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43. 이래도 한세상(8)

오늘의 쉼터 2014. 9. 5. 22:50

443. 이래도 한세상(8)

 

 

(1480) 이래도 한세상-15  

 

 “아니, 왜?”

배미옥이 찌푸린 얼굴로 김종인을 보았다.

“비행기표 끊어 놓았잖어?”

“그건 연기하면 돼.”

넥타이를 매면서 김종인이 말했다.

“마무리를 할 일이 있어서 그래.”

“일루 와 봐.”

하더니 배미옥이 다가서서 김종인의 넥타이 매듭을 다시 매주었다.

 

김종인은 배미옥의 이마에서 시선을 들고 천장을 보았다.

 

오후 3시반이다.

 

다른 때 같으면 무슨 일로 누구를 만나러 나가느냐고 꼬치꼬치 물었을 배미옥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여기.”

하면서 김종인의 주머니에다 배미옥이 지폐를 찔러 넣었다.

“술 많이 마시지 마. 전화는 꼭 하고.”

“알았어.”

“내 핸드폰 빌려줘?”

“아니.”

했지만 김종인이 배미옥을 힐끗 보았다.

 

그러나 배미옥은 등을 돌리고 있어서 표정은 알 수가 없다.

 

아파트를 나온 김종인은 멍한 표정으로 거리를 걸었다.

 

사거리를 두개 건너고나자 길가의 공중전화 박스가 눈에 띄었으므로 안으로 들어가 심호흡을 했다.

 

늦가을의 오후여서 햇살은 환했지만 서늘했다.

 

한동안 박스 밖의 거리를 내다보던 김종인이 양복 가슴 주머니에서 접혀진 종이 쪽지를 꺼내

 

쥐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른 김종인이 심호흡을 또 했다.

 

신호음이 세번 울리고나서 사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배미옥이 끝내자고 한 남자다.

 

배미옥의 핸드폰에서 사내의 전화번호를 적어온 것이다.

 

통화 내역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에 김종인은

 

배미옥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여보세요?”

이쪽이 가만 있으니까 사내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김종인이 이를 악물었다가 풀었다.

“예, 여기는 배미옥의 남편되는 사람인데요.

 

김종인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저쪽은 뚝 말을 끊고는 가만 있었다.

 

김종인은 그런 경우를 당해보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는 있었다.

 

아마 벼락을 맞은 것 같았을 것이다.

 

김종인이 말을 이었다.

“저기, 좀 만났으면 하는데요.

 

남자대 남자로, 그리고 우리가 만난다는 이야기는 배미옥이한테 하지 말고 말입니다.

 

저도 미옥이 모르게 지금 전화하고 있거든요.”

“…….”

“뭐, 불안하게 생각하실 건 없습니다. 그냥 이야기를 좀.”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깜냥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사내가 처음으로 대답을 했다.

“좀 놀랐거든요.”

“예, 그러시겠죠.

 

그런데 제가 지금 나와 있는데 만나뵐 수 없을까요?

 

저는 도마동쪽에 있습니다만.”

“저도 가깝습니다.”

“그럼 지금 3시50분인데 4시반쯤이면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요.”

사내가 대답하더니 덧붙였다.

“정말 놀랐습니다.”

“예, 만나뵙고 말씀 드리지요.”

“그런데 용건은.”

“별거 아닙니다. 상의 드릴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러자 사내는 안심한듯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장소를 정하지요.” 

 

 

 

(1481) 이래도 한세상-16 

 

 사내는 키가 훤칠했고 인상도 좋았다.

 

50대 중반쯤의 나이로 보였는데 옷차림도 세련되었다.

 

밝은색 바지에 주황색 카디건을 걸쳤다.

 

김종인은 이런 차림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빌딩 1층 커피숍에는 손님 서너명이 있었지만 사내는 구석자리에 앉은 김종인에게 곧장 다가왔다.

“저, 최기영입니다.”

다가선 사내가 손을 내밀었으므로 김종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예, 김종인입니다.”

인사를 나눈 사내하고 마주보며 앉았을 때도 김종인의 웃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애를 썼지만 자꾸 입술 끝이 비틀리면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가 눈을 치켜떴다.

 

그 사이에 사내가 다가온 종업원에게 커피를 시켰고

 

김종인은 머리를 끄덕여 같은 것을 시킨다는 시늉을 했다.

 

불러냈으니 이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야 한다.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면서 크게 심호흡을 한 김종인이 입을 열었다.

“거시기, 배미옥이, 제 처 때문에 만나자고 한 겁니다.”

최기영은 눈만 크게 떴고 김종인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우연히 그제 밤에 미옥이하고 최형이 하는 통화를 들었습니다.”

“…….”

“미옥이가 갑자기 끝내자고 해서 놀라셨지요?”

그순간 김종인은 이게 무슨 꼴이냐고 스스로 속으로 되물었다.

 

제대로 된 남편이라면 제 마누라하고 딴놈이 엮어졌던 사실부터 따지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디 이쪽이 제대로 된 남편인가?

 

그때서야 김종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미옥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종인이 물었을 때 최기영이 시선을 들었다.

 

아까부터 최기영은 몸을 굳힌 채 눈만 껌벅였다.

“예, 실은 저.”

“뭐, 내가 따지려고 하는 거 아닙니다. 그냥 알고 싶어서요.”

그러고는 김종인이 시선을 내렸다.

“말씀 안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최기영의 목소리가 조금 굵어졌다.

 

시선을 든 김종인을 향해 최기영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저는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김형하고 헤어지라고 재촉했지요.

 

남은 인생을 저하고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일 것 같던 미옥씨가 중국으로 김형과 함께 간다는 말을 듣고

 

저도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불미스러운 관계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

“김형께선 참 점잖으십니다.

 

앞으로 두분이 행복해 지시기를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그때 종업원이 커피를 들고와 내려놓았다.

 

일이 익숙지 못한 알바인지 탁자에 커피가 흘렀다.

 

김종인이 탁자에 흘러 떨어진 커피를 휴지로 꼼꼼하게 닦았다.

 

민망한 표정으로 서 있던 알바 여직원이 돌아가자 김종인은 입을 열었다.

“최형은 무슨 일을 하시오?”

“예, 식당을 합니다.”

“아아.”

“미옥씨가 제 식당에서 일을 도와 주었습니다.”

김종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한달에 150씩 여기서 벌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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