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36. 이래도 한세상(1)

오늘의 쉼터 2014. 9. 4. 00:11

436. 이래도 한세상(1)

 

 

 

(1466) 이래도 한세상-1  

 

 칭다오 공항의 출국장 의자에 앉아 졸던 조철봉이 눈을 떴다.

 

이번 출장은 2박3일 일정으로 회의의 연속이었고 저녁 식사때는

 

꼭 독한 중국술을 마셨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어제는 생전 처음 70도짜리 술을 마셨는데 누구는 불덩이라고 했지만

조철봉의 느낌으로는 입 안에서부터 위까지 연필로 꾹 눌러서 긁어 내리는 것 같았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칼로 식도를 주욱 자르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머리끝이 섰고 눈이 크게 떠졌다. 중국도 한국과 비슷한 품성이 많다.

 

독한 술을 잘 마시면 여기서도 호걸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부시장 왕규는 70도짜리 백주를 맥주잔에 따르더니 건배를 제의했는데

 

조철봉이 맥주 마시듯이 한숨에 마시자 감탄했다.

그러고는 저도 잔을 비우더니 대번에 조철봉과 어깨동무를 해버린 것이다.

 

이번 출장에서 조철봉은 칭다오시 북방의 공장부지 10만평을 20년 무상으로 사용하는 허가를 받았다.

 

공장의 건물, 전기, 도로 시설까지 시에서 책임져 줄 것이었다.

 

조철봉은 이곳에 자동차 서비스공장을 건설하려는 것이다.

 

개방 이후 중국은 연평균 10%의 비약적 성장을 해왔다.

칭다오시만해도 고급 외제 승용차가 서울보다도 많이 눈에 띄는 실정이다.

 

조철봉이 보기에는 한달에 한번 정도 들를 때마다 변해간다.

 

그것이 조철봉에게는 부럽고 두렵다. 머리를 박박 깎은 30대쯤의 사내가

 

외제 최고급 승용차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간다.

 

조철봉은 전에 그런 장면을 보았을 때 삼합회의 간부쯤 되는 건달일 것이라고 자위를 했다.

그런데 삼합회 간부가 너무 많았다.

 

배가 나온 50대, 그리고 여자까지 그렇다.

 

저 돈이 다 어디서 났는가?

 

칭다오에만 한국인이 25만, 또는 30만명이라고 한다.

 

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교민들이고 칭다오 경제의 60%가 한국 투자 기업이 일으킨 물량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날도 있다.

 

그런데 조철봉은 한국인 사업가가 그런 외제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못보았다.

 

조철봉이 듣기에는 사업하다 돈만 쏟아 붓고 망해서 나가는 한국인 사업가가

 

열명 중 여섯은 된다는 것이다.

 

나머지 네명도 지금 열심히 중국에다 돈을 붓는 중이다.

 

돈은 다 중국에서 돈다.

“서울 가십니까?”

옆에서 누가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돌렸다.

 

50대 중반이나 후반쯤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더니 얼굴에 웃음을 띠었는데 검은 피부에 주름이 많다.

 

그러나 선량한 인상이었다.

“예.”

조철봉이 짧게 대답했다.

 

옆에 사내가 앉는 기척에 졸다가 깨어난 것이다.

 

앞쪽에 앉아 있던 최갑중이 사내를 보더니 조철봉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철봉이 눈짓만 하면 가로막고 나설 것이었다.

 

그때 사내가 다시 물었다.

“칭다오에서 사업 하십니까?”

“예, 그런 셈이지요.”

갑중이 나서려는 듯이 상반신을 세웠으므로 조철봉이 머리를 저었다.

 

갑중은 다시 어깨를 늘어뜨렸지만 사내는 둘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사내가 이제는 가만있었으므로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옆모습을 보았다.

 

단정한 양복 차림이었지만 소매가 길어서 손등을 덮었다.

 

구두도 새것이어서 등에 주름도 잡히지 않았다.

 

사 두었다가 처음 신은 것 같았다.

 

사내도 물론 서울로 간다.

 

그들이 앉아 있는 12번 게이트는 인천국제공항행이었다.

 

다시 사내가 머리를 들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저는 3년 만에 한국 갑니다.

 

비행기로 한시간 거리지만 돈 아까워서 못갔지요.”

 

 

 

 

 

(1467) 이래도 한세상-2  

 

 조철봉이 눈만 껌벅였을 때 사내가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초면에 말이 많았습니다.

 

저는 김종인이라고 합니다.

 

청두에서 단추공장을 하고 있지요.”

사내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양면에 한국식과 중국식으로 인쇄된 명함이었다.

 

회사명은 국제실업이었고 위치는 청두였다.

 

조철봉이 꺼내준 명함을 본 사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아, 예.”

사내는 명함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하긴 명함에는 오성산업 본사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을 뿐이다.

 

오전 11시40분, 출발 시간은 12시30분이어서 시간이 남았다.

 

주위는 온통 한국인들이라 마치 한국의 버스 터미널 같다.

 

이번에는 조철봉이 종인에게 물었다.

“3년 만에 처음 한국 가신다고요?”

“예에.”

다시 멋쩍게 웃은 종인이 머리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저기 제 아들놈하고 같이 갑니다.”

종인이 가리키는 면세품 상점 앞에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서 있었다.

“제 큰놈이죠. 올해 스물여덟인데, 대학 중퇴시키고 여기로 데려온 지 3년 되었습니다.”

종인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 저놈하고 같이 한국에 다녀오려는 것이지요.”

“아, 그럼 식구들은 모두 여기 청두에.”

“아니죠. 마누라하고 딸은 대전에 있습니다.”

“아, 예.”

“이번에 아들하고 부모님께 성묘를 하고 오려고요. 추석 때도 세 번이나 못 갔으니까.”

그러더니 종인이 가늘게 숨을 뱉었다.

“아마 아들놈한테는 조부모 성묘가 이번이 마지막이겠지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조철봉은 와락 궁금증이 일었고 앞에 앉아서 무심한 듯 듣던 갑중도 시선을 들었다.

 

그러자 종인이 다시 길게 숨을 뱉었다.

“저놈이 곧 중국여자하고 결혼하게 되었거든요.”

“아아.”

“결혼하면 여기서 눌러 살 겁니다.

 

가능하면 중국 국적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게 여기서 사업하는 데 이롭다고.”

“…….”

“그래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

“제 공장 옆의 중국인이 경영하는 섬유공장 사장 딸인데

 

제 공장 단추를 대량 매입하는 바이어 입장이죠.”

그러고는 종인이 또 멋쩍게 웃었다.

“제가 하청공장입니다.

 

본래 그 중국인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섬유공장 공장장이었다가 회사를 인수한 겁니다.”

“…….”

“제 공장도 중국인이 세운 단추 공장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형편이죠.

 

그렇다고 정리할 수도 없고, 그런다면 대번에 거지가 될 테니까요.”

“…….”

“한국업체라고 한국인 공장 제품 사줍니까?

 

중국인 공장의 제품 가격이 1원이라도 싸면 다 그쪽으로 갑니다.”

“그렇군요.”

그때 종인의 아들이 다가와서 말했다.

“아버지, 저 위에 가서 라면 하나 때리고 올게요.”

그러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조철봉은 시선을 내렸다.

 

과연 저놈한테는 이번이 마지막 조부모 성묘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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