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33. 황혼의 무도(11)

오늘의 쉼터 2014. 9. 4. 00:07

433. 황혼의 무도(11)

 

 

 

 

 

(1460) 황혼의 무도-21  

 

 “김학술의 시선을 받은 채 조철봉은 한동안 가만 있었다.

 

이미 박경택한테서 내막을 다 보고 받은 터라 김학술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를 안다.

 

그리고 김학술이 바라는 대답도 예상이 된다.

 

몸 따로 마음 따로 하면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행복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주관적이다.

 

딱 잣대로 재고 법으로 정해 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조철봉은 입을 열었다.

“그건 어느 한쪽의 결심만 가지고는 힘들어요, 삼촌.”

김학술은 긴장한 채 눈만 크게 떴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이쪽이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상대가 맞춰주지 않으면 안되는 거죠.”

“그렇지.”

머리를 끄덕인 김학술이 혼잣소리를 했다.

“그런 바람은 이쪽이 아무리 지랄을 해도 못잡지.”

“이해하면서 산다고 해도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제멋대로 놔 둔다면 아예 없는 것보다 더 상처를 받습니다.”

“그렇겠다.”

“상대가 작심을 하고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한다면.”

거기까지 말한 조철봉이 김학술을 보았다.

 

상대는 외삼촌이다.

 

어머니의 동생이 지금 열중한 채 조카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다.

 

그만큼 사정이 급하다는 뜻도 있겠지만 조철봉은 김학술이 안쓰러웠다.

 

김학술은 이제 황혼의 나이에 접어 들었다.

 

인간은 다 죽도록 되어있는 존재니 황혼의 나이란 밤이 되면 생명이 끊긴다는 의미나 같다.

 

김학술은 그 시기에 와이프한테서 배신을 당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조카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겠는가?

 

지금도 그렇다.

 

위로의 말한마디 들으려고 온 것이다.

 

재결합에 대한 호의적 반응이 당장의 김학술에게 생명수나 다름없을 것이었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그땐 받아들이세요 삼촌, 고집 부리지 마시고 기회를 한번 주세요.”

“…….”

“그리고 삼촌도 다시 한번 기회를 갖도록 하시구요.”

“…….”

“별 도움은 안되겠지만 삼촌 자존심을 위하는 의미에서라도 각서나 보증서,

 

또는 서약서 따위를 받아 두시는 것도 나을 겁니다.”

“응, 그렇군.”

다시 머리를 끄덕였지만 김학술의 시선은 내려져 있었다.

 

조철봉은 부풀려졌던 김학술의 희망이 차츰 가라앉아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 안한다.

 

그냥 재결합하라고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학술은 외삼촌이다.

 

또다시 외숙모가 그짓을 되풀이하면 남은 인생이 피폐해진다.

 

무도장 출근만으로는 때우지 못한다.

 

그때 김학술이 입을 열었다.

“정미 에미가 제 언니네 집에 가 있어, 그러고는 나한테 연락을 해오는데.”

시선을 내린 채 김학술이 말을 이었다.

“집에 오고 싶은 눈치야, 그런데 그것이 말이지.”

“…….”

“마음은 나한테 와 있단다, 몸은 제것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그러고는 김학술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날밤, 내가 얼굴에다 복면을 뒤집어쓰고 그년하고 관계를 했거든?

 

아주 자지러지더라.

 

그랬더니 그 주유소놈이 눈에 차지 않았던지 차고 나온 것 같다.

 

그 요물의 마음은 지금 그날밤 복면을 한 놈한테 가 있어, 웃기지 않니?” 

 

 

 

 

 

 

(1461) 황혼의 무도-22

  

 “그럴 리가요.”

했지만 조철봉은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이 얼마나 괴이한 인생인가?

 

바람난 아내를 납치해다가 맨 얼굴을 들이밀기가 부끄러워서 복면을 쓰고 관계를 한 것이다.

 

조철봉은 김학술의 입장을 이해한다.

 

본인도 전처 서경윤이 이종학과 놀아났을 때 맹렬한 질투심과 함께 성욕을 느꼈으니까.

 

그 성욕은 절대 사랑의 감정이 아니다.

분노와 정복욕, 질투심 등이 포함된 아주 본능적 욕망이라고 지금도 조철봉은 회상했다.

 

그런데 김학술은 다시 오금주가 돌아오겠다고 하자

 

그 복면을 썼던 놈까지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그놈이 바로 저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놈이 바로 저 자신이었다고 밝힐 수는 없는 것일까?

 

머리를 기울이며 잠깐 생각했던 조철봉이 다시 한숨을 뱉었다.

“삼촌, 다시 만나서 잘해주시면 잘 되지 않을까요?”

그러자 머리를 든 김학술이 정색하고 말했다.

“내가 그날 밤의 복면 쓴 놈이라는 건 죽어도 말 못한다.

 

난 그 여편네가 까무러치는 꼴을 보고 이제 혼자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 입력되었으니까 두고 두고 재방시키면서 살 작정이었지.”

“…….”

“난 본래 불성실한 놈이야. 절대로 좋은 남편감이 못돼.

 

정미 엄마가 또 와도 내가 잘할지 어쩔지도 자신이 없어.

 

무도장도 계속 나갈 거고.”

“…….”

“나한테는 복면 쓰고 그 일 치른 후에 싹 끝나는 게 아주 멋진 일이었어.

 

부담도 적고, 내 멋대로 살고.”

“…….”

“그런데 이 여편네가 돌아오려고 한단 말이다. 이걸 어떻게 하나?”

조철봉은 김학술의 시선을 받고는 눈만 크게 떴다.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김학술은 그날 밤 이후로 입장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재결합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이윽고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삼촌이 그렇게 부담을 덜 느끼신다면 다시 같이 사셔도 별 문제가 없겠는데요.

 

꼭 돌아오시겠다는데 싫다고 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

“이건 제 생각일 뿐이니까 결정은 삼촌이 내리셔야죠.”

“어쨌든 고맙다.”

머리를 끄덕인 김학술이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사람들은 말하다가 대개 문제를 찾아내고 결심을 굳힌다.

 

나도 너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거든.”

“그럼 어떻게 결정하셨는데요?”

“나중에 알게 될 거다. 어쨌든 네 덕분이야.”

김학술이 소주잔을 들면서 다시 웃었다.

“내보낸 여자 다시 불러라. 오늘은 실컷 마셔 볼란다.”

조철봉이 시중드는 여자를 다시 부르고 식탁 분위기는 조금 가벼워졌다.

“난 무도장에 30년 가깝게 나갔지만 한번도 여자한테 빠져 본 적이 없어.”

한 모금 소주를 삼킨 김학술이 말을 이었다.

“나한테는 정미 엄마가 기둥이었지.

 

표현은 안했고 속만 썩였어도 믿고 의지했단 말이다.

 

그런데 떠나고 보니까 내가 얼마나 못되고 나쁜 놈이었다는 것이 다 보이게 되더라.”

김학술이 붉어진 눈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내 가정은 정미 엄마가 떠나면서 끝났고 내 남편 역할은 그날 밤

 

복면의 사내가 대신 끝내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435. 황혼의 무도(13)  (0) 2014.09.04
434. 황혼의 무도(12)  (0) 2014.09.04
432. 황혼의 무도(10)  (0) 2014.09.04
431. 황혼의 무도(9)  (0) 2014.09.04
430. 황혼의 무도(8)  (0) 2014.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