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48. 도망자(4)

오늘의 쉼터 2014. 9. 5. 22:55

448. 도망자(4)

 

 

(1489) 도망자-7 

 

 연립주택 입구로 들어서면서 안기준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대구 변두리의 한적한 동네여서 길가에 공터가 많았고

 

연립주택 네 동이 드문드문 서있을 뿐이다.

정자에 모여앉은 노인 서너 명이 시선을 주었지만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채권자 몇명이 부도난 지 며칠 후에 이곳에 찾아왔다가 돌아갔다는 말을 들은 터라

 

안기준은 긴장하고 있었다.

 

누가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하도 많아서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102동 101호 앞에 선 안기준은 주위를 둘러본 후에 벨을 눌렀다.

 

그러자 바로 문 안쪽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누구세요?”

“어머니.”

그렇게 한마디만 했는데도 문이 왈칵 열리더니 어머니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놈아, 기준아.”

어머니는 벌써 눈물을 쏟고 있었다.

 

두 손으로 안기준의 팔을 끌어당긴 어머니는 문을 닫기 전에 밖을 둘러보았다.

 

그것을 본 안기준의 가슴이 다시 무너져 내렸다.

“이놈아, 왜 이제야 와!”

어머니가 소리치며 울었을 때 안방 문이 열리면서 아버지가 나왔다.

 

아버지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있었지만 입술은 일그러뜨렸다.

“거, 뭐해? 애 붙잡고만 있을 건가?”

아버지가 소리치자 어머니는 부둥켜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밥 먹었니?”

어머니가 물었다.

 

오후 3시반, 안기준은 아침도 먹지 않았지만 시장기가 없다.

“예, 먹었어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래도, 상 차려줄까?”

“이따 저녁 때요.”

그러고는 안기준이 들고온 봉투를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청주 두 병하고 쇠고기를 세 근 산 것이다.

“이놈아,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어머니가 붉어진 눈으로 나무랐다.

“걱정 말고 쉬어라.”

외면한 채 아버지가 말하더니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신었다.

“내가 지키고 서 있을 테니까. 이상한 놈 나타나면 소리를 치마.”

“아버지.”

쓴웃음을 지은 안기준이 아버지에게 다가가 소매를 잡았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누구 안 옵니다.”

그러자 어머니까지 머리를 돌려 안기준을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어머니의 얼굴이 생기를 띠었으므로 안기준은 어금니를 물었다.

“찾아올 사람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거짓말이다.

 

부채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으니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

“어떻게 된건데?”

신발을 벗은 아버지가 물었으므로 안기준은 시선을 내렸다.

“이곳은 아버지 집이고 그놈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단 말이죠.”

“그건 그렇다.”

하면서도 아버지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때 몸을 돌리던 어머니가 안기준이 들고온 케이스를 보았다.

“이건 뭐냐?”

케이스를 든 어머니가 안기준에게 물었다.

“꽤 무겁구나. 뭐가 들었어?”

“예, 경희가.”

그렇게 말한 것은 둘의 불안감을 잠시 잊게 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어머니의 시선을 받은 안기준이 외면한 채 말했다.

“경희 유골을 그때 버리지 않았거든요.” 

 

 

 

(1490) 도망자-8 

 

 “이놈아, 이게 무슨 짓이야!”

버럭 소리쳤던 아버지가 외면하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어머니는 케이스에 시선을 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안기준이 다가가 어머니의 손에서 케이스를 받아 쥐었다.

“어머니, 얘를 놔두고 올 수가 없어서.”

“이 불쌍한 놈.”

어머니가 다시 눈물을 쏟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울던 어머니가 곧 손을 떼고 말했다.

“그럼 경희를 2년 동안이나 데리고 있었다는 말이구나.”

안기준은 대답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길게 숨을 뱉었다.

“잘 데려왔다.”

방으로 들어선 안기준은 케이스를 구석에 내려놓고 옆에 앉았다.

 

벽에 등을 붙이고 두 다리를 뻗자 다시 나른한 피로가 몰려왔다.

 

방 두개짜리 이 연립주택은 안기준이 아버지 명의로 사드린 것이다.

 

면장으로 공무원 정년 퇴직을 한 아버지 안영규는 고지식한 성품이었다.

 

언제나 박봉에 허덕이는 살림을 살았기 때문에 자식 삼형제는

 

가난하게 자란 대신 자립심이 강해졌다.

 

그렇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니다.

 

장남인 안기준이 한때 잘 나갔다가 이 꼴이 되었고 차남 안명준은 초등학교 교사,

 

삼남 안효준은 필리핀에서 여행사를 차려 제 식구나 겨우 먹일 정도였다.

“저녁 먹자.”

하면서 어머니가 들어섰을 때는 저녁 7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케이스를 집어 들었으므로 일어서던 안기준이 눈으로 물었다.

“경희도 밥 먹여야지.”

앞장서 방을 나가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안방에는 상이 두개 차려져 있었는데 작은 상에는 찬 서너개와 밥이 놓여졌을 뿐이다.

 

그런데 찬이 계란 프라이에다 소시지 그리고 멸치볶음이었다.

 

경희가 좋아하던 찬이다.

 

안기준이 아버지의 밥상 앞에 앉았을 때 어머니가 케이스를 작은 상 앞에 놓았다.

“어허, 그것 참.”

그것을 본 아버지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지만 더이상 상관하지는 않았다.

“들자.”

하고 아버지가 수저를 들면서 안기준에게 말했다.

 

그때 어머니가 케이스 위에 수저와 젓가락을 올려 놓으면서 말했다.

“경희야, 많이 먹어라.”

안기준은 등을 돌린 채 수저를 들었고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너도 아빠하고 둘이 다니느라 고생 많았지?

 

하지만 네 아빠는 네가 있어서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구나.”

“에이.”

다시 아버지가 입맛을 다시더니

 

수저를 내려놓고 안기준이 사온 청주 병을 집어 들었다.

 

안기준이 서둘러 병을 받아 들고 잔을 채워주자 아버지가 말했다.

“내일 나하고 강으로 가자.”

잔을 든 아버지가 한모금에 술을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저놈을 강에다 풀어놓아 주자.”

“… ….”

“풀어놓아 주란 말이다, 이놈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 어머니는 못들은 척 말했다.

“아가, 이거 소시지 먹어봐라. 할머니가 소시지 맛있게 만든다고 했지?”

안기준은 아버지가 따라준 술을 한모금 삼켰다.

“저 어린것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고생을 시킬 참이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어머니가 또 말했다.

“아가, 이제 계란 프라이 먹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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