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39. 이래도 한세상(4)

오늘의 쉼터 2014. 9. 5. 22:44

439. 이래도 한세상(4)

 

 

(1472) 이래도 한세상-7  

 

 

 

 

 이번 귀국은 성묘가 목적이었으므로 닷새가 지났을 때 김종인은 떠날 채비를 했다.

 

병석이는 성묘를 마치자마자 청두로 돌아갔는데 말은 일이 밀렸다고 했지만 제 애인 때문일 것이다.

 

둘은 떨어져서 못살 정도가 되어 있었다.

“소화제 좀 사다줘.”

김종인이 시장을 가려는 배미옥에게 말했다.

 

오후 4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중국에서 먹던 소화제가 다 떨어져서 그래.”

“왜? 소화가 안돼?”

배미옥이 건성으로 물으며 현관으로 나가다가 김종인을 돌아보았다.

“언제부터 소화제 먹었는데?”

“한 일년 돼.”

“그냥 소화가 안돼?”

“가끔 배가 아파서 그래. 누우면 아파.”

그러자 이맛살을 찌푸린 배미옥이 다가와 섰다.

“그럼 진찰 받고 약 지어먹자.

 

우리 동네에 잘 하는 내과가 있어. 여자 의사인데 아주 친절하고.”

그러더니 소파에 앉아 있는 김종인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나하고 같이 나가. 시장도 같이 보고.”

“그럼 그럴까?”

머리를 끄덕인 김종인이 가볍게 옷을 걸치고 배미옥과 함께 집을 나왔다.

“돼지고기 구워 먹을까?”

배미옥이 묻더니 혼잣소리로 말했다.

“먼저 병원 갔다가 처방전 끊어서 약 받자고. 중국에서 아무 약이나 먹으면 안돼.”

병원은 배미옥의 말대로 집에서 1분도 안 걸렸다.

 

상가 2층의 작은 병원에는 아이들과 아줌마 대기자가 많았는데 배미옥은

 

간호사와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더니 금방 김종인을 진료실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중국에 계시다던 현주 아버님이시군요.”

40대쯤의 여의사가 웃음띤 얼굴로 김종인을 맞았다.

 

여의사는 김종인의 증세를 듣더니 곧 정색을 하고 진찰을 했다.

 

진찰대에 눕히고 배를 꾹꾹 누르면서 아주 성실하게 진찰을 해주는 것이다.

“배가 자주 아프셨어요?”

여의사가 물었으므로 김종인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예, 가끔. 반년쯤 전에는 많이 아파서 중국 병원에 갔지요.

 

그랬더니 약을 주더만요. 그 약을 먹었더니 나았습니다.

 

이틀쯤 입원해 있다가 나왔지요.”

“아무래도.”

머리를 기울인 여의사가 김종인을 보았다.

“제가 제일병원에다 연락을 해 드릴테니까

 

지금 가셔서 X-레이를 찍어 보시죠. 바로 준비하고 있으라고 할게요.”

“왜요?”

긴장한 김종인이 묻자 여의사가 부드럽게 웃었다.

“중국 가시기 전에 한국에서 정확하게 진찰을 받으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요.”

“하긴 그렇군요.”

김종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중국 병원에 갈 때는 꼭 통역을 대동해야 하는데다

 

의료 시설이나 수준이 한국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온 김종인한테서 이야기를 들은 배미옥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거봐. 얼마나 친절해? 저 의사선생은 제일병원 과장 출신이야. 다 통한다고.”

“그럼 나는 진찰 받고 올테니까 당신은 시장 보고 들어가.”

“그래. 병원에 오기 잘했지?”

“정말 그렇구먼.”

병원을 나온 둘은 버스 정류장 앞에서 헤어졌다.

 

김종인은 시장 가방을 들고 걷는 배미옥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가슴이 가라앉았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1473) 이래도 한세상-8 

 

 

 

 

 “대장암입니다.”

내과 과장이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으므로 김종인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의자에 등을 붙이고는 의사를 똑바로 보았다.

 

물론 이쪽도 차분한 표정이다. 김종인이 물었다.

“누가요?”

“선생님 말입니다.”

과장은 여전히 같은 표정으로 말했지만 김종인의 이맛살이 조금 찌푸려졌다.

“제가요?”

“예.”

“저는 도무지….”

입맛을 다신 김종인이 제 배를 내려다 보고 나서 의사를 보았다.

“이해가 안 되는데, 배가 가끔 아팠을 뿐인데요.”

“좀 힘듭니다.”

“뭐가요?”

“말기라 수술도 좀.”

그때서야 의사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의사가 X - 레이 사진을 짚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는데 꽤 길었다.

 

간호사가 세 번이나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고 전화벨이 두 번 울렸어도 받지 않았다.

 

김종인은 그 긴 시간동안 의사가 설명을 하면서 한번도 자신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종인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저녁 8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병원에 있을 적에 배미옥한테서 전화가 왔지만 김종인은

 

곧 간다고만 했고 상황을 말해주지 않았다.

“돼지고기 구워 줄테니까 씻고 와.”

김종인이 들어서자 배미옥이 얼굴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소주도 사 왔으니까 한잔해.”

“어, 그래?”

건성으로 대답한 김종인은 화장실로 들어섰다.

 

벗고 거울 앞에 서서 배를 보았지만 가슴만 답답해졌다.

 

대장암 말기. 의사는 앞으로 반년쯤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상태와 사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의사한테 신뢰가 갔고 나중에는

 

김종인이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병세를 숨기거나 낙관적인 설명으로 덮고 보내는 것보다 더 책임 있는 자세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씻고 나왔을 때 배미옥은 저녁상을 다 차려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늘도 현주는 늦는 모양이다.

 

남자친구하고 연애중이어서 일주일에 닷새는 밤 12시가 넘어서 들어왔고

 

실제로 김종인이 집에 와있는 닷새동안 딱 첫날만 8시에 들어왔을 뿐이다.

“자, 한잔.”

김종인이 수저를 들었을 때 배미옥이 앞에 놓인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면서 말했다.

 

식탁은 풍성했다.

 

김종인이 좋아하는 젓갈류 찬이 셋이나 있었고 겉절이 김치도 놓여졌다.

 

된장국을 한 모금 떠먹은 김종인이 술잔을 들고는 입안에 털어 붓듯이 마셨다.

“내가 쌈 싸줄게.”

배미옥이 상추에다 구운 돼지고기를 싸면서 말했다.

“좀 기다려.”

김종인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기다렸다.

 

그러자 배미옥이 마늘에다 된장까지 묻힌 쌈을 김종인의 입에 넣어 주었다.

“맛있어?”

쌈을 씹으며 김종인이 머리만 끄덕였을 때 배미옥이 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중국 갈거지?”

불쑥 배미옥이 물었으므로 김종인은 시선만 들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표정이다.

 

그때 배미옥이 다시 쌈을 싸면서 말했다.

“다 들었어. 제일병원에서 박내과로 연락이 왔고 박내과 원장선생이 나한테 말해 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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