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7장 중국손님 (14)

오늘의 쉼터 2014. 9. 2. 16:31

제17장 중국손님 (14)

 

 

 

 

집에 도착해 부모를 뵙고 마침 중국에서 온 손님들과 그 바람에 생긴 조정의 문제를 듣게 되자

춘추는 또 한번 크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가보면 길이 보일 거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아아, 대체 그 가야금을 타던 도인은 누구란 말인가!”

벌써부터 가보고 싶었던 중국 땅이었다.

법사 원광에게서 전해들은 중국의 창성하던 문물과 수도 장안(대흥)의 번성함,

양제가 완공한 대운하를 따라 오방 잡처에서 모여든다는 장사치들,

게다가 경서로만 접한 수많은 명승지들을 직접 구경해보고 싶은 것은 그에게는 해묵은 소망이었다.

다만 대륙의 정세가 불안해 좀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춘추는 이튿날 금왕 내외에게 문안을 여쭈러 입궐했다가 당과 수교 문제로 고민하는 임금을 보자

입을 열어 말하기를,

“할아버지께서는 무엇을 그처럼 고민하십니까.

지금 중국에서 오신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중국은 조만간 당의 천하가 될 것 같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하루라도 빨리 사신을 파견해 수교하는 것은 나라의 장래를 보아 시급한 일입니다. 하지만 조정의 중신들이 반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하고서,

“사실 앞날의 일은 아무도 정확히 알 수가 없는 법입니다.

중국에서 오신 손들의 장담이 맞으란 법도 없고, 중신들의 주장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닙니다.

이럴 때는 흔히 새우 미끼로 잉어를 낚는 이하조리(以蝦釣鯉)의 계책을 쓰시는 것이 타당합니다.

다행히 당나라가 수의 뒤를 이어 대륙을 토평한다면 우리는 잉어를 얻는 것이요,

설혹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잃는 것은 고작 새우 한 마리뿐입니다.”

하였다.

왕이 춘추의 말하는 뜻을 얼른 알아채지 못해,

“무엇으로 새우를 삼는단 말이냐?”

하고 묻자

 

춘추가 어깨를 펴고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새우 노릇을 할 적임자는 나라를 통틀어 오직 저밖에 없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저의 집에 유숙하고 있는 분들이 중국으로 돌아갈 때

약간의 방물과 함께 저를 같이 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하면 소손이 나라의 정식 사신이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당황제를 찾아뵙고 조공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면?”

왕은 그때까지도 춘추의 속셈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저는 비록 개인의 자격으로 당황실을 찾아가는 것이지만 왕실의 자손이 분명하니

저쪽에서 보기에는 오히려 조공사의 격을 높이는 일이요,

만일 중신들이 염려하듯 훗날 당이 망하고 다른 세력이 들어선다면 본조에서

정식으로 조공사를 파견한 일이 없으니 뒤탈이 일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항차 이번에 온 손님들은 당황실과 이런저런 인연이 깊은 분들이라니

그들과 함께 가서 도움을 받는다면 능히 소임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제야 춘추의 말뜻을 알아차린 왕은 잠시 침사에 잠겼다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될 말이다. 차라리 뒤탈이 있더라도 조공사를 보내거나 아니면 아예 그만두고 말지,

어찌 금쪽 같은 너를 만경창파 험하디험한 물길에 실어 산 설고 물 선 이역 만리로 보낸단 말이더냐?

더군다나 창칼을 든 흉악한 무리가 산지사방에서 창궐하는 그 복잡하고 어지러운 곳에를?”

그러잖아도 모후인 만호 태후를 잃고 무상감에 젖어 있던 백정왕이었다.

춘추는 그런 왕에게 몇 번이나 자신의 뜻을 밝히며 거듭 간청했지만 왕은 좀처럼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구칠과 유광은 신라에서 달반 가량을 묵고 마침 등주로 떠나는 역선 편을 얻어 돌아갔지만

춘추는 끝내 그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왕을 상대로 한 춘추의 설득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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