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 새 인연(1)
(1506) 새 인연-1
가조철봉이 여자를 본 순간의 느낌은 눈이 부시다는 것이었다.
실제 여자 주위로 광채가 나는 것 같아서 조철봉은 눈을 가늘게 떠야만 했다.
호찌민 시로 향하는 비행기 안. 여자는 창쪽 좌석에 앉았고 조철봉의 자리는
통로 옆으로 1미터쯤 떨어져 있어 오히려 더 잘 보였다.
크게 물결치듯 파마한 머리, 맑은 눈이었지만 쌍꺼풀은 없다.
곧은 콧날과 단정한 입술, 그리고 팔걸이에 올려놓은 손을 보라.
미끈하고 잘 생겼다.
살색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 조철봉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 여자의 종아리를 보았다.
그 순간 조철봉은 숨을 삼켰다.
여자는 스타킹을 신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드러난 맑고 탄력 있는 피부,
그 피부만 봐도 여자의 속살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조철봉이다.
종아리는 미끈했고 길다.
살집도 적당했다.
깡마른 다리는 싫은 조철봉이다.
그때 여자가 힐끗 이쪽으로 시선을 주었으므로 조철봉은 얼른 딴전을 피웠다.
눈빛이 강했다.
이 눈의 초점이 풀렸을 때를 상상하면서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그때 안내 방송이 들리더니 곧 기체는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륙하는 것이다.
“형님, 시차가 3시간이니까 호찌민에는 오후 5시에 도착하겠는데요.”
옆에 앉은 최갑중이 말을 걸었으므로 조철봉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지금 막 여자의 알몸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은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 꼭 말을 건다.
그것은 겁이 나기 때문인데, 옆에 같이 죽을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이다.
조철봉이 가만 있었지만 갑중은 말을 이었다.
“저녁 식사는 호텔에서 하시지요.”
“…….”
“호텔 한식당 음식이 괜찮았습니다.”
그때 비행기가 땅을 차고 기수를 솟구치며 올라갔다.
갑중이 다시 중얼거렸다.
“베트남 음식도 입맛에 맞더군요.”
조철봉은 여자가 의자에 등을 붙이더니 두 다리를 죽 뻗는 것을 보았다.
나이는 30대 초반이나 중반 정도. 옷차림도 세련되었고 여자 옷은 잘 모르지만 명품 같다.
저 나이에 일반요금보다 두배 가깝게 되는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을 하는 걸 보면
보통 여자는 아닌 것 같다.
거기에다 저 미모에 몸매. 연예인일까? 아니다.
조철봉은 머리를 저었다.
그것을 본 갑중이 입을 다물더니 의자에 등을 기댔다.
비행기가 이제는 수평 이동을 하기도 했다.
그럼 재벌가 사모님? 그렇게 높게만 기준을 잡지 말자.
요즘은 이 따위 비즈니스 손님은 쌔고 쌨다.
부동산 팀장도 타고 슈퍼 사장님도 탄다.
마일리지 붙여서 비즈니스 탈 수도 있다.
그때 벨트 사인이 꺼졌고 동시에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힐끗 이쪽에다 시선을 주었는데 조철봉과 딱 마주쳤다.
조철봉은 시선이 마주치면서 불꽃이 튀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다시 머리를 돌릴 때까지는 1초도 안 걸렸지만 조철봉은 1분도 더 되는 것 같았다.
여자가 앞쪽 화장실로 들어갔을 때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갑중을 보았다.
“저 여자 말야.”
조철봉이 턱으로 화장실을 가리켰다.
“저 여자가 뭘 하는 여자인지 알아봐.”
“예? 예.”
어설프게 대답한 갑중이 힐끗 조철봉을 보았다.
또 병이 도졌다는 표정을 짓고 싶었겠지만 대신 눈만 크게 떠서 위장했다.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여자다.”
거짓말이다.
그러나 인연은 얽히고설켜서 얼마든지 연결이 된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갑중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 형님, 알겠습니다.”
(1507) 새인연-2
가그날 밤 조철봉은 직원들과 회식을 하느라 9시가 넘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혼자다.
한때 베트남에도 살림을 차려준 여자가 여럿 있었지만 지금은 결혼해서 애 낳고 잘들 산다.
조철봉이 평생 놀고 먹어도 남을 만큼 한 밑천씩 뚝 떼어 주었으므로 나쁜 인연들은 아니다.
다 제가 좋아서 떠난 관계였으니 더욱 그렇다.
조철봉은 기다리라고 한 적 없고 간다는 사람 잡지도 않는다.
게다가 한 뭉치씩 떼어주지 않았는가?
인연 관리는 그쯤이면 잘했다고 조철봉은 믿는다.
최갑중이 방으로 들어섰을 때는 10시쯤으로 욕실에서 나온 조철봉의 표정은 밝다.
갑중은 반팔 셔츠 차림이었는데 같이 회식을 한 터라 얼굴이 술기운으로 붉었다.
갑중의 방은 아래층이다.
“형님, 조사해왔습니다.”
소파에 앉은 갑중이 불쑥 말했지만 조철봉은 알아들었다.
비행기에서 같이 호찌민시로 날아온 여자,
그 여자의 신상을 알아보라고 시킨 것이다.
갑중은 부하직원에게 지시를 했고 그 결과가 나온 모양이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갑중이 주머니에서 접혀진 종이를 펴고 읽었다.
“이름은 강하영. 나이는 36세. 본적이 서울입니다. 주민증 확인까지 했습니다.”
힐끗 조철봉의 눈치를 본 갑중이 말을 이었다.
“강하영은 호찌민시에서 결혼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사 이름은 서울프로덕션인데 실제 업무는 베트남 여자를 한국 남자하고 결혼시키는 것이죠.”
“… ….”
“회사 직원은 한국인이 강하영까지 세 명, 베트남 직원이 세 명이지만 실적이 좋습니다.
수십개의 결혼 중개회사가 있지만 선두권입니다.”
그러고는 갑중이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강하영은 룸살롱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클럽이라는 곳인데 방이 20개에 아가씨들은 1백명 정도,
한국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군요.”
“… ….”
“돈을 엄청 벌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종이에서 시선을 뗀 갑중이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혼녀라고 합니다.
베트남에 온 지는 5년 정도. 한국에 자주 왕래는 하지만 가족관계는 아는 사람이 없다는데요.”
“수고했다.”
조철봉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으므로 갑중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기운이 빠진 것 같았다.
“괜찮으시면 제가 서울클럽으로 한번 모시고 가려고 했는데요, 형님.”
“왜?”
“거기 가면 강하영이 나옵니다. 그래서.”
“필요 없어.”
“아니, 그러면.”
그러면 왜 뒷조사를 시켰느냐고 물을 뻔했던 갑중이 입을 다물고는 침을 삼켰다.
그때 조철봉이 말했다.
“그 여자, 사기꾼이다.”
“아아, 예. 아무래도.”
갑중이 어중간하게 대답하자 조철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기꾼은 사기꾼을 알아보는 법이지.”
“아니, 형님이 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군.”
“왜 그렇습니까?”
“그 얼굴에 그 몸에 거기에다 그런 직업이면 백발백중이야.”
자신있게 말했던 조철봉이 입맛을 다셨다.
“내가 욕심을 부렸지.”
그때 갑중이 정색하고 상반신을 세웠다.
“형님, 한번 겪어나 보시지요.
이렇게 방에 혼자 계시니까 형님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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