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중국손님 (13)
그는 초막에서 나와 금성으로 오는 내내 두두리 거사라는 그 정체불명의 사내만 떠올렸다.
아무래도 초야의 기인이요 포의(布衣)의 굴기지사(屈奇之士)임은 분명하고,
또 자신의 아버지인 용춘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놓는 질책으로 보아 필경은 무슨 교유가 있는 사이려니
싶은데, 자식 앞에서 신랄하게 꼬집는 한 구절 한 구절이 당최 그른 데가 없어 춘추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춘추 역시 그 아버지인 용춘의 일생에 대해서는 애증의 묘한 감정을 동시에 느껴오고 있던 터였다.
사촌형들에게 폐위당한 부왕과 그 처참한 말로를 지켜봐야 했던 원통함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를 하면서도 일변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은 그럼에도 어찌하여 왕실 언저리를 맴돌면서
일생을 과거지사에 연연해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점이었다.
외종조부인 백반을 대적하기엔 힘이 미약하고, 그렇다고 어차피 처가로 맺어진 또 하나의 인연을
생각해 구원을 크게 용서해줄 만한 도량도 없었다.
겉으로만 거센 척했지 실상 불구대천의 원수를 악착같이 갚을 만큼 모진 성품도 아니었다.
부모를 품평한다는 게 가당찮은 일이긴 하지만, 평소 춘추가 용춘을 볼 때
다소 불만스레 여겨왔던 점을 그 두두리 거사라는 사내는 아주 정확히 지적한 것이었다.
춘추가 왕실 내부의 여러 가지 추문을 알게 된 것은 머리가 제법 크고 난 뒤였다.
딱히 누구한테서 어떤 경로로 듣게 되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친가와 외가가
구수지간으로 얽혀 있고, 가까운 족친들이 대부분 그 추문에 연루돼 있음을 알았을 때
그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춘추가 아니고선 맛볼 수 없는, 실로 하늘이 무너지는 비통함이었다.
만일 자신의 조부인 진지대왕이 실덕한 호색한이며 그로 말미암아 보위에서 쫓겨난
폐왕이 되었다면 이는 친가의 허물이요,
금왕과 백반 형제가 숙부를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것이라면 피할 길 없는 외가의 흉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두둔하거나 변호할 뜻은 애당초 없었고,
그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추문이 얽히고설킨 왕실에서 태어난 자신의 운명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어머니 천명 공주를 보고,
“저는 아버지를 내친 외조부, 외조모도 마땅치 아니하고, 왕제가 갈문왕이 되어
권세를 누리는 나라의 제도도 마땅치 아니하며, 간신배의 모함으로 궐에서 쫓겨나
평생을 죄인처럼 지내는 아버지 또한 마땅치 않습니다.”
하고 말한 일까지 있었다.
춘추의 이 같은 번민은 용춘이나 천명보다도 더 갈등의 뿌리가 깊고 감정이 복잡한 것이었다.
그는 대상을 정해놓고 상대를 마음껏 증오할 수 있는 아버지 용춘이 오히려 부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춘추는 그것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에서 태어났고 당연히 어느 한 쪽만을 두둔하거나
한 쪽에만 편입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따라서 그는 언제부턴가 자신이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일변으론 사랑하면서도 일변으론
증오해야 하는 기묘한 감정에 시달렸다.
그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은 어린 춘추로 하여금 일찍 세상 물정을 깨우치도록 만들었고,
차츰 세월이 흘러가면서는 의식적으로 그런 구조 자체를 무시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자신을 끔찍이 귀여워하는 금왕 내외는 물론이요,
입만 열면 서로를 비난하고 험구하던 친할머니 지도부인이나 노할머니 만호 태후를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용납할 재간이 없었다.
“나는 앞으로 누구의 어떤 말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오직 내가 직접 보고 스스로 경험한 일만을 믿으리라.
그것이 설혹 부모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무턱대고 믿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정한 춘추는 자신을 둘러싼 왕실 내부의 복잡한 악연들을 떨쳐버리려는 듯
미친 듯이 학문에만 열중했다.
학문이 아니었으면 그 힘겨운 시기를 무사히 헤쳐 나오지 못했을 것이었다.
공부만이 그에게는 유일한 낙이었고 구원이었다.
특히 그가 중국의 역사와 경서들을 즐겨 읽은 것은 그 속에 나오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이
자신의 독특한 처지를 위무해주기에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형을 죽여가면서까지 왕위에 오른 제나라 환공의 얘기를 들으면서는
외가를 이해하려 노력했고, 부형의 원수를 갚은 오자서의 통렬한 복수극을 읽을 때는
아버지 용춘의 심경을 헤아리는 식이었다.
그러면서도 양쪽으로부터 공히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부단히 애를 써왔다.
이는 춘추의 관심이 신라 왕실 내부의 좁은 울타리에서 천하라는 크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오직 학문에만 몰두하며 몇 해를 보낸 뒤 어느 날 문득 자신을 괴롭혔던 일들을 차분히 되돌아보니
비로소 스스로도 놀랄 만치 마음이 평온해져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어느덧 관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근자, 한두 해 저쪽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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