스텔을 빌려준 친구 유정규한테 며칠만 더 있다가 나가겠다고 말했더니 반겼다.

 

그래서 안기준은 그날 오피스텔로 돌아가 잤다.

 

조철봉이 출국에 지장이 없는가를 다시 확인해준다고 했으니 이상만 없으면 내일이라도

 

베트남으로 떠날 것이다.

다음날 오후,

 

안기준은 양복도 제일 깨끗한 것으로 골라입고 구두도 잘 닦은 후에 말끔한 모습이 되어서

 

서울중학교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성규를 만나려는 것이다.

수업을 끝낸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나왔으므로 안기준은 교문의 한쪽에 서서 성규가

 

먼저 발견해 주기를 기다렸다.

 

학생들이 점점 드물어질 때까지 한 20분은 기다렸을 때 안기준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는

 

성규를 보았다.

 

성규는 혼자였다.

 

거리가 30미터쯤 되었을 때서야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걷던 성규가 머리를 들더니

 

안기준을 보았다.

“아빠.”

놀란 성규가 눈을 크게 떴다가 곧 달려왔다.

 

그러나 얼굴의 긴장은 풀어지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규가 다가올 때까지

 

안기준은 성규의 굳어진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물론 안기준은 활짝 웃는 얼굴로 성규를 맞았다.

 

그러나 성규는 웃지 않았다.

 

다가선 성규가 안기준을 올려다보았다.

“아빠,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라니?”

성규의 손을 잡고 인도를 걸으면서 안기준이 되물었다.

“왜 그렇게 묻는 거냐?”

“아니, 학교까지 찾아왔으니까 그렇지.”

“인마, 너 보고 싶어서 왔지.”

베트남에 가면 오래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돌아오는 데 몇년이 걸릴 수도 있다.

 

안기준은 성규를 데리고 떡볶이 집으로 들어섰다.

학생들이 두어 팀 있었지만 그들은 안쪽 자리에 앉아 떡볶이에다 순대까지 시켰다.

 

성규가 좋아하는 간식이다.

 

안기준이 떡볶이를 먹는 성규에게 말했다.

“성규야, 토요일에 민규 데리고 나올 수 있지? 학교 끝나고 말이다.”

“토요일?”

씹던 것을 삼킨 성규가 두어 번 눈을 깜박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어디로?”

“내가 아파트 근처로 갈 테니까 어디서 만나는 게 좋겠니?”

“엄마한테 들키면 혼나는데.”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야지. 민규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고.”

“그럼 아파트 옆의 비디오가게 있지? 그 옆에 골목이 있어.”

성규가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거기서 만나, 아빠. 세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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