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47. 도망자(3)

오늘의 쉼터 2014. 9. 5. 22:54

447. 도망자(3)

 

 

(1487) 도망자-5  

 

 “아빠, 여기.”

하고 성규가 손을 더 내밀었으므로 안기준은 지폐를 받았다.

“3만7천원이야.”

성규가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밥 사먹어.”

“이건 무슨 돈인데?”

차마 성규의 시선을 받지는 못하고 안기준이 민규의 어깨를 안은 채 물었다.

 

그러자 성규가 대답했다.

“내가 아빠 주려고 모았어.”

“…….”

“아빠, 기운 내”

“오냐.”

이를 악문 안기준이 둘의 어깨를 감아안고는 벤치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안기준은 두 아들을 양팔로 당겨 안았다.

 

그러자 문득 몇년전 사건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차에 태우고 강물 속으로 질주해 들어가 자살한 사건이다.

 

그때 안기준은 저 혼자 죽을 것이지 왜 죄 없는 자식들까지 데려 가느냐고 흥분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놈 심사가 이해되는 것이다.

 

아니,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때 민규가 말했다.

“아빠, 우리 다음달에 이사 가야한대, 저기 성남으로.”

“…….”

“나하고 형도 전학 가야 되고.”

“…….”

“아빠.”

“응?”

“우리 이사 가면 찾아올 수 있겠어?”

“인마, 엄마 핸드폰이 있잖아?”

성규가 핀잔 주듯 말하자

 

민규는 안심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아빠.”

이번에는 성규가 불렀다.

 

기어코 안기준의 시선을 잡은 성규가 물었다.

“아빠, 잡히면 교도소 가야 돼?”

“누가 그랬어?”

“집에 찾아온 아저씨들이.”

“아냐.”

안기준이 정색하고 머리를 저었다.

 

채권자들이다.

 

그놈들은 어린애 앞에서도 별말을 다 하는 것이다.

 

두 아들의 어깨를 힘주어 안은 안기준이 말을 이었다.

“걱정 마라, 아빠는 꼭 너희들한테 돌아올 테니까.”

“언제?”

하고 민규가 묻자 안기준은 바로 대답했다.

“일년만 기다리면 돼.”

그러고는 안기준이 가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오늘 낮에 조철봉한테서 받은 돈으로 60만원을 뺀 3백만원이 들어 있다.

“이거 엄마한테 드려라.”

성규가 봉투를 받았을 때 안기준이 말을 이었다.

“돈이다. 3백만원.”

돈 액수는 애들의 기를 살려주려고 일부러 말했다.

 

과연 민규가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아빠, 돈 많이 벌었어?

“그래, 많이 벌 거다.”

“그럼 교도소 안 가도 돼?”

“그건 걱정 마.”

“언제 또 올 거야?”

“자주 올게, 그리고….”

어금니를 물었다가 푼 안기준이 말을 이었다.

“아빠는 항상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을 거다.

 

너희들한테는 보이지 않겠지만 아빠가 너희들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라.”

목이 멘 안기준이 헛기침을 했다.

 

귀신이 되어서라도 지켜주마,

 

내 자식들아. 

 

 

 

(1488) 도망자-6 

 

 대림동의 숙소 안으로 들어선 안기준은 불을 켜지 않고 침대 끝에 앉았다.

 

밤에는 불을 켜지 않는 것이 버릇이 되었지만 창밖 거리의 휘황한 불빛 때문에 사물은 보였다.

“경희야, 오빠들 만나고 왔다.”

안기준이 입을 열었다.

“근데 네 큰오빠가 아빠한테 3만7000원을 주더라.”

선반 위의 케이스는 대답하지 않았고 안기준은 말을 이었다.

“아빠 주려고 모았다는구나.”

머리를 든 안기준이 케이스를 보았다.

 

이제 눈에 초점이 잡혔고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어떤 날은 밤새도록 경희하고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경희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

 

사고는 갑자기 찾아온다.

 

아침에 웃으며 헤어진 딸을 오후에 다시 보았을 때는

 

병원 응급실에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경희야, 아빠가 좀 피곤해.”

어깨를 늘어뜨린 안기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차라리 미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

“죽지도 못하고 말야.”

“…….”

“희망이 보이지가 않아.”

“…….”

“사람 만나기도 싫고. 아니, 겁이 나.”

“…….”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

“그래서 버스나 전철을 못 타겠어.”

“…….”

“그렇다고 택시 잡으려고 손을 들지도 못해,

 

누가 ‘저기 기소중지자가 있다’ 할 것 같다니까.”

“…….”

“또 택시가 그냥 지나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날 무시하는 것 같거든.”

슬슬 눈이 감기면서 잠이 밀려왔으므로 안기준은 길게 숨을 뱉었다.

 

오늘은 많은 일이 일어났다.

 

조철봉한테 찾아서 팔지도 않은 디럭스 침대의 리베이트를 받았고 두 아들까지 만나고 온 것이다.

 

다른 날 같으면 잠이 오지 않아서 밤새도록 경희하고 이야기를 하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했을 것이다.

 

술은 폭탄주 스무 잔이 주량이었지만 도망자 신세가 되고 나서 끊었다.

 

술로 잊는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죽어도 맨 정신으로 죽을 것이다.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술을 이용해서 잊고 지낸다면 그건 짐승이나 같다.

 

자기가 저질러 놓은 죄의 값을 맨 정신으로 치를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결심한다.

 

경희를 데려온 것은 어쩔 수 없다.

 

집에 놔둘 수야 없지 않겠는가?

 

경희에게 하소연하는 것까지 억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눈을 감은 안기준은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몸이 침대에 딱 붙는 느낌이 오면서 눈앞에 유선애가 떠올랐다.

 

지금은 떠났지만 한때 사랑했던 여자.

 

그것이 물론 이쪽의 일방적인 감정이었지만 그런들 어떠랴?

 

이쪽에서 준 만큼 받아낸다는 욕심을 부린다면 그것은 장사일 뿐이다.

“기운내.”

유선내가 정색하고 이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당신은 부도난 사람 중에서 가장 빨리 재기한 사람이 될 거야.”

이건 유선애가 떠나기 전에 한 말이었다.

그때 눈앞에 경희가 나타났다.

“아빠, 아파 죽겠어.”

경희가 응급실에서 마지막에 한 말이었다.

안기준은 자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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