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7장 중국손님 (34)

오늘의 쉼터 2014. 9. 3. 17:38

제17장 중국손님 (34)

 

 

 

 

“자, 우선 너의 무예를 한번 보자꾸나.”

난승의 말에 유신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칼을 뽑아 들었다.

검술과 창술이라면 또래에선 대적할 자가 없을 만치 출중한 기량을 지닌 유신이었다.

나이 일곱에 이미 자유자재로 말을 몰았고 10여 세 무렵에는 달리는 말잔등에서

곧잘 검무(劍舞)를 흉내내어 보는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15세에는 국원에서 용화향도를 조직해 화랑이 되었고,

그 아버지 서현의 주선으로 취산 낭지 법사를 찾아가 틈틈이 배운 검술과 창술은

화랑들의 무술 시합이 열리면 만인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바탕은 그런대로 잘 닦았구나.”

유신이 한바탕 검과 창을 휘두르고 나자 난승은 흡족한 듯 그 기다란 얼굴을 아래위로 끄덕였다.

난승이 휘파람을 불자 어디선가 눈처럼 새하얀 갈기를 휘날리며 백마 두 마리가 나타났다.

“다음엔 기마술과 마상 무예를 볼 차례다.”

이번에도 유신은 망설이지 않았다.

난승이 지정한 말에 올라타자

바람처럼 초원을 가로지르며 자신이 배운 대로 검술과 창술을 선보였다.

“그 정도면 싸움터에서 능히 네 몸 하나쯤은 지키겠구나.”

유신이 유감없이 무예를 자랑한 뒤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왔을 때 난승이 말했다.

“하오나 구적을 토평하고 백성과 사직을 보전하는 일이 어찌 제 몸 하나 지키는 것으로 될 것이며,

저자에서 체계 없이 배운 무술로 어찌 삼한을 아우르는 막중 대업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 번 묻거니와 출세와 양명을 위한 것은 필경 아니렷다?”

“천지신명께 맹세하겠나이다.”

“좋다.”

난승은 재차 다짐을 받은 뒤 어디선가 창과 검을 하나씩 가져왔다.

그리곤 홀연 몸을 날려 비로소 자신의 무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럴 수가……”

유신은 난승의 화려한 몸놀림을 대하는 순간 도무지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일찍이 할아버지 무력 장군의 뒤를 이어 나라의 이름난 장수가 되기로 뜻을 세운 뒤

웬만한 무술의 달인과 유명한 검객의 주위를 기웃거려온 유신으로서도

결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검술과 창술이었다.

칼날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무서운 속검(速劍)을 쓰는가 싶다가도 이내 몸을 날려

검봉을 매섭게 찌르고 원을 그리며 사방을 완벽히 제압하는 예검법(銳劍法)을 구사하였고,

그러다가는 다시 정통 국검술(國劍術)로 돌아오기도 했다.

칼 한 자루로 쌍검처럼 보이는 전설의 영검술(影劍術)도 보여주었다.

난승의 칼이 움직일 때마다 톱날의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고 울창한 적송 숲을 지나가는

세찬 풍뢰 소리가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았다.
도무지 막힘과 거침이 없는 무예였다.

일정한 법칙과 틀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가령 신라인의 전통 검법인 국검술에

백제 무인들이 즐겨 쓰는 속검법이 섞이는가 하면, 창술 역시 고구려인의 단창술에 가야인과

백제인의 장창술, 심지어 말갈인이 잘 쓴다는 편곤(鞭棍)의 흔적까지 엿보였다.

그래서 언뜻 보면 체계도 없고 질서도 없어 허술하게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무예에

얼마만큼 눈을 뜬 유신에게는 그 몸짓 하나하나가 그대로 감탄과 충격으로 이어졌다.

시범을 마친 난승은 곧바로 유신에게 자신의 무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검술과 창술은 물론이요, 당파(삼지창)와 낭선(일종의 겹창술), 월도(月刀)와 협도(挾刀) 등의

도끼 쓰는 법에 권법과 곤방술까지 전수했다.

그것이 끝나자 다시금 말을 타고 겨루는 기창(騎槍), 마상쌍검과 마상영검(馬上影劍),

등패술(표창)을 쓰는 법과 막는 법, 예도(銳刀)와 독검술(督劍術)에 이르기까지

20여 가지에 달하는 기예(騎藝)를 두루 가르쳤다.

그새 날짜가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난승을 따라 신비롭고 광활한 초원에 이른 뒤로는 생판 처음 보는 화려한 무술을 익히느라

도무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기도 했지만, 일변으론 감각마저 무뎌져서 때를 감지할 수조차 없었다.

문득 돌이켜보면 반나절이 지난 듯도 하고, 달리 생각하면 수많은 날짜가 흐른 것도 같았다.

그런데 더욱 수상한 일은 초원에 이른 후로 단 한 번도 해가 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너무도 긴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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