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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 도망자(12)

오늘의 쉼터 2014. 9. 5. 23:07

456. 도망자(12)

 

 

(1505) 도망자-23 

 

 

다음날 대구로 내려간 안기준의 인사를 받자마자 아버지가 말했다.

“베트남으로 간다면서?”

“예. 아버지.”

“그럼.”

아버지의 시선이 책장 위로 옮겨졌다.

 

그곳에 화장품 케이스가 놓여져 있었다.

“저 애는 어떻게 할 거냐?”

이제는 ‘저 애’라고 부르는 것이다.

 

가슴의 고동이 빨라진 안기준은 헛기침을 했다.

“제가 데려가기도 그렇고….”

“그럼 뿌릴 테냐?”

“아뇨, 아직.”

“하긴.”

머리를 끄덕인 아버지가 안기준을 똑바로 보았다.

“나도 데리고 있다 보니까 가끔 든든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럼, 아버지.”

눈을 크게 뜬 안기준을 보더니 아버지가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당분간 데리고 있으마.”

“고맙습니다. 아버지.”

“네 어머니 덕분인 줄 알아라.”

그러자 이쪽에다 등을 보이고 술상을 차리던 어머니가 말했다.

“경희가 꿈에 두 번이나 나왔어.”

머리를 돌린 어머니가 안기준을 향해 웃어 보였다.

“얘가 웃더라. 좋은가봐.”

경희는 할머니를 많이 따랐다.

 

여름에 땀이 난 할머니의 가슴을 수건으로 눌러 닦아주던 이야기를 어머니는 두고두고 했다.

 

그날밤 안기준은 아버지와 취하도록 마셨다.

“이놈아, 인생은 잠깐이여.”

아버지가 술기운으로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는 며느리 김수정을 마땅치 않게 여겼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안기준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안기준을 더 비판했다.

 

그래서 한때 인연을 끊었던 적도 있다.

 

일년쯤 목소리도 듣지 못했던 것이다.

“내 뿌리는 네 대에서 끝난다. 요즘은 그렇게 된다.”

아버지는 또 그렇게 말했다. 눈만 껌벅이는 안기준을 향해 아버지가 설명했다.

“내 무덤에 네 아들놈들, 그러니까 내 손자놈들이 올 것 같으냐?

 

안 온다. 나도 드문드문했는 걸 뭐.”

안기준도 지금까지 할아버지 산소에 서너번쯤 갔을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가 이끌어서 갔다.

 

혼자 간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니 성규와 민규가 할아버지 산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만 하는 것도 다행일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말이 이어졌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선산에 내 묏자리를 만들어 놓았으니까 거기로 들어갈 것이고,”

술잔을 든 아버지가 안기준을 보았다.

“그때 내 옆에다 경희를 놓는다. 알았느냐?”

“예. 아버지.”

“네가 베트남에서 못 오게 되더라도 그렇게 할 테니까.”

“그런 말씀마세요. 아버지는 건강하시니까 20년은 더….”

“성규, 민규가 가엾다.”

불쑥 아버지가 말했으므로 안기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책임한 부모를 만나서 어린 것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꼬.”

안기준은 시선을 내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가 다가와 옆에 앉았는데 이쯤해서 입을 다물게 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때 아버지가 뱉듯이 말했다.

“애비 되는 놈은 또 도망을 가는 거야.

 

사업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도망이야. 네 놈은 도망자여.”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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