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7장 중국손님 (36)

오늘의 쉼터 2014. 9. 3. 17:50

제17장 중국손님 (36)

 

 

 

 

이후 한참을 더 초원에서 머물던 유신은 하는 수 없이 난승이 손짓으로 일러준 곳을 더듬었다.

자욱한 운무 속에 희미한 빛이 보이고, 바위 하나가 나뒹구는 옆으로 처음 들어왔던

장소인 듯싶은 곳이 나타났다.

자신은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었지만 백설총이를 데려가자니 안 되겠다 싶었다.

유신은 안간힘을 써서 바위를 하나 더 덜어냈다.

그러고 났더니 백설총이가 먼저 고개를 밀어넣고 구멍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바깥으로 나와보니 석굴 내부였다.

유신은 백설총이를 끌고 해론이 기다리던 공산 중턱의 한 암자로 갔고,

그제야 난승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 장장 한 달이 넘었다는 실로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튿날,

유신은 아무래도 수상해 다시 난승을 만난 석굴 속에 들어가보았다.

그러나 초원으로 통하는 길은 다시 찾을 수 없었고, 전날 자신과 백설총이가 빠져나왔던

바위 구멍도 어느 틈에 꽉 막혀서 아무리 용을 써 밀거나 당겨보아도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동안 유신은 난승을 만난 흥분에서 좀체 깨어나지 못했다.

오로지 난승을 만난 일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한번은 꿈에 난승이 취산 몽암에 있는 것을 보고 깨어나자

곧장 취산으로 달려가기도 했고, 왕경 남산으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부랴부랴

남산을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일들은 죄 유신의 집착이 빚어낸 부질없는 환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신은 난승을 만나 무술을 배운 일이 현실이 아닌 꿈속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난승에게서 받은 비술이 적힌 서책과 보검, 그리고 백설총이가 있는 한 결코 환상일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그날도 유신은 꿈에 무슨 예시를 받고 홀로 청룡검을 지닌 채 인박산(咽薄山)의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향불을 피우고 먼저 중악에서 한 것과 같이 기도하니

하늘에서 홀연 오색 광채가 내려와 청룡검 칼날에 실리고,

사흘째 밤에는 허성(虛星)과 각성(角星)이 아득히 빛나다가 문득 그 빛이 쏟아져서 역시 칼날에 드리웠다. 그러자 청룡검이 마치 스스로 일어나 춤을 추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이에 유신이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칼의 손잡이를 쥐고서,

“만일 이 검으로 내 뜻이 이뤄지면 바위가 둘로 갈라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칼이 부러질 것이다!”

하고는 칼을 높이 쳐들어 앞에 놓인 바위를 내리쳤다.

순간 칼날과 돌이 마주치는 둔중한 탁음과 함께 집채만한 바위가 정확히 둘로 갈라졌다.

유신이 난승을 만난 일을 더 의심하거나 연연해하지 않게 된 것은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였다.

난승에게 무예를 익힌 이듬해,

유신은 겨우 열여덟의 어린 나이로 화랑들의 최고 영예인 국선이 되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유신이 국선이 되자 특히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 이들은 신라에서 설움을 받고 살아가던 가야국의

유민들이었다.

이들은 누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만노군 태수 관사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저희들의 쌈짓돈을 털어 양과 개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서현도 술과 고기를 내어 그들의 후의에 보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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