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 이래도 한세상(2)
(1468) 이래도 한세상-3
“그만 빼.”
어깨를 밀면서 배미옥이 말하자 김종인은 먼저 긴 숨부터 뱉고 나서 몸을 뺐다.
옆으로 한 바퀴를 굴러 반듯이 누운 김종인은 아직도 숨을 헐떡였지만 배미옥은 조용했다.
문득 김종인의 머릿속에 목석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조금 정신을 차리자 석녀라는 표현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미옥은 언제나 이렇다.
샘에 물이 제법 고인 걸 보면 싫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것 빼놓고는 반응이 없다.
두 손은 어깨를 움켜쥔 채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 없었고 두 다리는 벌린 채 끄떡하지 않는다.
숨소리도 가쁘지 않고 신음은 물론이며 탄성 한번 들은 적이 없다.
하자면 거절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냥 벗고 누워서 기다릴 뿐으로 애무를 하려면 질색을 한다.
그래서 그냥 어물거리다가 넣어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3년 만에 만난 남편은 오죽 감개가 새롭겠는가?
김종인으로서는 배미옥이 옆에 누웠을 때,
더구나 씻고 온 것을 알았을 때 감동으로 첫날밤처럼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그러고는 옷을 벗긴 순간 그 감동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전에 할 적에는 배미옥이 아랫도리만 벗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브래지어를 풀고 위까지 다 벗겨도 가만있었다.
3년 만에 본 배미옥의 몸은 풍성했다.
전에도 통통했지만 이제 쉰살이 된 배미옥의 몸은 육중했다.
그러나 어둠속에 부옇게 비친 배미옥의 알몸이 김종인에게는 탤런트 못지 않았다.
김종인은 이번에도 배미옥이 애무를 거절했지만 기쁘게 받아들였다.
급한 때 애무 따위는 남자도 생략하고 싶어지니까.
하나, 합쳐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기를 쓰는 김종인에게 빼라면서 밀어젖힐 때는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 중국에 안가.”
김종인이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배미옥이 천장을 향하고 말했다.
목소리가 차분했지만 결연하게 느껴졌다.
이 여자는 한다면 한다.
고집이 세어서 목표는 꼭 이뤘다.
30년 전, 뚝섬 근처에서 직원 하나를 데리고 단추공장을 할 때
경리로 입사했던 배미옥은 악착 같았다.
배미옥이 없었다면 김종인은 다섯번은 망했을 것이었다.
아니, 80년대 중반쯤에 이 세상에서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배미옥은 입사 3년차였던 스물두살 때 김종인과 결혼했다.
곡절을 여러 번 겪고 일어났지만 지난 외환위기(IMF)때는 다 죽었다.
기계 몇 대 건지고 집을 담보로 잡혀 빌린 돈으로 중국에 간 것도 다 배미옥의 수단이었다.
그런데 배미옥은 더이상 사업에 상관하지 않으려고 했다.
중국 공장에 기계 놓을 때 딱 한번 와 보고는 두번 다시 오지 않았다.
머리를 돌린 김종인이 배미옥의 옆 얼굴을 보았다.
배미옥은 알몸 하반신만 시트로 가렸으므로 우람한 젖가슴이 다 드러났다.
“왜?”
김종인이 묻자 배미옥은 배를 들썩이며 긴 숨을 뱉었다.
“내가 안 봐도 다 알아. 그 공장 앞으로 얼마 못 간다는 거.”
“그게 무슨 소리야?”
“병석이한테서 다 들었어.”
“뭐라고?”
“오더 사정, 단가, 자금문제.”
“… ….”
“당신은 나한테 걱정 안 시키려고 좋은 얘기만 하는데,
한달에 2백씩 보내주는 돈도 어떻게 만든 돈인지 다 안다고.”
“… ….”
“내 걱정은 마. 나, 작년부터 식당일 나가는데 한달에 150은 버니까.”
그 순간 김종인은 숨을 들이켰다.
아직까지 조금 남아있던 욕망도 다 사그라졌다.
(1469) 이래도 한세상-4
가만 보면 사람은 대부분 사는 재미를 한두개씩 갖고 있다.
이른바 세상사는 재미인데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흔히 말하는 독서나 영화감상, 여행, 수집 따위도 물론 포함이 될 것이다.
바둑, 낚시, 운동, 경기응원, 맛있는 음식, 또는 음주, 운전으로 사는
재미를 만끽하는 사람도 있으며 자식키우는 재미로 산다는 분도 계시다.
각양각색, 천차만별에 무궁무진한 재료가 있겠지만 김종인은 없다.
오직 단추 만드는 일이 사는 재미였다.
오더가 많아서 각종 단추가 산더미처럼 쌓이면 신이 났고 없으면 풀이 죽었다.
오죽하면 30년을 같이 산 배미옥이 당신처럼 재미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했겠는가?
말도 어눌하고, 유머는 전혀 없는데다 술도 못마시며 취미는 하나도 없다.
고스톱도 못치는 것이다. 오직 단추, 단추 하나뿐이다.
단추 이야기나 나오면 눈이 반짝인다.
그러나 배미옥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김종인의 이 재미(?)는 배미옥을 만나기 전부터 갖고 있었던 터라
30년도 더 넘었지만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재미는 전혀 흔적이 남지 않았으며 오직 김종인의 머릿속에서만 움직였고
단 한번도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종인의 재미가 뭔고 하면 섹스에 대한 연상이다.
김종인은 그 연상속에서 자신이 섹스 머신이 된다.
나른한 오후, 서너시경에 단추공장안의 박스 위에서나 밖의 양지바른 벽에 기대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김종인을 사람들은 자주 보았다.
배미옥도 보았고 아들 김병석도, 옆쪽 공장의 중국인 사장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 김종인이 수많은 여자(그중에는 중국인 사장의 부인도 포함 되었다)와
격렬한 섹스를 나누는 중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에 대한 상상만큼 인간의 활력을 증진시키는 묘약이 없다.
꿈을 꾸는 것이다.
그 꿈을 꾸고나면 링거 주사를 맞은 것처럼 오히려 기운이 난다.
피로에 지친 오후 서너시경, 한 십분 그 상상을 하고 나면 즐겁다.
그 상상속에 강간이나 혼음 따위가 포함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섹스도 대부분 전위였다.
애무는 꽤 길었다.
“다 왔네.”
옆에 앉은 배미옥의 목소리에 김종인은 눈을 떴다.
시외버스는 막 옥천을 지나는 중이었다.
이제 이원면까지는 20분도 안걸린다.
김종인은 통로 옆쪽 자리에 앉아 있는 김병석이 머리를 떨구고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딸 현주는 오늘 따라오지 못했다.
근무하는 슈퍼마켓이 바빴기 때문에 휴가를 못낸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좋아하시겠네.”
배미옥이 낮게 말했지만 김종인은 들었다.
김종인의 시선을 받은 배미옥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말을 이었다.
“하긴 병석이가 제 중국 색시를 데리고 여기까지는 못오겠지.”
이원면의 선산에 부모는 모셨지만 김종인은 아직 제가 죽었을 때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선산에 빈자리가 없으니 다른 곳으로는 가야 할 것이다.
그들이 선산 건너편의 도로에 내렸을 때는 오후 3시경이었다.
“당신은 버스 안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어?”
앞장서 걷는 병석의 뒤를 따르면서 배미옥이 김종인에게 물었다.
“눈 감고 있었지만 안잔 거 알아.”
“나?”
김종인이 되묻고는 곧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도 맛있는 섹스 상상을 했다.
부모 묘소에 오면서 불경스럽지만 버릇이 된 활력처방이며 재미라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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