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중국손님 (33)
“법흥, 진흥 양조에 신라가 창성한 것은 7백 년 삼한 역사에 처음 있었던 일로,
이는 그간 여제(麗濟) 양적으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한 끝에 사직과 백성들을 지키고자
도모한 필사적인 자구책이었습니다.
본래 우리 신라는 삼한의 땅 동쪽에 이르러 터를 잡고 나라를 세운 이래로 이웃 나라와 서로 화친하고
우호하며 지내고자 했으나 고구려와 백제는 서로 번갈아가며 우리를 침범하고 노략질하는 것이
마치 배고픈 범이 민가를 해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바람에 삼한의 역사가 7백 년이나 되었지만 선린의 시기는 짧고 전쟁하는 때는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신라는 천둥에 뛰어든 개 신세가 되어 고구려가 성할 때는 왕자를 볼모로 잡히고,
백제가 성할 때는 고구려의 원조에 의지해 간신히 사직을 보전할 수밖에 없었나이다.
하오나 여제 양국은 본래 그 뿌리가 하나인 삼부여(三扶餘)의 후예들로 우리 신라와는 근본부터 다른
종족이요,
만일 호전의 무리인 저들이 서로 힘을 합쳐 우리를 치고 그 땅과 백성을 나눠 갖기로 공모한다면
계림의 사직은 하루아침에 거덜나고야 말 것입니다.
상시 이런 걱정에 휩싸여 불안한 세월을 보내던 터에 다행히 천지신명께서 우리를 저버리지 않아
법흥, 진흥과 같은 성군을 보내주셨고, 장수와 백성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운 결과 마침내
서해로 통하는 뱃길을 얻어 중국의 나라들과 친히 교통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니 방금 어르신께서 우리 신라를 여제 양적과 똑같이 말씀하시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제가 어르신께 비술을 청하는 것도 사사로운 영달을 꾀하거나 양적의 무고한 백성들을 짓밟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 강역과 사직을 보전하고 계림의 백성들을 고통에서 구하고자 함이올시다.”
유신의 막힘 없는 대답에 노인은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하면 너는 삼국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길이 무엇이라 여기느냐?”
노인의 두번째 질문에도 유신은 오래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삼국이 서로 화목하는 길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이미 삼한 7백 년 역사에서 서로가 수없이 신의를 저버렸고,
그 맺힌 원한이 깊을 대로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네게 특별한 재주를 가르쳐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러자 유신이 약간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삼한의 강역은 중국에 비해 그 영토가 넓지 않고,
그 안에 사는 백성들도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강계(疆界)가 개 이빨처럼 인접한 까닭에 오히려 중국보다 싸움이 잦고
따라서 삼한 백성들도 그 목숨이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처럼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입니다.
삼한은 비록 그 뿌리가 다르지만 백성들의 말과 풍속이 비슷해진 지가 이미 오래요,
실제로 접경 부근에서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국경을 넘나드는 일도 흔합니다.
만일 이러한 때에 누군가가 나서서 삼한을 평정하여 일국으로 만든다면 무고한 양민들이
창칼을 들고 싸우는 일은 절로 사라질 것이요,
삼한 역사에 유례없는 태평성세를 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른께서 제게 비술을 가르쳐주신다면 반드시 이 대업을 이루는 일에 쓰겠습니다.
이를 어찌 의미 없는 일이라 하겠습니까?”
유신을 한낱 울분과 욱기에만 사로잡힌 어린애로 여겼던 노인의 눈에 감탄과 놀라움이
뒤섞인 광채가 어른거렸다.
그는 한동안 유신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문득 자애롭고 인자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는 누구의 자식이며 이름이 무엇이더냐?”
“저는 금관국 수로대왕의 예손이자 가락 양왕 김구해의 증손인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또한 진흥대왕의 아우였던 숙흘종이 저의 외조붑니다.”
“과연……”
유신의 말에 노인이 혼잣소리를 뱉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로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하였거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뜻은 말할 것도 없고
하물며 삼국을 아우르려는 보기 드문 기개까지 갖췄으니
그 장하고 우뚝함이 가히 불세출의 영걸을 논하기에 손색이 없구나.
옳거니, 내 비록 손에 무기를 잡아본 지 오래이나 너를 천하의 명장으로 한번 만들어보리라!”
노인은 굳은 결심이 선 듯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로부터 노인과 유신의 자취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노인은 석굴 속의 바위 하나를 밀어내고 사람 하나가 간신히 빠져나갈 만한 구멍 안으로
유신을 데리고 들어갔는데,
막상 그곳을 빠져나오니 눈앞에 펼쳐진 것은 운무가 자욱하게 깔린 광활한 초원이었다.
유신은 석굴 안에 그토록 넓고 푸른 초원이 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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