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 이래도 한세상(9)
(1482) 이래도 한세상-17
“아이구, 또 뵙습니다.”
하고 옆으로 다가온 사내가 인사를 했으므로 조철봉이 긴장했다.
다음 순간 조철봉은 사내가 지난번 청도 공항에서 만난 단추공장 사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3년 만에 한국에 간다던 사내, 그날은 아들과 동행이었다.
“청도 가십니까?”
조철봉이 묻자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예, 정리할 것이 많아서 좀 늦게 돌아갑니다.”
“그럼 아드님은 먼저….”
“예. 먼저 보냈지요.”
그러더니 의자에 등을 붙인 사내가 긴 숨을 뱉으며 말했다.
“어이구, 마누라가 기어코 따라오겠다고 해서 혼났습니다.”
“중국으로 말입니까?”
건성으로 조철봉이 물었지만 사내는 정색하고 끄덕였다.
“예, 저를 따라서….”
“모시고 가지, 왜.”
“저 따라가서 뭘 합니까?”
시선을 돌린 사내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조철봉은 지난번에 사내의 명함을 받았지만 이름은 잊었다.
그때 사내가 앞쪽을 향한 채 중얼거렸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평생이죠, 뭐.”
“예?”
“마누라는 행복하게 살 겁니다.”
이제는 조철봉이 눈만 껌벅였고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기어코 데려가지 않겠다니까 나중에는 울더만요.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
“다 부질없다고 그랬지요. 일이 다 끝났을 때나 오라고 했습니다.”
“…….”
“고생만 직사하게 시킨 마누라한테 뭔가 좀 해주고 가는 기분은 드는데.”
“…….”
“좀 허전하구만요.”
“…….”
“아마 지금은 데려가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알게 되겠지요.”
“…….”
“근데 말입니다.”
사내가 이번에는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내가 이번에 웃기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 친구한테서 말입니다.”
“…….”
“그놈이 제 마누라한테 애인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사내가 다시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런데 그놈은 처음에는 놀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음이 놓이더라네요, 든든해지구요.”
그러자 조철봉이 머리를 조금 기울였고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그놈을 잘 알거든요. 그놈은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제 마누라를 정말 사랑하고 있었지요.”
“…….”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야, 이 비겁한 놈아.
너, 마누라한테서 도망가려고 그러는 거지?
그놈한테 마누라 맡기고 말이다. 그랬더니….”
그때 갑자기 사내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으므로 조철봉은 긴장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은 사내가 다시 소리 없이 웃었다.
사내의 웃음에서 찬 기운이 느껴졌다.
“그놈이 그러더군요. 마누라 애인한테 오히려 고맙다고.”
탑승 안내 방송이 들렸으므로 사내는 다시 눈물을 닦았다.
그러더니 조철봉을 향해 인사처럼 말했다.
“저,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다음 도망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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