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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중국손님 (6)

오늘의 쉼터 2014. 8. 31. 21:14

제17장 중국손님 (6)

 

 

 

 

 “사정이 이러할 때 수나라를 이어 중국을 다스리게 될 세력과 시급히 우호해 지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고구려는 이미 재작년에 당나라 조정으로 사신을 보내 조공을 했으나 백제와 우리나라는

아직 이를 관망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고구려는 지경을 마주하고 있어 아무래도 그 우호와 화친에 넘지 못할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이야 고구려도 수나라와 전쟁을 치르느라 국력을 모다 소진해버렸고,

당나라 또한 아직은 내란을 평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국의 바라는 바가 맞아떨어진 셈이지만

기실 그 두 나라의 친교는 어느 한 쪽이 태평지절을 맞으면 곧 깨어지고야 말 금간 그릇과 같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백제나 고구려와 영구한 선린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칩니다.

하지만 백제와 당은 사정이 다릅니다.

당이 내란을 평정하면 백제는 반드시 사신을 보내 조공할 것이고, 전날 수나라와 그러했듯이

형제의 나라처럼 지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당의 세력을 등에 업고 고구려를 칠 것이며,

또한 우리나라를 넘볼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먼저 화친하고 교류하는 것보다 중한 일이 없습니다.

당나라가 대륙을 토평하는 것은 금년 아니면 내년의 일이요,

중국은 곧 당의 천하가 될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해선 대세와 저의 판단을 믿으십시오.”

구칠은 용춘의 앞으로 바짝 무릎을 당겨 앉았다.

“그러니 나리께서는 시급히 임금께 말하여 하루라도 빨리 당에 조공사를 보내라고 하십시오.

이마저도 백제에 선수를 뺏긴다면 신라의 앞날은 천길 벼랑이올시다.

나리께서 나선다면 장안에서는 대세와 유광의 백씨가 두 나라의 교류를 힘써 도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제보다 먼저 당나라와 인연을 맺고 이를 기화로 신라를 구해야 합니다.

나리께서는 대체 언제까지 뒷짐만 지고 지낼 작정이십니까?

국사를 더 이상 늙은 임금과 어리석은 자들의 손에 맡겨둬서는 안 됩니다.

이제 그만 한가로움을 버리고 나리가 직접 광정(匡正)의 길로 나서야 합니다.

이는 대세와 제가 근 달포를 두고 밤낮없이 서로의 고민을 말한 연후에 내린 결론이올시다.

나라의 7백 년 사직이 이때처럼 흔들린 예가 전고에 또 있습니까?

저는 나리를 만나뵙고 바로 이 말씀을 전하고자 신라로 오는 배를 탔습니다.

국운이 백척간두에 섰습니다. 부디 저희의 충절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구칠의 얼굴은 절박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용춘은 눈을 감은 채로 흐르는 물처럼 이어지는 구칠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다가

문득 크게 한숨을 토했다.

그리고는 눈을 떠 구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어찌 자네와 같은 뜻이 없겠는가!

그러나 벼슬길에 나서는 것이 어디 내 마음대로 되어야지.

천지신명이 계림을 버리지 않는다면 차차 그런 때가 올 테니 시일을 두고 기다려보세나.”

“임금은 칠순에 가까워 총기를 잃은 지 이미 오래요,

만일 내달이라도 당장 국상이 나는 날에는 신라는 꼼짝없이 백반의 천하가 될 것입니다.

그럼 나리는 국서의 지위마저도 잃게 될 게 아닙니까?

나리마저 없다면 신라에는 기대를 걸 만한 인물이 아무도 없습니다.

다행히 만호 태후가 죽었으니 임금의 마음만 얻으면 다시 벼슬길에 나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네만……”

용춘이 맥없이 대꾸하자 구칠이 따지듯 반문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 망설이고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듣자니

금상은 슬하의 세 딸을 지극히 귀애할 뿐더러 특히 천명 공주와 춘추 도령을 아끼는 마음은

장안을 드나드는 장사치들에게까지 소문이 파다합니다.

나리께서 뜻만 세우신다면 벼슬길에 나서는 것이 과히 어렵지 않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용춘은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구칠을 바라보며,

“아무튼 자네가 나와 나라를 염려해 이렇게 와주었으니 참으로 고맙네.

대세와 자네의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도록 힘써보겠네.

중국이 당의 천하가 된다면야 조공사를 파견해 수교하는 일이 어찌 시급하지 않겠는가.

그 일만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안사람을 궐에 들여보내 임금께 고하겠네.”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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